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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그 누구도 '파수꾼'이 되지 못했다 [영화]

그냥 너만 없었으면 돼

by 장수정 에디터
2026.05.12 08:01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1)은 한 고등학생의 자살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청소년 성장영화 혹은 사회고발극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선택한 비선형적이고 다시점적인 서사 구조는 챕터마다 '기태'라는 인물을 새롭게 보여준다. 관객은 처음에는 불완전하게 보였던 기태의 심리 서사가 나중에 채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며, 영화는 그렇게 죽음의 원인을 해명하는 대신 기억과 진실 사이의 근본적인 간극을 드러내며 관객을 불편한 증인의 자리에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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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곽경택, 2001)나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2004) 같은 전통적인 청소년 영화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선형적으로 제시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파수꾼>은 이 관습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이 영화에는 뚜렷한 가해자도, 명쾌한 피해자도 없다. 기태의 삶은 폭력과 연대, 지배와 고독의 모순으로 묘사된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군림하는 존재이지만, 그 권력의 이면에는 뚜렷한 결핍이 자리한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자란 기태는 자신의 취약함이 드러나는 순간마다 공격적으로 반응한다. 기태와 희준의 균열의 계기는 사소하다. 굴다리에서 중학생과 시비가 붙은 이야기를 하던 중, 희준과 재호의 미묘한 시선 교환을 느끼고 기태는 갑작스럽게 돌변한다. 결국 재호는 자기들끼리 '기태는 부모님 얘기만 나오면 아무 얘기도 안 하다가 딴말하고 그런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실을 실토하고, 기태는 희준에게 본인은 자신을 챙겨줄 엄마가 없다고 털어놓으며 치부를 드러낸다.

 

공격성의 이면에 있던 것은 증오가 아니라 결핍이었다. 대화가 조금만 더 이어졌다면 둘의 관계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희준은 멀어지는 기태를 붙잡지 않는다. 세정과 기태는 각자 소중한 물건을 상대에게 건네고 스스로 삶을 포기한다. 동윤에게 버림받을 것을 직감한 세정은 동윤의 소중한 시계를 다음에 돌려줄테니 달라고 했다가, 바로 다시 돌려준다. 마치 다음에 만나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기태도 그렇다. 전학을 간 희준을 찾아가 자신이 제일 아끼던 야구공을 준다. 자신에게 더이상 필요없는 물건인 것처럼 말이다. 병실에 누워있는 세정을 보고 격분한 동윤은 기태에게 "그냥 너만 없었으면 돼"라며 막말을 내뱉는다. 세정은 그저 동윤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그런 선택을 한 것인데 말이다. 기태에게 화를 내는 동윤의 모습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믿기 위해 탓할 대상을 찾는 것처럼도 보인다.

 

우정의 언어는 끝내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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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버지, 동윤, 희준의 세 챕터를 통해 각기 다른 기태의 초상을 만들어낸다. 아버지 챕터에서 드러나듯, 기태의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기태가 얼마나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었는지는 영화 내내 조용히 누적된다. 희준은 기태가 야구공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조차 몰랐으며, 희준에게 기태는 그저 자신을 아래로 보는 존재였다. 반면 동윤이 기억하는 기태는 새벽에 자신과 물 한 잔 따라놓고 웃을 수 있는 친구였다.

 

영화의 말미, 동윤은 희준에게 받은 야구공을 들고 기태와 대화를 나눈다. 상상인지 회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 장면에서 기태는 야구공을 들고 타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는 천진난만한 제 나잇대 고등학생이다. 경기의 MVP가 되어 온 세상이 자신을 주목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기태에게 동윤은 말한다. "네가 최고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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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파수꾼'은 역설적 함의를 지닌다. 서로를 지켜보아야 할 소년들은 끝내 서로를 보지 못했고, 아무도 진정한 의미의 파수꾼이 되지 못했다. 이 영화에서 파수꾼이 되지 못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언어의 부재 때문이다. 동윤은 기태를 친구로 여겼지만 그 마음을 살아있는 기태에게 전하지 못했고, 희준은 기태의 결핍을 목격하고도 돌아서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아들의 삶 전체를 알지 못한 채 그를 잃었다. 누군가를 지키려면 먼저 그를 보아야 하지만, 영화 속 누구도 기태를 온전히 보지 않았다.

 

영화는 기태의 죽음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대신,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불완전한 기억과 선택적 침묵을 교차시켜 죽음을 열린 물음으로 남긴다. 그렇게 <파수꾼>은 기태가 왜 죽었는가를 묻는 영화에서,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를 묻는 영화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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