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 스트리트가 개봉 10주년을 맞이하여 재개봉했다. 존 카니 감독의 <원스>와 <비긴어게인>을 잇는 또 하나의 명작 <싱 스트리트>는 앞서 그가 선보인 음악 영화와 다르게 '10대 소년, 소녀'가 주인공이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땐 시대적 배경이나 음악성보다도 통통 튀는 주인공의 러브스토리에 시선을 빼앗겼다.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 '코너'를 연기한 배우 '퍼디아 윌시-필로'의 마스크에 반해 한참 그의 사진을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고교생이 되어 마주한 영화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이 느껴져서 좋았다. 성인이 된 후에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니까'라는 노래 가사와,
"넌 무언가를 부술 줄만 알지, 창조할 줄은 모르잖아."라는 대사에 꽂혀서. 그래서 인생작이 되었다.
영화, 드라마, 소설…. 이야기 콘텐츠들은 그걸 바라보는 나이대에 따라 전해지는 감동이 다 다른 것 같다. 나는 N차 관람, N 회독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몇몇 작품들은 언제라도 다시 돌려볼 만큼 좋아한다. 볼 때마다 여유가 생겨서, 다양한 관점으로 '관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재개봉을 맞이하여 극장에서 보게 된 싱 스트리트를 통해 나는 전과 또 다른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스물넷이 되어 바라본 이야기에선 '기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영화는 1985년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코너'는 고교 1학년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형 브렌든의 영향으로, 홀로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길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아빠가 직장을 잃었고 가계 사정이 곤란하여 전학을 가야 된다는 말이었다. 코너는 예의범절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아이들이 바글대는 똥통 학교에 가게 된다. 그곳의 교장 벡스터는 매우 권위적인 태도로 코너를 짓밟는다.
전학 첫날부터 일진 배리에게 찍혀버린 코너. 앞날이 순탄치 않다. 게다가 교장은 무조건 검정 구두만 신어야 한다며, 코너의 갈색 구두를 빼앗는다. 구부정한 어깨, 동태를 살피느라 바쁜 눈. 구정물에 축축하게 젖어든 흰 양말…. 그런 코너를 위로하는 건, 하교 후 형과 함께 뮤직비디오를 보는 시간이다.

순탄치 않은 학교생활에도 볕이 드는데, 자신과 비슷한 쭈구리 신세 친구 '대런'을 사귀게 된다. 또, 기숙학교 앞에 서 있는 모델 지망생 '라피나'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밴드를 결성한다. 당대 인기인 가수를 흉내 내 테이프를 녹음하여 형한테 들려주자, 형 브렌든은 최악이라며 남의 것을 흉내 내지 말고 네 것을 만들라고 충고한다. 코너는 '싱 스트리트' 밴드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곡을 만들고, 라피나와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가까워지는 데에 성공한다.

리피나를 쟁취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에 코너는 점차 진심이 되어간다. 움츠러든 어깨가 활짝 펴지고, 반짝이는 두 눈은 미래를 또렷하게 직시한다.
"나는 미래파야."
있어 보이려고 둘러댔던 말이, 삶의 신조가 된 셈이다.
라피나는 코너와 가까워지고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놓는다. 엄마는 조울증으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알코올 중독자이던 아빠는 죽고 없다고. 또, 성인 남자 친구와 사귀었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으며 모델의 꿈을 펼치기 위해 런던으로 갈 거라고 얘기한다. 당시 아일랜드는 경제적 대공황을 겪으며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고, 이에 청년들은 새로운 꿈을 찾아 런던으로 떠났다. 코너가 전학을 간 카톨릭 학교는 매우 보수적이며, 규율을 중시하는 곳이다. 이렇게 개인의 개성보단 집단적 순응을 강조하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기에, 코너와 브렌든을 비롯한 청년들은 신문물인 뮤직비디오를 보며 잠시나마 숨 쉴 구멍을 찾았던 것이다.
라피나는 사랑을 두고 '행복한 슬픔'이라고 얘기한다. 코너는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던 말을, 라피나로 하여금 깨닫는다. 그는 사랑해서 슬퍼진다. 라피나를, 엄마 아빠를, 형을, 그리고 음악을 사랑해버려서.

I think I'm back in the dream
난 다시 꿈속에 있는 것 같아
I think I'm back on the ceiling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만 같아
It's such a beautiful feeling
정말 아름다운 기분이야
Going up
떠오르는 이 기분
She lights me up
그녀가 나를 환하게 밝히고
She breaks me up
그녀가 나를 무너뜨려(심장을 두근거리게 해)
She lifts me up
그녀가 나를 더 높이 끌어올려 줘
You find a mystery bound in perfection
완벽함 속에 묶여 있는 신비를 발견하지
You gotta read but you don't wanna reach the end
계속 읽고 싶지만, 끝에 다다르고 싶지는 않아
'Cause what if everything beautiful's fiction?
만약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허구라면 어쩌지?
And this reality's just pretend?
그리고 이 현실이 그저 꾸며낸 것이라면?
사랑에 빠진 코너가 라피나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다. 코너는 이 모든 게 꾸며낸 것이라면 어떡하지, 불안해하면서도 떠오르는 기분을 즐긴다.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

