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에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녹아서 하릴없이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가 누군가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로 처음 이 곡을 접했다.
나처럼 느슨한 상태임에도 담백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영상에 담은 것이 멋져 보였다. 첫인상부터 이 노래가 좋았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먹먹한 머릿속이 하나의 투명한 점에서부터 번져 맑아지는 기분이다. 대충 가수만 기억한 채 음악을 잊고 지내다가 5월 12일 어떤 예고도 없이 이 곡이 다시 생각났다.
Daniel Caesar. 음악 스트리밍 앱에서 가수만 검색하고 인기순으로 하나씩 들어보며 곡의 제목을 찾는다. Who Knows. 금방 나온다. 유튜브에 곡 제목을 검색한다. 가장 상단에 올라와 있는 공식 가사 영상을 본다. 새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과 운전하고 있는 다니엘 시저의 모습이 보인다. 가사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영어로 이해하려다가 놀랍게도 다니엘 시저 공식 계정에서 올린 한국어 가사가 함께 있는 영상을 발견한다.
노래는 영상 속 풍경처럼 잔잔하다. 가사마저 그렇다. 마치 다니엘 시저의 자전적 이야기인 듯 솔직하다. 대부분의 사랑 노래가 그러하듯 한 사람을 사랑하는 노래인데 그의 태도는 조심스럽다. 자신과 보내는 시간이 낭비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자신이 겁쟁이가 아닐지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은 자칫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데, 싶으면서 내가 비춰 보인다. 그의 가사에 이입한다.
그렇게 나의 거울처럼 이 노래의 가사를 곱씹었다.
Is it a crime to be unsure?
확신이 없는 게 죄일까?
In time, we'll find if it's sustainable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이게 지속될 수 있는지
You're pure, you're kind, mature, divine
넌 순수하고, 다정하고, 성숙하고, 신성해
You might be too good for me, unattainable
넌 내게 과분해서, 닿을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Who Knows(2025) - Daniel Caesar
부정하고 있던 내 깊은 곳에 잠가둔 마음이 불쑥 튀어 올랐다.
이건 준비가 안 되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올라오면 안 되는데, 오늘처럼 따뜻한 날에는 더더욱. 많은 이유로 애써 감춘 마음이었다. 그중에 가장 큰 이유를 한 단어로 말하면 ‘책임감’이다. 평소에 친구 같던 그 단어가 올해는 나를 가장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원인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날 초라하게 하는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서 준비는 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기적처럼 마음이 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용기를 내라고 한다. 치열한 시대는 사람들의 사랑을 메마르게 만들고, 어떤 경우에는 사치로 여기게 한다. 어느새 나에게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내가 겁쟁이라는 가사에 이입했다.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책임감으로 누르며 용기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기반에 있다면 사랑에 정답은 없을지 모른다. 이 노래 가사의 주인공과 나의 사랑도 어리석고 답답해 보일 수는 있어도 틀린 사랑은 아니다. 평균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고 생각이 많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도 배우는 것은 있다. 인내하고 절제하는 사랑. 감히 나는 이 영역에 있어서 이제는 거의 통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좋은 건지는 답할 수 없지만, 그렇다.
또, 그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시간이 쌓이며 내가 그토록 원하던 ‘Just The Way You Are’의 사랑에 가까워졌다. 여전히 나보다 나은 부분이 커 보이고, 내 부족한 점에 비해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이상화’ 현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상대의 부족함도 발견하고, 내가 덮어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을 확보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기대가 가져오는 쓴맛을 배운다. 꿈에 그리던 직장도, 사랑도 현실이 되었을 때는 구멍이 보일 수밖에 없다.
Who Knows. 한 곡을 이입해서 반복 재생하다가, 어느 순간 내가 다니엘 시저가 말하는 사랑받는 상대가 되는 경험을 한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위태로운 미래에 두려움에도 나에게 조심히 다가와 주는 사람을 생각한다. 확신이 없더라도 용기 내는 사람, 나에게 순수하고 다정하고 성숙하고 신성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떠올린다.
흠… 새로운 경험이다. 따뜻한 경험이다. 언젠가 나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서 좋다는 사람에게 사랑받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