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3월만큼 낯설고 설레는 달이 있을까. 3월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는 달이다. 그리고 이때 만나 쌓는 관계는 그 해를 보내는 가장 중요한 인연이 된다. ‘친구’라는 단어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길 10대의 청소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3월이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톱스타가 된, 이제훈 배우와 박정민 배우의 파릇파릇한 신인 시절을 담아낸 영화 <파수꾼>이다. 최근 로코 좀비 드라마 <뉴토피아>를 연출하고 있는 윤상현 감독의 첫 장편 영화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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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수꾼>은 세 명의 친구 기태, 희준, 동윤의 이야기다. 그러나 ‘친구’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함과 정감만큼 영화의 내용은 밝지 않다. 영화가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기태’(이제훈)는 사망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태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찾으며 전개된다. 기태의 아버지는 기태의 서랍 속에서 희준과 동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한다. 소중한 것을 보관하듯 곱게 놓여 있는 사진이다. 그러나, 사진 속의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였다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한 명은 이미 진작에 전학을 간 상태고, 한 명은 기태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고 종적을 감췄다. 과연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기태와 친구들은 학교에서 최상위권으로 군림하는 이들이다. 그중에서도 암묵적으로 가장 서열이 높은 기태는, 재호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을 자신의 ‘아래’처럼 다룬다. 하지만 ‘친구’ 인 희준과 동윤은 예외다. 기태는 희준이 보경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친구 희준과 보경이 잘 되길 바라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기도 한다. 정작 보경은 기태에게 관심을 보이고 기태에게 고백한다. 그런 보경의 고백을 단칼에 거절할 만큼, 기태에게 희준은 소중한 친구였다.
거기서부터 이 둘의 문제는 시작된다. 희준은 보경이 기태를 좋아한다는 사실과, 기태가 계속해서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등 상하 관계가 느껴지는 행동을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다.
"네가 니 꼬붕이냐?"
기태는 기태 나름대로 예민한 구석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기태는 가족 얘기에 예민하다. 그리고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자신의 약점을 들키는 것에도 예민하다. 희준과 재호가 ‘기태는 가족 얘기를 할 때마다 화제를 일부러 돌린다’ 는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만으로 기태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도 기태는 재호와 희준을 다르게 대한다. 재호에게는 ‘무슨 말을 했는지 말하라’고 협박하고 얼굴을 치는 등, 완전히 아래로 대하지만 희준에게는 머뭇거리다가 ‘가족 얘기로 이러지 말아달라’라는 투의 말을 할 뿐이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희준은 기태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기태가 말을 걸어도, 화해를 신청해도, 무관심으로 반응한다. 그러자 기태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희준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희준의 얼굴에는 상처가 남는다. ‘친구’라는 단어가 깨진다. 기태가 희준에게 “이제 그만하자”라며 “미안하다”라고 사과했을 때, 희준은 답한다. 전학을 갈 거기 때문에 네 사과를 받아줄 이유가 없다고. 받고 싶지 않다고. 단 한순간도 너를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그렇게 ‘친구’라는 단어는 사라진다.
희준의 얼굴에 난 상처는 동윤이 기태에게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동윤은 기태에게 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달라 부탁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기태는 그 무엇도 시원하게 말하지 않는다. 기태는 하나 남은 친구인 동윤과의 관계까지 망친다. 동윤이 사랑하는 여자친구 세정에 관한 소문을 말해주며, 깊게 사귀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세정에게 동윤이 모든 것을 알아 버렸다는 것을 전한다. 세정은 절망에 빠져 자살 시도를 해 버린다.
사실을 알게 된 동윤은 이때 완전히 기태를 버린다. 사과하러 찾아온 기태에게 비수를 꽃는다.
“내가 너를 이해해준다고 생각했어? 난 단 한 번도 너를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어.”
그리고, 자신이 유일하게 소중하게 생각했던 두 친구 모두에게서 버려진 기태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한다. 자신이 아꼈던 야구공을 희준에게 건네주는 걸 마지막으로 친구들의 앞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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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수꾼>은 독립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회자되는 명작 중 하나이다. 이 영화가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10대 청소년 시기 특유의 감정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준’과 ‘동윤’은 둘 다 기태에게 “너를 친구로 생각한 적 없다”라고 내뱉지만, 그것이 모든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추측할 수 있다. 세 사람은 분명 친한 친구였고,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존심을 세우고 대화를 피하기 급급해 오해를 풀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 그 시절에는 우리 모두 실수를 한다. 보이는 모습이 다인 것처럼 느껴지고, 학교에서 계급을 나누어 위에 군림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시기다. 누구나 한 번쯤은 기태처럼, 희준처럼 행동했던 적이 있지 않았을까.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장면을 교차하며 보여주고 있다. 기태가 죽고 뿔뿔이 훑어진 친구들, 기태의 죽음을 추적하는 아버지의 ‘현재’ 모습과, 학교에서 최상위권으로 군림하며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의 ‘과거’ 모습이다. 차갑고 시리기까지 한 현재와 따뜻하고 풋풋했던 과거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과거가 현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아프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가 한 명쯤 있지 않는가. 불안정하고, 예민하던 시절 나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존재.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던 존재. 기태에게 희준과 동윤은 그런 존재였다. 파수꾼을 잃은 기태가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었던 이유다. 영화를 본 이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파수꾼이 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