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때리는 드럼 비트, 화려한 기타 연주, 번쩍번쩍 강렬한 조명과 무대를 자유롭게 노니는 4명의 밴드 멤버. 언뜻 보면 록 페스티벌이나 콘서트장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대학로의 어느 극장에서 펼쳐지는 뮤지컬의 한 장면이다.

뮤지컬 〈펑크〉는 가까운 미래인 2055년을 배경으로 한다. 미래의 인간들은 점차 늙고 병들어가는 자신들을 보조하기 위한 존재인 ‘클론’을 개발한다. 하지만 이내 역노화 기술이 개발되어 아무도 늙고 병들지 않는 세상이 시작되자, 클론들은 그 쓸모를 잃고 버려져 클론들이 모여 있는 쓰레기장과도 같은 ‘인페르노’에서 살아간다.
인페르노의 모든 클론들은 인간들의 세상인 ‘에덴’에서 배급하는 식량으로 살아가며, 이 배급을 독차지하기 위해 수없이 반복되는 폭력과 약탈에 찌들어가고 있다.
*
클론(복제인간) 2847, 레오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 하얀 날개의 천사가 손을 내밀고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다가 손가락이 하나씩 떼어지며 끝없이 추락한다.
2055년, AI 아르케가 통제하는 인간의 낙원 ‘에덴’과 버려진 클론들의 쓰레기장 ‘인페르노’로 세계가 나뉘었다. 레오는 에덴에 가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지못해 시험에서 탈락한다. 그때 이상한 소문이 들려온다. 에덴에서 스스로 인페르노로 내려온 인간이 있다고. 모두가 목숨 걸고 올라가려는 그곳을 버리고 쓰레기장으로 온 남자, 글렌. 그는 폐공장에서 홀로 기타를 치며 노래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레오는 그 음악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늘 뒤에서 레오를 지켜온 친구 클론2848 잭, 그리고 글렌과 함께 에덴에서 내려온 AI 리베르까지 인간과 클론과 AI 넷은 펑크 밴드를 결성한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그 음악으로 그들은 인페르노를 변화시키려 한다.
1년간의 연습 후, 밴드는 인페르노 전체를 깨우는 혁명적 공연을 펼친다. 하지만 이때, AI 아르케가 이들 눈 앞에 나타난다. 글렌과 레오, 잭과 리베르는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마지막 선택에 직면하는데….
- 〈펑크〉 시놉시스

주인공 ‘레오’는 2847이라는 번호를 팔뚝에 새긴 채 만들어진 클론으로, 에덴에 가는 것만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지만 에덴 자격시험에 탈락하고 만다. 그의 곁에는 여린 레오를 도와주는 친구 ‘잭’이 함께한다. 잭 역시 클론으로, 폭력을 원치 않으나 인페르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폭력에 가담해야 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둘은 어떤 기묘한 소문을 듣는다.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라는 ‘에덴’에서 이 쓰레기 소굴인 인페르노로 제 발로 내려온 인간이 있다는 것.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에는 인간 ‘글렌’과 그 옆을 지키는 AI ‘리베르’가 있었다.

‘글렌’은 본디 에덴에서 살았다. 그러나 아무도 늙고 병들지 않게 됨으로써 오히려 끝없는 자극만을 추구하게 된 에덴에 환멸을 느끼며 인페르노로 떠나온 인물이다. 글렌은 ‘음악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라는 신념으로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매일 부르고 있다.
레오는 글렌의 기타 연주와 노랫소리를 듣고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거칠게 박동하는 것을 느끼고, 글렌과 레오, 잭, 리베르는 음악으로써 클론들의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펑크 밴드를 결성한다.
뮤지컬 〈펑크〉에는 일반적인 뮤지컬 문법과는 다른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품고 있었다. 사이버펑크와 펑크 락을 감각적으로 병치한 뮤지컬 〈펑크〉만의 매력을 짚어보자.

1. 회색빛 인페르노를 깨우는 강렬한 빛의 혁명
뮤지컬 〈펑크〉는 막강한 힘을 가진 AI가 통제하는 무미건조한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에 탁월했다. 특히 극 중반, 억눌렸던 인물들의 감정이 락 사운드로 폭발하는 장면은 마치 록밴드의 콘서트 무대처럼 화려한 조명으로 번쩍번쩍 빛난다.
서로 눈을 맞추고 미소 지으며 노래하는 4명의 인물과 그들의 무대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동시에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에덴의 차가운 질서를 깨부수고 인페르노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그 빛의 향연은, 주인공 글렌과 레오가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찰나의 희열을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전이시켰다.

2. 박수로 완성되는 '인간성'의 증명
이 공연에서 기억에 남는 지점 중 하나는 밴드의 노래가 끝날 때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박수다.
〈펑크〉에서의 박수는 관객이 그들을 관조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인페르노의 주민'이자 '혁명의 동조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결함으로 치부되는 세계관 속에서, 멋진 넘버에 환호하고 손뼉 치는 행위 자체가 극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다움'을 실천하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처럼 느껴진다.

3. ‘마지막 축제’가 선사한 최고의 해방감, 앵콜 떼창
모든 극이 끝나고 이어진 앵콜은 이 작품의 진정한 결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배우들이 캐릭터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관객과 하나 되어 콘서트처럼 순간을 즐기는 모습은, 마치 아르케의 통제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를 보여주는 듯했다. 모두가 함께 소리 높여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발을 구르며 응원하는 그 순간, 극장 안은 에덴보다 더 완벽한 해방의 공간이 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에너지를 쏟아붓는 배우들의 열정 덕분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뜨거움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연제작사 ‘섬으로간나비’의 뮤지컬 〈펑크〉는 5월 31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