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른 방식의 삶 - 므레모사 [도서]

글 입력 2023.12.2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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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는 얼핏 보면 발랄한 표지와는 달리 자기 “다리를 뽑아버리면 어떨지”와 같은 잔혹한 상상력으로 시작한다. 그는 출입금지였던 “렘차카 특별 구역”으로 들어가면서 레오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추궁하고 므레모사의 비밀을 듣는다. 사실 이 소설의 도입부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도입부와 겹친다.

 

인물들 역시 전형적이다. 태국인 기자인 탄은 주변 환경을 잘 의심하며 진실에 도달하려 했으나 결국 죽는다. 외국어에 능통한 미국인 헬렌은 다크 투어리스트로 낯선 상황에서도 비극의 실상은 평범하다고 능숙하게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일본인 이시카와는 다크 투어리즘을 연구하려는 대학원생이며, 한국인 주연은 여행 유튜버로 “호들갑을 떨”거나 쉽게 “새로운 화제”를 꺼내는 등 이야기의 전환을 이끌어내면서도 마음대로 유안의 여행 의도를 추측하는 등 유안을 종종 불편하게 한다. 게다가 출신을 알 수 없으며 소설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레오까지, 여행객들은 모두 수수께끼 마을에 들어가 위험에 빠져버린다.

 

모두 각자의 목표가 있으며 현직 기자, 연구자, 여행 전문 유튜버, 베테랑 다크 투어리스트, 꿍꿍이가 있는 인물 등이 섞여 있는 기이한 상황은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에서 자주 보일 유형이다. 이들 대화 대부분은 정보전달에 충실하다. 므레모사를 둘러싸고 있는 소문부터 그들이 이벤트에 당첨된 게 아닌, 사실 함정에 빠졌다는 것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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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유안을 제외한 인물들만이 므레모사에 출입했다면, 그리고 도입부에서 보여준 전형성을 이어갔다면 <므레모사>의 주인공은 레오였지 않을까. 행방불명된 연인을 찾기 위해 은폐된 지역에 들어가 마침내 “플랜트에 불을 지르고 진실을 알릴 정의로운 남성”이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형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유안만은 다르다. 직업의 성격도 다르고, 여행의 목적 역시 타인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유독 다른 인물과 거리가 먼 유안에게 므레모사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유안에게 므레모사는 “고향처럼” 느껴지는 장소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 선망은 소설에서 은밀히 느껴진다. 예컨대 유안에 대한 서술에서 볼 수 있다. 유안에게 종종 보이는 표현은 “아름답다”는 말이다. 한나는 유안에게 자주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 말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유안이 유명해지면서 그에게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굳이 유안에게 “강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유는 주연이 마음대로 유안의 여행 동기(70)를 해석하고 그를 “멋진 분”이라고 소개한 의도와 비슷하다. “희망을 가지고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라고 하는 말들 말이다. 정작 그가 듣고 싶은 말은 없거나 혹은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은 므레모사에서도 보인다. 이미 세뇌당한 여행객들은 귀환자들과 대화하면서 므레모사를 “아름다운 숲”과 “아름다운 마을”이라 말한다. 이미 피해 본 지역이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음을 말하면서도 굳이 “아름다운”이라는 말을 붙인다. 유안이 므레모사를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느낀 이유도 이 지점 때문이 아닐까.

 

유안은 “도움을 베풀러 왔고, 구경하러 왔고, 비극을 목격하러 왔고, 또 회복을 목격하러” 왔다던 동행자들의 의도를 지적하고 므레모사에서 계속 머무는 것을 “행복한 결말”(179)이라고 생각한다. 레오 역시 연인을 찾고 므레모사에 불을 질러 떠나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레오와 유안의 협업 관계는 무너진다. 유안의 의족을 걷어찼던 레오는 유안의 의족에 찔려 죽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새벽이 되면 나는 알 수 있었다. 고요와 적막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깊은 밤이 되면, 바로 이곳이야 말로 내가 궁극적으로 머물러야 할 자리라는 걸. 흔들림도 뒤척임도 없는 부동의 장소, 움직임이 없는 몸. 모든 것이 멈춰 선 몸.

 

그 몸 안에서 나는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 자유로웠다. (172쪽)

 

 

그 의사의 회고를 읽고서야 나는 내가 무엇을 바라왔는지 비로소 알았다.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 (175쪽)

 

 

유안의 여행 목적은 갑작스러우면서도 뒤늦게 나타난다. 그는 레오가 설명한 상황을 쉽게 믿으며 그가 주는 약을 매일 먹고 탄의 죽음에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그는 실제 귀환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사건에 휘말렸으나 아직 세뇌 당하지 않은 여행상품 사기 피해자였다. 그러나 유안은 귀환자가 실제로 있었음을 알고 태도가 바뀐다. 이전까지는 충실히 현 상황을 벗어나려 했던 인물이 머무르기를 택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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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반부터 다른 인물과는 거리를 두었던 유안에게 심신이 더 가깝게 느껴진 장소는 “움직임과 멈춤의 질서가 뒤바뀐” 므레모사였다. 소설의 마지막을 “당신들처럼 되고 싶어요. 부디 나를 받아주세요.”(183)로 끝낼 만큼 힘을 쓴 부분일 것이다. 이 역시 위험한 지역에서 탈출하고 진실을 밝히려 하는 익숙한 전개를 뒤튼 시도로 읽히기도 한다. 여기서 다크 투어리즘은 그저 유안이 기껍게 느끼는 공간의 원인 제공일 뿐이다.

 

유안이 므레모사 바깥인 일상과 므레모사 안의 귀환자들의 삶을 저울질 했을 때 므레모사가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상징적이다. 이전까지 일상에서 느꼈던 미묘한 의문과 함께 자신이 진정 바라던 삶이 사실은 “부동의 몸”이었던 걸 깨닫는다. 이 때문에 결말은 반전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납득할 힘이 생겼다. 다만 귀환자들의 신체가 변형되어 부동의 상태가 된 것을 “끔찍해 보이는 몰골”이라 말하면서도 반기고 동화되는 유안이 우리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소설의 결말을 곱씹을수록 소설 첫 문장인 “중요한 무대를 망쳐버리는 상상”과 결말과 겹쳐 보인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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