〈눈물의 여왕〉은 박지은 작가의 드라마 〈내조의 여왕〉과 〈역전의 여왕〉에 이은 ‘여왕’ 시리즈다. 2010년에 방영된 〈역전의 여왕〉 이후에 약 14년 뒤에 방영된 <눈물의 여왕>은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시청자 및 대중들과 감응하였다. 내용은 이러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퀸즈 기업의 재벌 3세 해인에게 장가온 시골 출신의 변호사 백현우가 해인과 이혼하려고 한다. 다름 아닌, 기업과 아내의 등쌀에 못이겨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그때 해인이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하지만, 해인 주위에 나타난 은성과 퀸즈 기업의 위기로 인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시 알아차리고 해인과 다시 사랑하는 이야기다.
1. 시청자의 관객성 : 관객성의 드라마
최근 드라마계 내에서 여성 서사는 하나의 장르처럼 보일 만큼 두드러지는 추세가 되었다. CNN에서는 한국에서 여성 주인공이 전면에 등장하는 드라마가 증가하고 있다고 전한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2019, tvN), 〈마인〉(2021, tvN),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ENA), 〈대행사〉(2023, JTBC) 등 많은 드라마에서 여성 주인공이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가 생기고 있다. 이런 변화를 보고 연구자들은 여성 서사를 ‘전통적인 젠더 이분법과 가부장적 관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보편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타자화되어온 여성을 새로이 재현한 서사’라고 정의한다. 나아가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여성 주인공의 변화는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젠더 스테레오 타입의 재생산을 거부하는 것. 둘째, 여성을 드라마의 주요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위치시키는 것. 셋째. 이성애적 로맨스 관점에서 전형적인 여성의 역할을 벗어난 새로운 구축이다. (정영희, 한희정.(2023).텔레비전 드라마 속 여성주의 서사의 가능성과 한계 : 〈마인〉(tvN)과 〈구경이〉(JTBC)를 중심으로.한국언론학보,67(2),206-241.)
위의 정의는 모두 여성 ‘주인공’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드라마 전체의 구조나 서사, 에피소드의 양식이 아니라, 여성 주인공-인물 그 자체의 변화에 맞춰져 있으며 이것의 결과로써, 여성 주인공들은 모두 강인한 성격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로 그려진다.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유능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여성들. 즉 공적 영역에서 여권 신장의 요구가 반영된 상태로 재현된다.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들인 것이다. 얼마간 이를 페미니즘적 성취라고 보기도 했다. 주체적인 여성이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곧 그동안 젠더적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서 몫이 없던 자에게 몫을 주는 정치가 작동한 것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의 범위가 여성 주인공의 공적 영역 내에서 자아실현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단순히 페미니즘적 성취로 말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 기실 여성의 주체성의 기준은 직업의 유무와 유능함으로 판단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여성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손희정이 『페미니즘 리부트』 에서 짚어준 대로, 자본은 여성들에게 해방의 공간이 되는 동시에 노동 시장에 새롭게 포섭되었으며 신자유주의 내에서‘예쁨’과 ‘유능함’이 같은 가치로 묶이면서 여성들은 여성성을 공적 영역의 자산으로 활용하게 된다. 이런 시대적 맥락은 여성 시청자들의 관객성이 되고 얼마간 창작자 측에서 이를 파악하고 드라마 내에서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여성 서사의 구축과 생산은 포스트 페미니즘의 성취로서, 신자유주의 여성성으로 구축된 관객성이 작품 내로 재반영되면서 보이는 변화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의 수혜로 유리천장을 뚫고 차별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지만(성취로 보이지만), 사실은 신자유주의적 가부장체제는 감춰지거나 이 체제를 겨냥하는 게 불가능하게 만든다.
