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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반복과 변주, 복기되는 말들 - 그녀가 돌아온 날 [영화]

말, 민낯

by 신영주 에디터
2026.05.22 21:10

 

 

홍상수의 영화는 처음이다.

     

영화를 보며 들었던 생각은, 뭔갈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 같지 않았다. 어디선가 그의 영화가 점점 작아진다는 평을 봤는데, 실제로 최근 작품들은 감독 본인이 직접 감독, 각본, 촬영, 편집, 음악까지 도맡는다고 했다.

 

간결함과 덜어냄 속에서 인물의 미묘한 감정 변주와 오가는 감정선이 선명하게 드러남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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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그녀가 돌아온 날> 공식 포스터

 


영화에는 총 다섯 개의 시퀀스가 등장한다.

 

12년의 긴 공백을 깨고 배우로 복귀한 주인공은 세 개의 인터뷰를 잠깐의 휴식을 틈으로 연달아 진행한다. 질문의 유형과 대답의 갈래는 대체로 비슷하다. 와중에 등장하는 것은 '아' 다르고 '어' 다른 질문과 답변이고, 마지막의 교차는 세 번 모두 동일하지만 그 역시 '아' 다르고 '어' 다른 면이 있다. 사람은 같은 말을 반복할 수는 없다. 설사 그런다고 해도 상대의 얼굴과 내 기분도 다르고 대본이 아닌 이상 조금씩의 변주가 있다.


첫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극도로 꺼린다. 다음, 다다음 인터뷰에서는 그것을 그리 숨기지 않는다. 입이 풀려서 그런 것인지 분위기가 풀려서인지 모른다. 말하고 싶었던 건지 말하지 말아야 했는지 말하는 그 순간에는 잘 모르니까 솔직해져 버린 것일지도.

 

그녀는 감독에게 기자들의 번호를 받는다. 유독 즐거운 대화를 나눈 듯 보였던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 이혼 이야기, 사람들은 원래 못났다고 말한 것은 담지 말아달라 부탁한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즐겁게 말할 때는 그녀의 편인 것 같던 말이 자신에게서 돌아서 찝찝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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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민낯은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순간적인 열망과 언어가 가진 회수 불가의 원칙이 충돌하면 후회와 공허함만이 인다.

 

말(=언어)이 가진 불완전함이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두 가지의 수동적 선택권을 갖는다. 본래의 의도를 배반하거나, 혹은 소유권이 상대에게 넘어가거나. 말을 들은 사람(인터뷰어)이 비밀을 쥐게 되면서 은근한 강자가 되는 권력의 전복이 발생한다.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있다. 처음, 인터뷰어는 상대의 답을 듣기 위해 약간의 저자세를 취한다. 질문하고 기다리고 웃거나 고개를 끄덕인다. 인터뷰이가 약간은 갑의 위치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약간은 그렇다. 둘의 관계가 뒤집힌다. 무언가를 고백한 화자는 취약해지고 말을 거두어 간 청자는 권력을 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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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차

 

인터뷰의 대화가 [연기 수업]이라는 메타적 장치를 통해 다시 재현된다. 질문의 순서는 타임라인대로 진행되지 않고 뒤섞이고, 인터뷰어의 존재 역시 혼재된다. 인간이 기억과 사고를 재구성할 때 발생하는 불가피한 오차인 걸까. 지나간 대화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억에 남는 것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양가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약간은 편향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기억을 되짚어 나온 대본에는 미묘한 변주가 있고 약간의 방어기제도 담겨있다. 심연이다. 아쉬운 언어를 고쳐 말한다거나 하지 못했던 말을 덧붙인다거나, 통화의 내용을 복기하며 내재한 답답함을 배설한다. 인터뷰에서는 하지 않았던 말들도 등장한다. 접어둔 대본을 다시 펼치고는 한동안 바라본다. 대본은 펼칠 수라도 있지 실제 대화는 다시 펼칠 수 없고, 말을 그렇게나 했는데 남는 것은 복잡한 감정이다.

 

말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순간은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다. 완전히 넘어가는 것도 아닌 것이 내 말이니까 자꾸 신경이 쓰인다. 상대가 듣는 순간 다른 모양이 되고, 기록될 가능성을 갖고, 때로는 나를 설명하는 재료가 되어버린다. 이제는 나를 떠났는데 전화하고 부탁하고 복기하고 연기하고 대본을 펼쳐보게 되는 것이다. 근데 그래도 별수 없다. 이미 말해버렸다.

 

인터뷰가 진행된 이탈리안 음식점도, 담배를 태우던 정원도, 심연이 돌출된 연기학원도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곳에 남은 것은 말이었고, 말 끝에 남는 것은 공기의 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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