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랑세트 감독의 신장 '댄스 클럽'을 제15회 스웨덴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었다. 리사 랑세트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두 차례 찾았고, 2010년 작 <퓨어>로 수상까지 거머쥐며 한국 관객과는 이미 연이 깊은 인물이다. 올해 스웨덴영화제에서 랑세트 감독의 신작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더 반가운 일이었다.
스톡홀름의 정신건강 클리닉 '큐어'에서 일하는 요한네스는 자본과 이득 중심의 시스템에 의문을 품고, 댄서 라켈과 함께 환자들을 위한 댄스 클럽을 만든다.
'댄스 클럽'은 이 이야기를 결코 무겁게만 다루지 않는 블랙 코미디다. 그 웃음 뒤에 숨은 이야기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진단과 처방 대신, 춤을
큐어의 인턴 요한네스는 환자의 상태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병원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인물이다.
어느 날 클리닉 앞에서 약을 먹고 창의력이 떨어졌다며 소리치는 라켈과 마주하면서, 그의 의문은 점차 확신으로, 또 행동으로 바뀐다. 결국 둘은 큐어에 와서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토로하는 몇몇 환자들과 함께 댄스 클럽을 만든다.
댄스 시퀀스 대부분이 컷을 최소화한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랑세트 감독은 배우들이 춤을 너무 잘 추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마다 오히려 리허설을 멈췄다고 전한다. 결국 <댄스 클럽>에서 중요했던 것은 누구나 출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스러운 어설픔 그 자체였던 셈이었던 것이 아닐까.
상영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랑세트 감독은 영화를 기획하며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을 언급했다.
사람이 사회에 맞춰 살도록 약을 먹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더 나아지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하는가.
수많은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를 만나며 그가 얻은 결론은, 정신건강 진단에는 명확한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이는 정답이 있는 과학이 아니라 계속되는 논의 그 자체라는 것이었다.
차가운 스톡홀름, 낯선 북쪽
정신적 어려움은 현대인의 고질병이라 불릴 만큼 흔해졌지만,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한 걸음 뒤처져 있다. '댄스 클럽'은 바로 그 간극을 겨냥한다. 영화 속 스톡홀름은 차갑고 인공적인 도시로 그려지고, 그 중심에는 클리닉 '큐어'가 있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민간 업체가 운영을 맡으면서 진단을 많이 내릴수록 더 많은 지원금을 받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설정은, 랑세트 감독의 말처럼 스웨덴 사회에서도 점점 커지는 논쟁거리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요한네스를 비롯한 댄스 클럽 멤버들은 각 잡히고 깔끔한, 그래서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는 큐어의 공간을 마구 흐트러뜨린다. 현대인의 일상과 가장 닮은 공간에서 서로의 민낯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 자체로 공간적인 메시지이다.
반면 영화 중후반 인물들이 향하는 스웨덴 북부의 자연은 낯설고 신비로운 공간으로 그려진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 것도 '댄스 클럽'만의 장점이다.
여러 풍경과, 그 안에 얽힌 보편적이면서도 스웨덴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이 영화가 스웨덴의 여러 얼굴을 동시에 비추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우리가 치유되는 과정
큐어가 건넨 약과 상담은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인물들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대신 댄스 클럽의 멤버들은 서로에게 솔직한 마음을 나누고, 춤으로 저항하며 연대와 소속감을 배운다.
<댄스 클럽>이 특별한 이유는 이 무거운 질문을 결코 무겁게만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캐릭터 하나하나를 향한 애정이 느껴져서, 관객의 입장에서도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애써 가리고 가려도 결국 자신을 드러내야만 맞설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댄스 클럽'은 당당히 어깨를 드러내고, 춤을 못 추더라도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에 맞설 용기. 스스로와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질 용기. '댄스 클럽'이 관객에게 건네는 것은 결국 그런 용기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