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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이어폰을 빼고 군산을 걸었다 [여행]

무료함을 달래러 떠난 첫 ‘혼자 여행’에서 얻은 두 가지

by 김지현 에디터
2026.06.15 11:46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보았다. 회사에 휴가를 올리기도 전에 숙소부터 예약했고, 2박 3일이었다.

   

회사에서는 매일 비슷한 일을 반복했고, 출퇴근길에는 늘 같은 노래를 틀어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 채 같은 길만 오갔다. 어렸을 때부터 늘 이런 익숙함이 가장 편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익숙함이 나를 무료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복잡한 마음도 정리할 겸,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무작정 떠났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조용하게 자연을 느껴보는 것도 좋아해서 군산을 뚜벅이로 여행하기로 했다.


군산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가장 먼저 한 것은 이어폰을 빼는 일이었다. 별것 아닌데 효과가 컸다. 음악으로 덮여 있던 자리에 내 발소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초행길을 걷는 내 걸음 소리를 들으니, 오랜만에 정신이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첫날은 근대 역사 거리를 천천히 돌았다. 옛 군산세관을 시작으로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장미갤러리, 근대미술관, 근대건축관,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차례로 둘러봤다. 숙소에 들러 짐을 풀고 좀 쉰 다음, 다시 나가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인 초원사진관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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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라, 오래된 건물과 골목을 목적지 없이 어슬렁거리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표지판에 보이는 장소가 궁금하면 그냥 그 방향으로 갔다. 빨리 가야 한다는 조바심 없이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둘째 날에는 동국사에 갔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사찰이다. 일제강점기 군산에 살던 일본인 신자들을 위해 지어진 절인데, 마당에는 2012년 일본 조동종이 세운 참사문비와 2015년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함께 있었다. 가해의 흔적과 사죄의 글, 피해의 기억이 한자리에 모인 곳이었다. 고즈넉한 절 마당에서 군산의 아픈 역사를 마주하고,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리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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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월명공원을 찾아 산길을 올랐다. 한참 오르던 중,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길이 보여 홀린 듯 그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갈 만큼 우거진 곳이라 ‘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소심하게 한 발씩 내디뎠다.


이어폰을 끼지 않은 덕에 우렁찬 새소리가 귀에 그대로 들어왔다. 근래 들은 자연의 소리 중 가장 컸다. 길게 자라 길까지 덮은 풀들이 종아리를 스쳐 간지러웠는데,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내가 느꼈던 무료함의 정체는 어쩌면 권태가 아니라, 감각을 닫아둔 데서 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월명공원 근처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또 한 번 특이한 길을 만나 조금 헤매다가 겨우 멀쩡한(?) 길로 빠져나와 ‘심리서점 쓰담’이라는 책방으로 갔다. 독립 출판 서적 한 권을 다 읽은 후 ‘생일 책’도 샀다. 내 생일 책은 바로 ‘내 생일과 같은 날에 출간된’ 책이었다. 나에게 깜짝선물을 해주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날에는 군산의 유명한 디저트 카페에서 모닝커피와 치즈 케이크를 먹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무료함을 달래려고 떠난 여행에서 오히려 더 정적이고 잔잔한 시간을 보내고 온 셈이었다. 그럼에도 2박 3일 내내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발길이 닿는 대로, 그곳의 모든 감각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여행했던 것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군산이 근대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수탈에서 시작된 군산의 근대를 실제로 세세히 들여다보니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역사를 낭만 없이 제대로 마주하고 온 시간이었다.


여행에서 얻은 것이 두 가지 있다. 또다시 무료함이 찾아올 땐 한 번쯤은 눈과 귀를 열어 볼 것, 그리고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무작정 걸어볼 것. 그러면 비로소 새롭게 들리고,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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