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0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 <싱 스트리트>를 보았다. <비긴 어게인>, <원스>를 이은 존 카니 감독의 세 번째 음악 영화였지만, 나는 이 감독의 작품이 처음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인물들의 성장과 OST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첫사랑이라는 핑계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아일랜드다. 경제 불황이 닥친 가운데, 주인공 코너 역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전학을 가게 된다.
그런데 이 학교, 무언가 심상치 않다. 가톨릭 학교지만 분위기는 살벌하다. 학생들은 대놓고 흡연을 하고 패싸움을 벌이며, 백스터 수사는 이를 방관한다. 심지어 형편이 어려워 검은 구두를 살 수 없다는 코너에게 당분간 맨발로 다니라며 신발을 빼앗아 버린다.
그렇게 낯선 학교에 적응해 가던 무렵, 코너는 모델 지망생 라피나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리고 자신의 밴드 뮤직비디오에 출연해달라고 제안한다. 얼떨결에 해버린 거짓말이지만, 그렇게 하나둘 멤버들을 모으고 밴드 '싱 스트리트'가 결성된다.
첫사랑에게 잘 보이기 위한 거짓말에서 시작된 밴드였지만, 코너는 이를 계기로 진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라피나를 생각하며 작사하고, 학교의 억압을 비판하는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 팍팍하고 희망도 없어 보이는 이 아일랜드 땅에서, 청소년들은 그저 지금 당장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개척해 나간다.
행복한 슬픔
영화 속에서 '행복한 슬픔(Happy Sad)'이라는 말이 여러 번 언급된다. 행복과 슬픔은 양립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만, 살다보면 사실 늘 행복한 순간도, 늘 슬픈 순간도 없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상처와 한계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그 끝에 자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코너의 형 브랜든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부모님의 불화 속에서 자란 브랜든은 코너처럼 음악을 하고 싶어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독일로 떠나려 했지만 실패했고, 대학도 자퇴했다. 어딘가 멈춰 선 사람처럼 보이지만, 코너의 음악에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며 누구보다도 응원해 주는 든든한 형이다.
가진 거라곤 포트폴리오와 녹음테이프뿐인 라피나와 코너가 보트를 타고 런던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브랜든은 망설임 없이 그들을 항구에 데려다준다. 멀어져가는 둘을 바라보며 환호를 보낸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선택이지만, 자신은 이루지 못했던 꿈이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대책 없는 낭만일지라도
살아갈수록 안정적인 선택이 중요해진다. 불안정한 현실에서 꿈은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찾아온다.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면, 가능성보다 현실을 먼저 따져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영화 속 인물들의 선택들은 모두 무모하다. 가진 것 하나 없는 10대들이 밴드를 만들고, 모델이 되겠다며 런던으로 떠난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성공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래도 이상하게 응원하고 싶다.
라피나 역시 그렇다. 모델이 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났지만, 의지할 사람도 지낼 곳도 없는 현실 앞에서 결국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수영을 못하면서도 물속에 뛰어든 라피나는 이렇게 말한다.
"뭐든지 절대로 적당히 해서는 안 돼."
이 말을 듣자, 결과를 알 수 없더라도 한 번쯤은 부딪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과 폭력, 그리고 각자의 상처라는 현실의 벽은 크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성공을 약속하지는 않지만, 그 대책 없는 낭만을 믿어보고 싶다.
한계를 부숴 나가는 10대들의 반항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