부모님의 사이는 극한으로 치닫고, 급기야 집을 팔아버린다. 늘 삶을 통달한 것처럼만 보였던 브렌든이 코너 앞에서 울컥하며 속내를 털어놓는데, 보는 내가 다 울고 싶어졌다.
"너는 내가 부모로부터 투쟁해서 얻어낸 것을 너무 쉽게 물려받았어. 담배를 이틀 동안 끊은 건, 나도 뭔가 좀 해보려고 그런 거야. 달라져 보려고."
그는 대학을 중퇴했고, 취업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 음악만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도 한때 아일랜드를 벗어나는 꿈을 키웠지만 부모님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라피나가 말도 없이 런던으로 떠나버린다. 실의에 빠진 코너. 그렇지만, 음악만은 놓을 수 없어서 꾸준히 밴드를 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마주친 라피나. 그녀는 코너를 모르는 체하다가 곧 사실을 털어놓는다. 런던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남자 친구의 말은 거짓말이었고, 그와 크게 싸웠으며 뺨까지 맞았다고. 자긴 이제 고등학생들과 어울리며 패스트 푸드점에서 일하는 인생이라고.
늘 당당하게 삶을 개척해 나가던 모습에 반했던 코너는, 달라진 라피나에 실망해 자리를 뜬다.
드럼, 피아노 등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연주했던 노래 'UP'을 코너 혼자 나지막이 부르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모든 게 허구라면 어떡하지, 걱정했던 것들이 현실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코너는 한 번 더 날아오르길 택하는 듯, 라피나를 향한 노래를 만든다.

학교에서 공연을 하게 된 싱 스트리트 밴드. 처음 코너를 괴롭혔던 배리까지 경호원으로 불러들인다. 밴드를 하며 달라진 코너를 보고 배리가 비아냥 거릴 때, 코너가 쐐기를 박으며 한 말이 배리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었다.
"넌 파괴할 줄만 알지, 창조할 줄은 모르잖아."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코너가 배리에게 성공한 자기 모습을 으스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술 심부름을 시키고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배리는 내내 파괴하는 것만 보았기 때문에 창조할 줄을 몰랐다. 그러다 코너가 건넨 손을 잡고, 공연장에서 싱 스트리트를 경호하며 처음으로 창조라는 것을 해본다. 공연장의 불을 켜라는 교장의 명령에, 전등 스위치를 '부수는' 배리의 행위가 무대를 지켜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감동적인 포인트였다.

뒤늦게나마 공연에 온 라피나. 코너는 라피나와 함께 밤이 나앉은 거리를 내달려, 브렌든의 방에 도착한다.
"지금 떠나려고."
코너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작은 배를 타고 런던으로 갈 테니, 항구까지 운전해달라고 말한다. 형 브렌든은 터무니없는 제안에 활짝 웃으며 지금 당장 데려다주겠다고 얘기한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코너'만은 이루길 바라는 간절함이었다.
그간의 작업물을 담은 포트폴리오를 들고 배에 오른 두 사람. 그 둘을 떠나보내며 숨을 몰아쉬는 브렌든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코너가 배에 오르기 전, 브렌든이 가사를 한 번 써봤다며 건넨 노래가 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가, 아마도 브렌든이 쓴 노래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Hey we're never gonna go if we don't go now
이봐, 지금 떠나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떠날 수 없어
You're never gonna know if you don't find out
직접 부딪쳐보지 않으면 넌 영영 알 수 없을 거야
You're never going back, never turning around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뒤돌아보지도 않을 거야
You're never gonna go if you don't go now
지금 떠나지 않으면 넌 영영 떠날 수 없으니까

음악은 물성이 없어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게 만든다. 노래의 시작과 끝을 음미하면서, 몇 분가량의 서사를 온몸으로 즐긴다. 고등학생들이 만든 노래와 엉성한 뮤직비디오 테이프, 모델이 되기엔 키가 작다는 말을 들어온 라피나. 그들이 작은 배를 타고 런던에 닿았을 때 꿈을 이룰지, 현실의 벽에 부딪힐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들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을 뼛속 깊이 만끽하고 있다는 거다.
직접 부딪쳐보지 않으면 영영 알 수 없을 테니, 물결치는 파도와 폭풍우 속을 가로지르면서.
작중 코너는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가리키며 말한다. 비가 오면 하늘의 먼지가 씻겨 내려가, 영국이 보인다고. 라피나와 코너가 항해를 떠날 때도 비가 쏟아진다. 그들은 울기 대신 웃기를 택한다. 거센 빗줄기가 박자를 쪼개며 하늘의 먼지가 씻겨, 언젠가 런던에 닿게 될 테니까 말이다.
존 카니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 한편이 항상 저릿해진다. 원스, 비긴어게인, 싱 스트리트 음악 영화 3부작 전부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싱 스트리트의 라피나, 코너가 성공했다는 말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암울한 현실에서도 스스로 기적을 일구어내는 강인한 믿음을 갖고 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려도, 다시금 솟아오르는 '창조자'의 자세를 지닌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건설하고, 끌어올린다.
말도 붙이기 어려워 보이는 라피나에게 다가간 코너. 그런 그녀를 위해 밴드를 만든 코너. 밴드의 미래와 라피나의 꿈을 위해 기꺼이 작은 배를 운전하는 코너. 그의 기적은 거저 찾아오지 않았다. 다양한 악기가 어우러져 가능한 밴드처럼 주변 친구들과 형의 도움, 그리고 미래를 우러러보는 창조자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를 다 본 후, 어쩌면 나는 기적을 거저 바라는 사람이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너지고 망가졌을 때 파편 속에 주저앉아 있길 택했던 적이 많다. 노래하는 마음을 기억하며, 멀리멀리 날아오르고 싶다. 무너진 마음으로 노래한다는 건, 언젠가 끝날 기쁨이 두려워 창조하길 주저하지 않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