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허, 호. 렌터카도 아닌 내가 자주 뱉는 숨이다.
흔히들 말해 일도 사랑도, 그리고 또 다른 무엇도. 언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 빈칸 채우기만 같다. 주어진 빈칸에 적절한 역할을 하고 조용히 빠진다. 오늘은 어제 같고, 내일은 오늘 같다. 태초의 결심들은 어디로 간 건지. 지금의 냉소는 어디서 온 건지. 나는 무엇이 그리 비루해 비루한 숨을 뱉는 것인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뒷골이 당겨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다. 잠 못 드는 밤, 휴대폰을 켜 똑같은 걸 보고 똑같은 감상을 느끼고. 이불을 덮었다 걷었다, 베개를 뒤집었다 포갰다 어제와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다 어제와 똑같은 술을 마시고 똑같이 뇌를 기절시킨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지오디 형들은 알까. 그런 상념들에 젖어들다 보면, 알람이 울리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시동을 걸고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고 문서를 만들고. 그렇게 빈칸을 채운다.
그렇게 탓할 곳을 찾아본다. 현실의 각박함을 알게 한 내 상황 때문인가. 그 상황의 원인은 나인가, 부모인가, 직장동료인가. 저마다 다른 시점과 상황에 그 원인이 내가 되기도, 부모가 되기도, 직장동료가 되기도 한다. 화살을 나에게 돌리면 자기연민이, 화살을 너에게 돌리면 핑계로 빨려 들어간다. 어쨌든 나는 못나진다.
원래 이런 글을 읽다 보면, 신세한탄으로 시작해 신세한탄으로 끝나거나. 뾰족한 해답을 제시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나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원고를 이쯤 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전자는 싫고 후자가 되자니 떠오르는 건, 궤변뿐이다. 고백을 할까말까, 사표를 낼까말까 뭐 이런. 이도 저도 못하는 시간만 흐르고 문장은 채워진다.
빈칸 채우기에 관하여, 나의 결론은 무엇일까. 그냥 생긴 대로 가진 대로 주어진 대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부러 뾰족한 궤변이라도 찾고서는 똑 부러진 명언인 듯 떠들어야 하는 걸까. 그 갈래에 서 있는 나는 또다시 하, 허, 호 렌터카가 되어버린다. 빈칸 채우기에 관하여 쓰며 빈칸 채우기로 쓰는, 이 아이러니가 그것 참 난감하다.
나는 당최 무슨 연유로 이 글을 쓰는가. 그저 달마다 돌아오는 마감에 빈칸을 채우는 것일까. 다시 원점이다.
그냥 나는.
그래서 나는.
그니까 나는.
빈칸 채우기 말고
나는 그냥 말이 하고 싶었나 봐
그냥, 그렇다고.
그냥,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