2. 역전의 구도에서 배치하기 : 해인과 현우의 이분법적 구조
이러한 변화의 문제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다. 〈눈물의 여왕〉에서는 이런 신자유주의 여성성으로 구성된 관객성을 다시 드라마에 반영하여 인물을 설정하였다. 그렇기에 기존의 여성 서사의 맥락을 그대로 따라가서 여자 주인공을 설정하였다. 나아가 이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남자 주인공의 설정까지 적용한다. 그리고 이때 포스트 페미니즘이 반영된 여성 서사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출처: tvN 〈눈물의 여왕〉 공식 홈페이지]
스쿼트할 때 빼곤 일생 무릎 한 번 굽힐 일 없이 살아온 도도한 여왕. 오로지 남들한테 명령하기 위해서 입술 두 쪽 달고 태어난 것 같은 절대 군주. 강남 한가운데 성처럼 고고히 솟아 있는 퀸즈 백화점의 여주인이다.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해인의 소개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인은 능력이 있는 백화점 사장으로 나온다. 해인은 퀸즈 기업의 재벌 3세로, 얼마간 이곳에 핏줄로 인해서 앉은 것이지만, 굉장히 능력있는 여성이라는 점과 백화점 사업을 위해서 생활을 온통 일에 바친다는 점 그리고 얼마간 인턴 생활을 한 것을 통해서 공정성을 확보한다.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자리를 충분히 인정받았고 그런 자리에 앉을 만큼 능력있고 일에 진심인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서, 단순히 이성애적 사랑에만 얽매이지 않는 여성이 재현된다. 더불어 “군주”라는 표현을 사용할 만큼 강인한 성격으로 재현되는데 이는 순종적인 여성상이라는 젠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성격이다.
나아가, 다른 사업도 아니고 백화점 사장인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외모와 관련한 꾸미기 사업에 여성이 능통할 것이라 예상되고 또 능통하리라고 요구받는다는 걸 떠올리면 얼마간 꾸미기 자체가 능력으로 취급받는 사회 속에서 올라갈 수 있는(올라가고 싶은) 가장 높은 자리로 보인다. 얼마간 TV 드라마는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하기 위한 설정이 가미된다. 여성들에게 노동이란, TV에서 재현되는 것과 반대로 성별의 임금 격차나 직장 내 성추행 등 다양한 위기가 집합된 영역이다. 끊임없이 경쟁에서 살아나가야 하는 곳이자 여성으로서의 차별과 억압을 감내해야 하는 곳이다. 해인의 재벌 3세라는 설정은 이런 경쟁과 차별의 공간에서 비껴가려는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껴감으로써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고 감춰지며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한다.
〈눈믈의 여왕〉은 이러한 관객성을 반영하는 것을 여성 주인공의 설정에서 멈추지 않는다. 위의 설정들이 이전의 드라마에서 보여질 때에 여성들에게는 희망을 남성들에게는 역차별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건 이미 지적된 바가 있다. 〈눈물의 여왕〉은 이 역차별의 감각을 대놓고 장면으로 보여주고 나아가 남자 주인공을 설정하는 데에 활용한다. 여자 주인공 해인과 남자 주인공 현우는 그야말로 이분법적 구조에 완전히 밀착해있다. 가령 해인이 도시 속의 부잣집 딸이라면, 현우는 시골의 슈퍼마켓 집 아들이다. 해인은 강인하고 차가운 성격이고 현우는 살갑고 따뜻한 성격이다. 해인의 집이 더 부유하기 때문인지, 현우는 해인의 집안에서 눈치를 보는 일종의 시집살이를 겪게 된다. 이는 장면으로도 재현된다. 드라마 초반 퀸즈 가문의 부엌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기존 시집살이 당하는 여성의 자리에 모두 남성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 남성들은 얼마간 눈물을 흘리면서 일하다가 다같이 담배를 피우면서 한탄한다.
이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에서 재현되던 여성과 남성의 캐릭터가 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 구도에 두고 기존에 남성의 권력이 컸던 구도를 역전한 것이다. 역차별을 아예 전면에 내세워 유머 코드로 활용하거나 남자 주인공의 기본 정서로 탑재한다. 드라마 초반 현우의 초목표는 ‘이혼’이다. 역차별의 감각을 견딜 수 없어서 이 집안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밌는 건 이런 역차별의 순간 때문에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남성의 반발을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성성을 위로하고 이에 복무하게 된다.
