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삶을 추동하는 동력이란 [공연]

무대, 태극권, 그리고 펑크 락!

by 김승주 에디터
2026.05.26 12:27

 

 

무대라는 마법의 공간


 

극장이라는 공간은 정말 특수하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객석과 무대 간의 합의된 거짓을 통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정교한 시각 효과가 없어도, 화려한 무대 세트가 없어도, 배우가 허공에 대고 ‘이곳은 우주선이다’라고 선언하면, 그때부터 극장은 우주 한가운데를 표류하게 된다. 또는, 30년 뒤의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기계가 펑크락 밴드로 활동할 수도 있다. 혹은, 무의 공간에 우뚝 선 나무 한 그루가 난데없이 태극권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을 가진 무대에서 불가능한 것이 하나 있다. 변화하지 않는 것. 무대 위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물이 변화하고, 사건이 벌어지고, 환경이 변화한다.

 

무대는 삶의 반영이다. 삶은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대는 선언한다. 변화하지 않은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어떠한 한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죽은 것이다.

 

무대는 변화를 이야기한다. 고로 삶을 노래한다. ‘프로젝트 이듬’의 부산국제연극제 10분 연극제 참가작 <리듬 앤 타이치>, 그리고 뮤지컬 <펑크>를 통해, 삶의 동력을 추동하는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리앤타.png

 

 

 

리듬 앤 타이치: 나무는 태극권을 할 수 있을까


 

<리듬 앤 타이치>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변화’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태극권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였다. 이 작품의 무대 위에는 사람과 나무, 둘뿐이다. 사람은 태극권을 한다. 나무는, 나무이므로, 가만히 있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며, 나무에게 함께 태극권을 할 것을 종용한다. 나무는, 역시 나무이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사람은 계속해서 움직이지 않는 나무를 떠난다.

 

그리고 사람이 떠나고, 나무는 ‘변화’라는 가능성을 알게 된다. 부동의 존재인 나무가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은 순간, 갈망이 생긴다. 어쩌면 충족될 수 없는 갈망이. 나무는 사람의 말을 듣고 상상한다. 그리고 움직이려 시도한다. 간절히 바라고 노력한 끝에, 나무는 태극권을 할 수 있게 된다.

 

연극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양상은 다양하다. 생각, 사건, 인물, 환경, 세상, 역사, 모두 가변적이다. 그러나 10분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변화는 움직임의 변화이다. <리듬 앤 타이치>는 부동의 존재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그려냄으로써, 삶을 추동하는 갈망과 의지를 물리적인 무대 위에 그려낸다.

 

 

 

뮤지컬 펑크: C는 첫 호흡, F는 내일의 숨결


 

뮤지컬 <펑크>는 100분 동안 인간의 욕망에 대해 노래한다. 이 작품은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펑크> 속 모든 인간은 ‘에덴’이라 불리는 천국 같은 공간에서 영원한 안락을 누리며 살고, 인간이 아닌 ‘클론’들은 갈등과 폭력이 만연한 ‘인페르노’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인간이 ‘에덴’을 탈출하여 인페르노로 내려온다. 완벽한 안락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난 것이다.

 

에덴에서 탈출하여 인페르노로 내려온 인간의 이름은 ‘글렌’이다. 그는 영원히 지속되는 안락을 누리는 것은 인간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글렌은 에덴의 인간들을 ‘안온에 찌든 좀비’라고 이야기하며, 모든 욕망이 거세된 채 사는 인간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그런 그는 인페르노에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는 클론 ‘레오’를 만난다. 그는 레오에게 기타와 노래를 가르친다. ‘C코드는 첫 호흡이고, F코드는 내일의 숨결이야’. 음악에 묻어나는 것은 비이성적인 고양감과 불완전한 욕망, 그리고 온갖 감정들이다.

 

인간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 살아있기 위해, 인간은 변화하고, 변화함으로써 인간은 살아간다. 뮤지컬 <펑크>는 강렬하게 내리꽃히는 음악으로 ‘변화’를 표현한다.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죽을 때 죽더라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세상에 증명하고 난 뒤에 죽고자 하는 것. 그것이 <펑크>가 말하는 인간성이다.

 

 

펑크_썸네일.jpg

 

 

 

음악과 움직임


 

결국 <리듬 앤 타이치>가 보여준 부동의 존재가 깨어나는 신체적 움직임, 그리고 뮤지컬 <펑크>가 강렬한 비트로 쏘아 올린 감정적 고양감은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한다. 그것은 바로 '살아있음'에 대한 증명이다. 나무가 태극권을 수련하고, 안온한 낙원을 버린 인간이 거친 기타 줄을 튕기는 그 모든 순간은 정지된 상태를 거부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치열한 몸부림이다.

 

그러므로 무대의 막이 내리고 조명이 꺼진 뒤, 극장 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명확하다. 무대 위에서 무엇이든 가능했다면, 그 무대를 지탱하는 진짜 삶을 사는 우리 역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고정된 배역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주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만의 무대에서 연주해야 할 가장 뜨거운 리듬이자 펑크일 것이다.

 

 

김승주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연극을 좋아합니다. 폭넓은 문화 향유를 지향합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