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만 덧칠한 바다 앞에서 [여행]

즉흥적으로 떠난 겨울바다 여행
글 입력 2024.01.0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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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자연 앞에서 점처럼 작아지는 기분을 좋아한다. 나에게 무겁고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어떤 것도 그렇게 작디작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 것 같아서다.

바쁘고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다가도 그저 멍하니 보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잠시 멍을 때리며 하늘도 쳐다보고, 좋아하는 풍경 앞에 우뚝 멈춰 보고, 그렇게 보고 싶은 걸 하염없이 바라볼 시간이. 어디의 누군가가 아닌 그냥 아무것도 아닌 나로 잠시 있을 순간이 말이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반짝이는 무언가로 다시 내 안을 채우곤 한다.

연말은 조금 갑작스러운 겨울 바다 여행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정말 그냥 갑자기,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전날에 기차표와 숙소를 예매하고 다음날 아무런 계획도 없이 불쑥 떠났다.
 
즉흥 여행도 혼자 여행도 모두 처음이라 새로웠지만 곧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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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원없이 바다를 보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해가 다 질 때까지 그저 쭉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여러 해변을 지나치고, 빨간 등대도 지나치고, 이끼로 뒤덮인 자갈밭과 모래밭도 지나쳤다.
 
무수히 많은 파도와 파랑을 보았다. 그만큼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살도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만 덧칠한 것 같은 바다 앞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파도를 바라봤다. 내가 원하는 풍경 앞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멈춰설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이 좋아졌다.

30분이란 시간 동안 꽉 막힌 도로 위의 서울에선 한 뼘 정도 갈 수 있었는데, 여기선 그보다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나름 대중교통에 익숙한 경기도민이라 자부했는데 이 곳의 버스는 산을 넘어 다녔다. 시원하게 해안 길을 따라 달려나가는 버스가 때론 겅중겅중한 공간과 시간을 꿰는 바늘과도 같이 느껴졌다.

겨울의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하나나 여러 갈래로 생겨났던 파도는 때론 하나로 뭉쳐져 더 큰 파도가 되곤 했다. 깊고 푸른 동해안의 파랑은 신기하게도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그 무엇 하나 같지 않았던 파도의 모양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끊이지 않는 파도소리에 어느새 알 수 없는 편안함과 포근함마저 느껴졌다.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산다면 지금 이 순간의 풍경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까? 바라보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풍경이 있다는 건 어쩌면 매우 축복받은 일이다. 가끔 삶이란 해변가에서 두 손으로 그러모은 반짝이는 모래알 같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반짝이는 것이든 두 손안에 어떤 걸 그러모을지는 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어떤 걸 두 손에 쥐고 있었든 모든 것이 손 틈사이로 빠져나가 빈손이 될 순간은 온다. 그건 나쁜 일도 아니고 슬픈 일은 더더욱 아니며, 그냥 그럴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두 손안에 힘들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빛나는 풍경을 끝까지 담아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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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따라 노을이 완전히 질 때까지, 그렇게 어스름이 깔리고 사방이 어두워 질 때까지 바다를 바라봤다. 나는 어쩌면 모든 순간 닫힌 의미를 찾고 교훈을 찾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이란 해피엔딩이 아닌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이렇게만 보였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곤 했다. 나의 의지와 노력은 세상의 수많은 변수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걸 깨닫게 된다.

즉흥적으로 떠난 이번 여행에 대한 감상을 무언가 대단한 교훈이나 의미로 완결짓지 않기로 했다. 많은 걸 느꼈을 수도 있고 딱히 아무것도 깨닫지 못해도 괜찮다. 어쩌면 먼 훗날 이 순간의 기억을 꺼내 보았을때에, 그 때에 비로소 완결되는 풍경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2024년 새해부터는 마음을 활짝 열고 살고 싶다. 섣불리 완결짓거나 단정짓지 않고 묵묵히 이어지는 삶을 믿으며 살고 싶다. 그 모든 순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올해는 바다의 풍경만큼 사랑하는 무언가가 많이 생기는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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