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라는 사실, 알고 있었는가? 우리나라는 2025년 말 기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 전체의 21.2%를 차지하며 초고령사회로 당당히 진입했다.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하는데 37년이 걸린 일본 보다 두 배 더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까지 알고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턱 나온다.
부양해야하는 노인의 수가 청년당 몇명이고, 노동력이 얼마나 부족해지고, 노인 빈곤과 고독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고...... 머리가 고장난 선풍기처럼 건조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여기 그 불편한 회전을 바꿔줄 네 명의 대학생이 있다. 다가오는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자세를 유쾌하게 제시한다. 가장 잊으면 안 되는 것에 끊임없이 밑줄을 치고 있는 그들은 바로 "파뿌리 협동조합"이다.
저희 파뿌리 협동조합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주체적인 삶을 위한 용기를 수집합니다. 우리는 특히 노인에 집중합니다. 앞으로 파뿌리는 원 없이 도전하는 노인을 만날 것입니다. 영상과 잡지를 통해 여러분이 이들에 감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고, 우리는 삶을 감흥하는 법을 익히게 될 것입니다.
노인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노인을 이야기하지만, 분명히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미래를 어디까지 그려갈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으신가요? 파뿌리 협동조합의 행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아보자- 프로포즈 단골 멘트에서 재치 있게 따온 네이밍이 상상력을 자극해 자연스레 머릿속에 각인된다. 언뜻 보면 농산물 직판장 같은 이 협동조합은 인터뷰어, PD, 저자, 행사 주최사 심지어는 모자 판매상... 그 어떤 모습으로도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들은 현 시대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그러나 자꾸만 빼놓는 노인에 집중한다. "나는 검은 머리, 너는 파뿌리"와 같은 타인으로서 다가가는 것이 아닌 "파뿌리가 될 검은머리, 검은머리였던 파뿌리" (어쩌면 이미 파뿌리인 검은머리, 검은머리인 파뿌리)로서, 그저 발 딛고 서있는 시간대가 다소 다른 "우리들"로 바라본다. 그리고 모든 우리들에게서 가능성과 용기를 수집해나간다.
뮤즈를 찾아
무작정 길을 나섰습니다. 영감이 필요해서요. 회기동, 이문동, 종로, 을지로 .. 서울을 누비며 우리의 뮤즈를 찾았습니다. 주체적인 건 뭘까요. 도전은 어떻게 하는 걸까요? 아니 도대체 뭘 도전해야 하는 거죠? 아니 꼭 도전할 필요가 있나요? 이제서도 주체적일 수 있을까요?
파뿌리 협동조합은 특별한 노인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머리가 바랜 우리들. 하루에도 수백번씩 스쳐지나가는 조금 앞서간 우리들을 포착한다. 카메라 렌즈에 담긴 그들의 미소는 갓 잡은 고등어 같고, 그 미소를 본 우리들은 슈퍼 히어로가 된다. 파뿌리 협동조합은 그 중에서도 5명의 인연을 조금 더 길게 만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꾸밈없이 담아냈다.
정일영 교수님에게서는 자유와 락커의 정신을,
여유재순 작가님에게서는 탐험과 배움의 긍지를,
칠곡 할매 래퍼 '수니와 칠공주'에게서는 함께와 세월의 힘을,
50대에 헤드스핀을 한 정철종 비보이에게서는 열정 넘치는 소년의 모습을,
제주에서 전시하는 홍태옥 그림할망에게서는 순수함과 다정한 마음들을 포착한다.
삶을 원 없이 즐기는 꿀팁이 담긴 5편의 에피소드는 모두 비디오로 제작되어 파뿌리 협동조합 인스타그램(@pappuri_coop)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상 왼쪽 하단에 보이는 각기 다른 파뿌리 캐릭터를 보는 맛도 놓칠 수 없다.
다섯 조합원들의 빛나는 눈빛에 보답하듯 꾹 꾹 눌러 담은 영상은, 각 에피소드당 4편으로 나뉘어 업로드 되어 있다. 출근길에, 혼밥 할 때, 양치할 때 가벼운 마음으로 재생한 영상은 감동을 주고, 즐거움을 주고, 때로는 무거움을 준다. 하지만 어떤 감정이든 무슨 생각이든 가장 젊은 오늘이니까, 원 없이 즐기는게 중요하다.
