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틈을 보여준다는 것. 시선의 흔들림, 흐트러진 숨결, 목소리 끝의 떨림 같은 내 취약함을 드러내고 벌어진 틈 사이로 너의 세계를 포개고자 했다. 가장 약한 나의 곁에 너를 놓아두고 싶었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원보다, 울퉁불퉁한 모서리가 서로의 홈에 들어맞을 때 생겨나는 애틋한 맞물림. 나는 그곳에서 더 높은 체온을 느꼈고, 그제서야 안정을 찾았다.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흠 잡힐 곳도 없으며, 아무리 굴러도 제 모양을 잃지 않는 원은 아름답다. 그들은 내 주변에서 매끄럽게 빛났지만, 나와 걸리는 지점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기울어진 쪽은 오히려 울퉁불퉁한 모서리를 가진 것들이었다. 서로의 홈에 가까스로 맞물릴 때의 애틋하고도 불안한 감각. 불완전함이 자연스러운 자리. 내가 안전하다고 느낀 곳은 그런 결핍의 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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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말하는 차가운 정답이 슬픈 날들이 있었다. 그 매끈한 문장 위에서 미끄러지는 쪽은 늘 나였으니까. 한때는 그런 태도를 동경하기도 했다. 흔들리지 않고, 틀리지 않고, 알맞은 표현을 골라 정확한 문장으로 세계를 만드는 사람. 그러나 그 곁에서 나는 함께 완전해지기보다 먼저 슬퍼졌다. 나의 투박함이 그의 세계에 맞물리지 못하고 끝내 걸림돌이 될 것만 같았다.
나의 선망은 다른 곳에서 생겨났다. 세상이 점점 완전해질수록, 자신의 모서리를 투명하게 내보이며 투박한 진심으로만 문장을 짓는 사람이 있었다. 내 속에서 가장 먼저 걸러냈던 어긋난 고백들이 그의 입에서 나올 때, 내가 삼켜버린 때 묻은 진심들이 그에게서는 깨끗하고 선명하게 뱉어질 때, 그의 눈동자와 표정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완성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미완으로 남은 사람이 나뿐일까 두려워하던 내 마음에, 그가 맑게 웃어주는 것 같았다. 그게 우리라는 듯이. 그게 너고 나라는 듯이. 비도 오지 않던 마른 날에, 갑자기 함께 우산을 써주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불완전한 존재가 사랑을 실감하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했다. 망가짐을 얼마나 허락하는지. 얼마나 볼품없는 얼굴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지. 사랑은 아름다운 순간보다, 가장 낮고 비좁은 마음을 들키고도 함께 있으려 했던 시간 속에서 더 분명히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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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도 그랬다. 서로의 뒤틀림을 보며 울고 웃던 시간. 가장 밑바닥에 고인 질투마저 꺼내 보이며 서로를 상처 입히고, 무너지는 것도 다시 쌓아 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웠던 때. 이상하게도 우리는 불완전함 투성이였지만, 사랑으로서는 더 완전했던 것 같다. 서로를 아름답게만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흉한 곳까지 기꺼이 사랑의 내부로 끌고 들어왔다.
균열은 서로의 모난 구석을 사각지대에 남겨두기 시작했을 때부터 생겨났다. 더는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뒤로 물렸을 때, 편평한 면만 내보이는 관계 속에서 나는 나를 철저히 모퉁이 뒤에 감추었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아서, 사랑에 어울리는 모습만 남겨두려는 욕심이었다.
모난 구석을 숨긴 채 이어가는 사랑은 그 시간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있던 나까지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내가 계속 이방인 같았다. 처음에는 그것을 성숙의 증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쉽게 어울리지 않고, 빨리 믿지 않는 일. 사람들 사이에서 한 발 물러나 지켜보며, 그 거리감 속에서 나만의 깊이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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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으로 타인의 삶을 무심히 밀어 올리다 보면, 나와 비슷한 고독을 앓는 사람들이 끝없이 쏟아졌다. 새벽의 방은 조용했고, 밝기를 낮춘 검은 액정에는 내 얼굴의 윤곽이 희미하게 겹쳐 비쳤다. 이 고립이 나 하나의 결함이 아니라 시대의 기류라는 생각에 나는 몰래 안도했다. 화면 너머의 솔직한 고백들을 읽으며 누군가의 슬픔, 분노, 사랑, 실패와 회복까지 손끝으로 스쳐 보냈다.
나는 많은 감정을 목격했다. 그러나 화면이 멈추는 순간, 그 감정들도 함께 사라졌다. 타인의 삶만 계속해서 내 안에 들어섰고, 내 삶은 그 자리에 고여 있었다. 혼자 겪은 감정들은 위로가 되기보다 겁을 만들었다. 손가락 끝이 저릿해졌다. 그런데도 잠시 불안을 감지했다는 사실만으로 희미한 자부심이 생겨났다. 나는 적어도 내 불안을 알고 있다고. 내 현실을 잘 구분하고 있다고. 그 작은 자부심은 로딩이 끝난 화면처럼 나를 다시 밝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다른 세상을 밀어 올렸다.
