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누구나 때로는 악마’라는 말에 동의하는지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누구나’라는 말에 타인의 어두운 면모를 떠올리고, 내 속의 악마를 애써 부정하며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누구나 들키고 싶지 않은 불편한 감정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드러나는 순간 신뢰가 깨지고 더 이상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것일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와 같은 가사를 한 넘버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Everyone’s A Devil – Now and Then)’은 이 극의 주제를 전하는 대표 넘버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 모든 사람 안에 어둠이 있죠
누구나 악마죠 가끔은 착한 척은 그만 벗어봐 가면을
이제는 맘 편하게 즐겨 당신도 악마일지 몰라"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은 불신이 난무하고 자유가 박탈된 1937년 소련을 배경으로, 새해를 앞둔 12월 31일, ‘맨’과 그의 아내 ‘우먼’이 사는 집에 자신을 엔카베데(소련의 보안기관) 요원이라 칭하는 낯선 손님 ‘비지터’가 찾아오며 시작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부부 앞에서 비지터는 그들의 치욕스러운 비밀을 하나씩 폭로하며, 두 사람 사이를 경멸과 불신으로 몰아넣는다. 자신에게 단 '하나'의 할당량이 남았다는 비지터의 말 앞에서, 두 사람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이 극을 알게 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유튜브로만 짤막하게만 극을 접할 수 있었던 시절, 미드나잇만의 특유의 코믹하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와 매력적인 넘버는 실제 공연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비인간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비지터의 존재는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극장에서 직접 마주한 공연은 모든 면에서 그 기대를 뛰어넘는 만족감을 주었다.
‘액터뮤지션’이라는 부제답게, 극에는 5명의 ‘플레이어’라 불리는 연주자가 등장해 직접 악기를 연주하면서 동시에 연기와 노래까지 소화한다. 이러한 연주자들의 움직임 덕분에 더욱 역동적인 무대를 만나볼 수 있었다.
Knock Knock Knock! : 감춰진 어둠에 노크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작품이 메시지를 풀어내는 방식이었다. 글의 서두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극은 인간 내면의 어둡고 깊은 본성을 그린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비지터이다. 맨은 시대에 대한 두려움과 그 속에서 피어오른 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고발하고 투서를 보내 동료를 위기에 내몬다. 비지터의 폭로에 우먼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맨의 말에도 불구하고 괴로워하며 그를 경멸한다.
비지터의 폭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우먼이 엔카베데 본부에 다녀왔으며 거짓 고발을 했음이 드러난다. 방금 전까지 맨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던 우먼이 ‘살기 위해 그랬’다는 말과 함께 맨과 똑같은 변명을 하며 판도가 뒤바뀌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과연 이들을 단순히 나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의 행동이 악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맨이 그렇게까지 호소했던 ‘다른 선택의 여지’를 떠올리면 쉽사리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이라는 말처럼, 맨은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는 자상한 남편이었고, 우먼 또한 잡혀간 이웃을 걱정하는 따뜻함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시대와 상황은 그들을 악마로 만들었다. 극은 비지터라는 의문의 인물과 아이러니를 통해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어둠이 있음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평범한 인간에게서 드러난 악마의 모습, 이 불편한 상황은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만약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내 목숨과 가족의 생사가 걸린 일이라면?
역사는 반복되고, 두드릴 문은 널렸지
실제로 극장에서 마주한 비지터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무대 위 부부의 집을 휘젓고 다니며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내뱉는 말과 행동에서 어떤 압도감이 느껴졌다. 배우의 비지터 연기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비지터는 누구일까. 아니, 무엇일까. 이 극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선명한 주제의식도 있지만, 무엇보다 비지터의 존재를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외적인 존재을 내세우는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비지터는 어딘가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는 손님인 양 부부의 집을 찾아오고, 시간을 멈추며, 부부가 했던 말들을 다 꿰뚫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뮤지컬 <팬레터>의 히카루나 <사의 찬미>의 사내처럼 관념이 의인화된 인물이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의 의미로 규정되기보다, 어디에나 존재하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존재로 그려진다.
물론 관념의 상징으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비지터라는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극이 달리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극 중 맨의 입으로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악마’라는 개념, 맨과 우먼의 죄책감 등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비지터를 악마, 혹은 극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전지전능하고 아주 매력적인 장치 정도로 생각하고 공연을 관람했다. 배우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비지터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극을 볼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에, 모든 곳에 존재하는
또한 눈에 띄었던 점은, ‘누군가’, ‘우리’, ‘그날’과 같은 대명사의 사용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인물의 배역명도 ‘맨’, ‘우먼’, ‘플레이어’ 등으로 특정되지 않은 존재를 가리키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비지터(Visitor)’도 마찬가지로, 특정한 인물을 지시하지 않음으로써 극 중 상황이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암시한다.
극 중 비지터는 자신이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의 이 섬뜩한 한마디는 무대를 넘어 관객에게까지 확장되며, 인간 내면의 어둠과 공포, 사회에 스며 있는 폭력성, 거기에 더해 보이지 않는 감시의 시선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드러낸다. 결국 우리 주변의 비지터는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것들 중에 스며 있는 존재다.
무대 구조 또한 눈여겨볼 만했다. 맨과 우먼의 집을 중심에 두고, 바깥으로는 비지터와 플레이어만이 드나드는 공간이 존재한다. 문은 프레임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별도의 벽이 설치된 것도 없었기에 집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밝기의 차이(내부는 밝게, 외부는 어두컴컴하게)로 분리된다. 때로는 그 경계가 허물어지기도 한다.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그 어두운 통로 같은 공간은 마치 시선의 비대칭성을 보여주는 듯 하여 흥미로웠다.
모두 다 악마죠, 때로는
극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블랙코미디 특유의 코믹한 분위기 덕분에 마냥 어둡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비지터가 등장하기 전 부부가 부르는 '너와 함께', '자유롭게 살아' 등의 넘버는 밝고 경쾌하게 들리지만 완전히 밝지만은 않다. 어딘가 으스스하고 건조하게 흘러가는 극의 분위기는 미드나잇이라는 뮤지컬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극 중 멈춘 '시간'이 언급되는 방식이었다. 비지터가 등장한 시점부터 사라질 때까지 극 중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춘다는 설정인데, 중요한 것은 시간이 멈췄다는 사실 자체라기보다, 멈춘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인물의 입을 통해 반복적으로 내뱉는 방식보다는 조금은 더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면, 비지터의 신비감 또한 더해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뚜렷하지 않은 인물을 내세워 선명한 주제를 무겁지만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전달하는 극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대학로 NOL 유니플렉스 3관에서 8월 9일까지 공연되며, 오는 10월부터는 '미드나잇' 시리즈의 또 다른 프로덕션인 '미드나잇: 앤틀러스'가 공연될 예정이다. 두 가지 버전의 연출이 주는 차이를 느껴보는 것 또한 이 작품을 즐기는 또 다른 방식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