드라마 중반부로 가면, 퀸즈 기업은 회장의 내연녀였던 모슬희의 계략으로 퀸즈 기업을 이루는 해인의 가족은 집에서 쫓겨나 길바닥에 내앉는 신세가 된다. 이전에 해인에게 접근한 은성으로 인해서, 해인에 대한 마음을 다시 깨닫고 사랑하게 된 현우. 해인이 현우가 이혼을 준비하려던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미 이혼 절차를 거쳤음에도, 현우는 해인의 가족을 전부 거두어 시골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해인의 가족이 이곳에서 나름의 피신을 하고 있을 동안에, 현우는 모슬희의 계략을 알아내고 퀸즈를 되찾을 방법을 탐색한다. 이때 현우는 그제야 서울대 법대에 로스쿨 출신인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며 그야말로 해인의 가족을 전폭적으로 수호한다.
이는 여성 시청자들의 대리 만족과 그들의 판타지를 충족하는 데 쓰였다면, 〈눈물의 여왕〉에서는 젠더적으로 역전된 권력 구조와 그로 인한 역차별의 감각 때문에 현우의 활약은 현실에서 역차별로 인해서 억압된다고 주장하는 지금의 남성들의 판타지를 충족하고 되려 남성의 자리와 권력을 재확인한다. 더불어 이런 현우의 수호자적인 모습이 얼마간 로맨틱하게 묘사가 되는데 이때 여성은 다시 남성들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젠더적 위치로, 남성은 그들을 위해서 능력을 발휘하는 위치로 가게 된다. (이성애적) 사랑의 순간에는 다시 여성과 남성의 전형적 젠더 역할로 돌아가게 되고 이러한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재현되는 건 오히려 전형적 젠더 역할을 강화하는 셈이 된다.
3. 타당한 상속자 되기 : 해인의 가족이 ‘가족’이 될 때

[출처: tvN 〈눈물의 여왕〉 공식 홈페이지]
이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회복은 〈눈물의 여왕〉의 전체 서사를 관통한다. 〈눈물의 여왕〉에서 해인의 가족들은 부자이지만,‘가족스럽지’ 않다. 가령 해인과 동생 수철은 같은 사업을 경쟁하며. 심지어는 해인이 진행하는 사업을 망치려고 수철이 수를 쓰기도 한다. 또 해인의 엄마는 해인을 신뢰하지 않으며 미워한다. 해인이 자신에게도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해도, 해인의 엄마는 그저 비꼬면서 넘어갈 뿐이다. 전체적인 가족의 모습만 봐도 그러하다. 회장 만대(해인의 할아버지)는 자신을 돌봐준 모슬희에게 속아 죽임을 당할 뻔하고, 슬희에게 온 회사를 빼앗기게 된다. 가족은 없다, 그저 혈연으로 이어진 회사 경영체가 있을 뿐.
이런 회사 경영체로서의 가족은 퀸즈 기업이 완전히 모슬희와 윤은성 모자에게 넘어가자, 시골로 내려가게 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현우의 가족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 시골 공간의 정겨운 분위기와 더불어서 진정한 가족-되기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얼마간 이전까지는 부자이지만, 가족애가 부족했던 이들이 부자의 자리에서 벗어나고 나서 가족애를 회복하는데 이때 비추어지는 가족-되기의 모습은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데 힘쓴다.
해인의 아버지이자 퀸즈 기업의 부회장인 범준은 퀸즈 기업이 망하고 시골로 내려온 것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죄책감을 현우의 아버지인 두관에서 고백한다. (9화) 자신이 가장으로써 가족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족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능함과 한심함을 토로한다. 사실상 퀸즈 기업이 무너진 것은 범준의 책임이 아니며 이로 길에 내앉게 된 신세 또한 범준이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일하게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범준이 위치한다. 이는 이장직에서 내려온 두관과의 접점으로 이어지면서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친목을 쌓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행보가 마치 그동안 자본으로 인해서, 회사 경영체로써 잃어버린 남성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해인의 시한부 사실이 공개되면서 범준은 충격을 받으며 두관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때 두관의 대화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관 아버지가 집안의 중심인데 딱 버티고 힘을 내셔야 애들도 따라서 힘냅니다.
