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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완벽주의자 탈출기 [사람]

빈틈을 끌어안고 사는 방법

by 원미 에디터
2025.08.01 12:05

 

 

 

  

-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사실 아직도 어느 정도는 완벽주의자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적응적 완벽주의자가 되었다.


초등학생 때는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했다. 책가방 안의 모든 물건은 반드시 크기순으로 배열되어 있어야만 했고, 혹시 흐트러졌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등굣길에 세 번씩 멈춰서 가방 안을 확인했다. 글씨 쓰기 숙제가 있으면 한 자 한 자 완벽한 모양의 글씨를 쓸 때까지 숙제를 끝내지 못했다. 엄마는 새벽 1시까지 울면서 숙제하던 내가 가끔은 무서웠다고 하셨다.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과제는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고, 시험 전에 약속한 분량의 공부와 연습을 마치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에 들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알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부의 동력이 있어서 열심히 달린다는 느낌이 아닌, 뒤에서 누가 나를 쫓아와서 넘어질락 말락 하면서 달려가는 기분이었다. 완벽주의로 사는 인생은 너무 힘들어서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다. 마음을 한 번만 고쳐먹으면 된다는 걸 아는데도, 내려놓기가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도 완벽하게 해냈었다. 다들 알다시피, 인생이라는 것이 늘 완벽하기만 할 수는 없다. 언젠가 잘 된 기억이 있으면, 한 번쯤은 잘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 중에 꼭 나에게만 행운이 다 작용해야 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지 않은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지로 나를 포장하다 보면 그 꼴이 우스워지거나 내용물은 어떤 상태인지 볼 수 없게 된다.


완벽주의자를 바뀌게 만든 것은 결국 실패의 경험이었다. 이제는 살다 보면 실패의 순간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때는 발을 한 번 헛디디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살면서 불운이 나를 요리조리 피해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에 힘이 들어가서 꼿꼿해지고, 넘어지면 부러질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살았다. 그러다 넘어진 순간, 정말로 심하게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놓친 인생의 정답이나, 그 정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루 종일 검색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정답지나 해설서 같은 건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실패하지 않는 법’, ‘인생에서 성공만 하는 법’, ‘긴장이나 불안 없이 사는 법’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검색 결과가 나왔던 ‘실패를 견디는 방법’은 참 다양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건 읽을 때뿐이고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결국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완벽주의의 장점은 결과물이 좋다는 것이다. 나를 갈아 넣어서 결과를 추구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면 과정에서의 괴로웠던 기억은 잠시 잊은 채 다시 한번 완벽주의의 굴레로 들어가게 된다. 결과물의 완성도를 올리는 것은 한 끗 차이이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불안해하면서도 그 한 끗을 더 나아가보려고 아등바등 노력했었다. 완벽주의자로 살았던 시간이 전부 나빴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노력하는 습관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의 마음가짐은 잘못된 것으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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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면 안 돼’, ‘넘어지면 큰일 나’, ‘남들보다 늦으면 안 돼’ 와 같은 문구가 내 인생의 표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불안함이 행동의 근거가 되면 정신이 점점 피폐해진다.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것이 내 안의 동력으로 작용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걸 깨닫기까지 무수히 많은 밤을 눈물 흘리며 보냈기 때문에, 다시는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중요한 순간이 다가오면 실패하는 것이 두렵고, 무언가 잘못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점은,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내 인생은 여전히 괜찮다는 것을 안다는 것. 실수나 실패 한 번으로 망하는 인생은 없다. 그 실패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 더 비극이다. 진짜 용기는 나의 못난 모습을 마주하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고치는 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과거의 나처럼, 마음이 힘들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가 이 글을 발견할 수도 있을까? 혼자 하는 생각에 묶여 괴로워하는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마음이 아프다. 아무것도 못 할 것만 같고, 잠이 계속 오기도 한다. 침대에서 나오는 시간은 밥 먹을 때와 화장실을 갈 때뿐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이 고통의 시간은 결국 스스로 깨달아야만 끝낼 수 있다. 남이 하는 말을 아무리 듣고 읽어도 와닿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나 과거의 나를 마주한다면 해 주고 싶은 말은, 우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에만 집중해 보라는 것이다. 실패를 완전히 극복하라거나 정신을 개조하라는 식의 허무맹랑한 조언이 아니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해야 한다. 좋은 것을 챙겨 먹고, 움직이고, 방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운동을 다니기만 해도, 다시 잘살아 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래도 안 되면 다시 누워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완벽이라는 말은 애초에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매력적인 사람은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잘한 틈에서 매력이 새어 나온다. 그런데 나 스스로에게는 그 빈틈을 모두 막아버리라고 강요해 왔던 것이다. 그러면 숨도 쉴 수 없고, 나중에는 억지로 막아놨던 모든 틈새가 한 번에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내 틈도 누군가는 사랑스럽게 봐 주리라고 생각하면서, 오늘도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한 발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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