타인의 세상을 지켜보던 나는 어느새 점점 더 내 방으로 숨어들었다. 매끈한 세상에 뛰어들 자신이 사라졌다. 나 자신을 혹독하게 다듬고 깎아야만 할 것 같았다. 옳고 그름을 검색하고, 확인하고, 되짚었다. 나 역시 가장 안전한 형태로 조립된 뒤에야 겨우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다듬어진 얼굴로 타인을 만났다. 읽고, 가늠하고, 분류했다. 상처받기 전에 먼저 해석하고, 미움받기 전에 먼저 물러났다. 빈틈없는 무균실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서로에게 가닿아야만 느낄 수 있는 온기 대신, 추워도 서로를 오염시키지 않는 거리를 택했다.
나의 허점, 욕망의 뒤틀림, 타인을 향한 열등감 같은 것들은 오직 손안의 검은 액정 속에만 부지기수로 쌓였다. 결코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꽉 쥔 채로. 누군가 스치듯 내 화면을 들여다보는 순간, 손아귀의 긴장은 극에 달했다. 나는 거리를 벌리고, 화면을 가리고, 몸을 낮추었다. 방 안에서 혼자 반복해온 훈련이 자연스럽게 밀어 올린 습관이었다.
겁 없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갔던 어린 날이 있었다. 좋아한다고, 밉다고, 서운하다고,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여린 살갗 위에는 상처가 그대로 남았다. 그때 생긴 생채기들은 이제 흉터가 되었다. 흉터는 살갗에 단단히 자리 잡았지만, 이따금 깊은 곳부터 욱신거렸다. 굳은살 안쪽이 여전히 두려움으로 차 있는 것 같았다.
상처 난 뒤로는 그 장소에 가지 않았다. 상처를 주었던 사람과 닮은 사람을 피했고, 그런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짐작만으로 쉽게 도망쳤다. 그것이 내일의 두려움 앞에서 내가 내민 초라한 대비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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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의 모난 구석을 숨기고 둥글게 굴러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연마할 때, 다듬지 않은 마음을 툭 내보이는 사람에게 마음이 기울어진다. 잘 닦인 아스팔트로 가지 않고, 인적 드문 자갈밭을 그저 궁금하다는 이유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사람. 햇살이 좋아 드러눕고, 바람이 좋아 팔을 벌리고, 거센 파도에도 기꺼이 발을 담그는 사람.
그는 자갈밭에 홀로 떨어진 유리 조각처럼 아름답고 위험했다. 빛을 받으면 찬란했지만, 언젠가 나를 찌를 것만 같았다. 누구의 모양에도 맞추어지지 않고, 깨진 단면으로 그대로 빛을 내는 사람. 그런 사람 앞에서 나는 다시 겁이 났다. 그가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낼수록, 내 안에 눌러놓은 모서리들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그의 투명함에 내가 비쳤다. 정확히는 내가 숨겨둔 내가 비쳤다.
나는 나를 드러낼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에게서 눈을 뗄 수도 없었다. 그가 나를 볼 수 없도록 깊이 웅크렸다. 나도 그를 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에게서 새어 나온 빛은 막을 수 없이 스며들었다. 닫아둔 문틈에도, 가려둔 커튼 가장자리에도, 숨긴 마음의 균열에도.
그는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내가 숨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그가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그의 의식 속에는 오직 그의 감정만 담겨 있는 듯했다.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만 걷는 사람 같았다. 그 무심한 자유 앞에서 내 걸음은 자주 길을 잃었다.
그를 지켜보는 시간 속에서 경외와 사랑이, 사랑과 절망이 동시에 다가왔다. 그가 나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이 관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 어떤 대칭이나 등식 같은 것을 기대하는 일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눈이 멀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가 반사하는 빛 한 줄기까지 망막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내 안을 헤집는 그 찬란한 빛이 결국 씨앗이 된 것일까. 욕망은 그렇게, 가장 눈부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발아한다. 그것은 갖고 싶은 것보다 영영 갖지 못하는 것, 아예 없었던 것보다 있었다가 사라진 무언가의 틈에서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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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이 매력이 되었다는 건, 그만큼 내게 숨기는 일이 익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 안에 자라난 독이 세상에 흠을 남길까 봐, 나는 독을 품지 않은 척 살아간다. 독에는 습기가 있다. 상처에 스민 그것이 천천히 안쪽을 곪게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나는 깨끗한 표정 아래 그것을 숨긴다. 곪은 속은 결국 비틀린다.
우리는 투명하고 영롱한 것을 본능적으로 선망한다. 그리고 그 선망은 자주 증오를 낳는다. 그 증오는 사실 아름다운 투명함에 비친 우리 자신의 뒤틀린 형상에 대한 혐오와 가깝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철저히 타인을 향한 감정처럼 꾸며낸다. 누구도 쉽게 들키고 싶지 않기에, 그 비밀을 서로 지켜준다. 어느새 생겨난 서로의 바닥을 모른 척 덮어주자는 슬픈 약속처럼.
투명한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비추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 앞에 서면 내가 애써 감춰두었던 독까지 영롱하게 빛을 낸다. 그런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전부 들켜버릴까 두려우면서도, 전부를 봐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법을 아직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