범준 (…) 여태 저희 집 가장은 제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였거든요. 그게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솔직히 편했습니다. 한심하죠? 애들이 저를 의지하지 않는 게 편했다니.
두관 자식한테 아버지는 그런 게 아니에요. (…) 부모는요, 못나도 잘나도 자식한테는 등대 같은 겁니다.
그렇게 범준은 해인의 시한부 즉 딸의 죽음을 기점으로 가장으로서 회복할 기회를 부여받고 진정한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로 거듭난다. 남성의 진정성을 보여주면서 이를 위로하는 여정과 그런 것을 반성하는 모습의 적절히 섞인 끝에 도달한 아버지의 모습. 그러나 기묘한 것은 아버지-되기와 어머니-되기의 차이이다. 아버지-되기는 가장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 수행의 전부인 것과 달리, 어머니-되기는 노동의 소중함을 깨닫는 에피소드가 추가된다.
해인의 어머니인 선화는 시골에 내려와서까지 사치스러운 인생을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부잣집 사모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사치스러운 생활은 카드가 완전히 끊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노동하는 모습을 이어진다. 이때 외국인 노동자(백인 여성)에게 노동하는 법을 배우고 하루 종일 노동하고 나서야, 사치스러운 생활을 버리고 완전히 시골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0화) 선화가 노동하는 모습은 얼마간 자본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는 경험으로, 자신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것들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더불어, 딸인 해인의 병을 알게 되면서 선화는 완전히 자신을 반성하는 주체로 자리 잡는다. 엄마의 반성은 이 드라마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왜냐면 안타고니스트의 모슬희는 반성이 없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선화는 지금까지의 자신을 후회하면서 해인과 절절히 화해한다. (11화) 이후 해인에게 헌신하는 엄마로 거듭나게 된다. 왜 어머니 되기는 노동과 모성의 회복이 동시에 이뤄졌을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진정한 가족은 단순히 가족애의 회복으로서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드러난다. 회사 경영체로써의 가족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것과 가족이 애초에 일치된 상태이기에 가족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은 자기-경영, 가족-경영과 곧 일치하는 것이다. 해인의 남동생인 수철 역시도 그동안은 철없는 남동생이자 남편이었으나, 자신을 배신한 아내를 품고 친자식이 아닌 아들을 다시 끌어안고 아내를 위협하는 세력과 맞서기 위해서 체력적인 힘을 기른다. (9화, 15화) 수철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진정한 가장으로 거듭나는 아버지의 서사를 반복한다. 그렇게 세 사람은 변화함으로써 해인의 가족은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게 된다.
중요한 건 이런 가족의 회복이 두 가지 회복과 겹쳐진다는 것이다. 하나는 해인과 현우의 관계 회복이다. 다른 하나는 퀸즈의 회복이다. 퀸즈 기업을 다시 회복하는 것, 즉 다시 회수하는 것은 가족애가 쌓아가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게 퀸즈 기업이라는 거대한 부를 가지고, 거대한 회사 경영자가 될 자격은 이상하게도 제대로 된 가족 구성원으로 거듭나면서 획득하게 된다. 이는 위에서 살폈듯이 자본주의가 혼자서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와 함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에서 해인이 여자 주인공으로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이를 성취로 보더라도 페미니즘과 가부장제-자본주의가 이 가족과 이 드라마 안에서 공존하면서 오히려 가부장제-자본주의를 더 강화하는 서사에 기묘하게 기여한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의 드라마계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여성 서사에서 불충분한 점을 발견해내어 장르화될 우려가 있는 여성 서사의 전망을 새롭게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많은 여성이 드라마 안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여성의 곁에서 오래 있어왔던 TV 드라마가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