머리카락만 가리면 몰라
알록달록한 5편의 에피소드를 한데 엮어주는 중요한 아이템이 있다는걸, 눈치 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모두 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파뿌리 협동조합의 신중한 손가락 끝에서 탄생한 모자. 캠프캡 디자인으로 노년층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도 중청 질감으로 청춘의 이미지를 더한 PAPPURI CAP은 믿기 어려운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 치매에 좋고 골다공증 예방에 좋습니다.
2. 몸과 마음을 개운하게 해줍니다.
3. 자신감이 생깁니다.
4.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5. 간지가 납니다.
이 29,000원짜리 요술 모자는 12월 17일 (수)까지 구매 신청이 이미 마감되버려 그 효능을 검증하진 못하지만, 아주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파뿌리 협동조합은 그들의 메시지가 모자를 타고 널리널리 많은 분들께 닿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다섯 조합원들의 모자를 벗기자 아주 매끈하고 새까만 머리카락이 쏟아져나오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모자를 쓰자 세월의 흔적이 담긴 멋진 주름, 빛나는 은색의 파뿌리 머리카락, 가까운 것보단 멀리 보고싶어지는 눈을 갖게되는 것이다.
나의 93세가 기대돼
파뿌리는 그동안 삶을 원 없이 즐기는 정일영, 여유재순, 수니와 칠공주, 정철종, 그림할망을 만나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아 이 나이에도 즐길 수 있는 거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연세가 많은 여유재순 님은 올해로 93세가 되십니다. 하지만 여유재순 님의 아이패드 그림은 오늘도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파뿌리가 발견한 가장 높은 가능성, 93세에 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를 100개 떠올려 보려합니다. 함께해 주시겠어요?
수집한 용기를 또 다시 수집하여 커다란 눈덩이를 굴려보자. 새해가 밝은지 12일째 되는 어느 눈이 오는 날, 회기동의 작은 카페에서 사부작사부작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2m가 조금 넘는 종이에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정렬 없이 마구 휘갈긴 우리들의 소망은 각기 다른 색깔의 크레파스로 그 자태를 뽐낸다.
두쫀쿠를 팔지 않아도 장사가 잘 되는 카페를 차리고, 하바나 해변에서 Havana를 들을 93세의 우리들이 기대된다. 직접 방문해 바라본 버킷리스트는 생각보다 더 거대했고, 더 알록달록했다. 생일 케이크에 긴 초 9개와 짧은 초 3개를 꽂는 상상을 하니 꽤나 멋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뿌리의 신선한 보관법
우리의 꿈은 왜 20대에, 30대에 머물러 있나요? 90세, 100세까지 꿈꾸고 즐기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파뿌리 협동조합의 마지막 행보이다. 지금까지 발견한 모든 반짝임과 가능성을 담아 잡지로 발간했다. 93세 버킷리스트의 아주 구석부터 파뿌리의 신선한 보관법까지. 짧은 영상에 채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들과, 글 뒤에 숨겨 있던 진심들을 더 자세히 만나볼 수 있다. 웹매거진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도 꿋꿋히 종이를 넘기는 파뿌리의 지조가 느껴지는 짙은 초록색 표지가 인상적이다.
파뿌리 매거진은 현재 교보문고 바로출판 POD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구매 링크는 파뿌리 협동조합 인스타그램(@pappuri_coop) 바이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래도록 꿈을 꾸었으면 하는 사람에게 이 초록색 잡지를 선물해주는건 어떨까?
파뿌리 협동조합은 우리 모두가 근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태도를 선보인다. 거친 종이 질감의 파뿌리가 빙글빙글 돌아 원형을 이루는 것처럼, 우리의 시간은 선형이 아닌 원형이고, 결국 우리는 돌고 돌아 우리가 된다. 타인을 조금 다른 나라고 인지할 때,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세대갈등과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뿐만 아니라, 더 거대한 수준의 삶의 자세를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 어떤 순간에도 긍정의 힘은 빛난다는 것, 그리고 나와 나의 삶을 믿을 용기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파뿌리 협동조합은 노인에 집중하여 그 메시지를 확대해냈고, 그 다음은 누구든 어디든 될 수 있다. 나이가 많아서 안 될거야, 도전하기에는 너무 늦었어를 타파해낸 우리는 나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또 다른 수많은 편견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튼튼한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파뿌리 협동조합의 아리고 달큰한 파 냄새가 널리 퍼져 진동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언제나 꿈을 꾸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