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다. 덥긴 해도 하늘을 보면 날이 좋다. 마침 여유로운 자금사정과 선선한 날씨. 절대 안 된다는 여자친구 잔소리가 삼위일체를 이루니, 그러니까. 오토바이가 타고 싶다. 3년 전 이맘때 판 나의 첫 오토바이 사진을 돌려본다. 수개월간 팔리지 않았던 탓에 아주 후련히 팔아버렸지만. 그러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9월은 날이 너무 좋잖아.
나는 타고나기를 탈 것을 좋아한다. 유년시절부터 장난감은 온통 자동차였고, 자전거로 동네 휘젓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자동차를 좋아해, 수동미션 스포츠카를 타고. 자전거는 최근 들어 다시 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는 정복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으니 가슴 한켠에 자라나는 호기심을 누르고 살았다. 위험하다는 막연한 선입견도 있었으나, 노는 형들과 떨어지고픈 거리감도 한몫했다.
어찌됐건 4년 전, 나는 나의 첫 오토바이를 산다. 오토바이를 사기 전, 위험하다는 막연한 선입견과 넉넉지 못한 자금사정이 걸린다. 그러나 평생 후회하는 것도 미련하거니와 그 대신 형편에 맞게 타자는 결론을 내린다. 오토바이값과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나의 첫 오토바이는 50cc로 낙점된다. 쥐똥만 한 배기량일지라도 꽤 멋진 클래식 디자인과, 무려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낙인이 근사하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중고 모델을 고른 덕이다. 온 인터넷 세상을 뒤지고 뒤져 발품에 발품을 팔아 팔아. 110만 원의 시세보다 무려 25만 원이 저렴한 85만 원 매물을 발견한다. 하자가 있을지라도 수리비로 25만 원이 나가지는 않으리라는 짐작으로, 경기도 안성에 중고 오토바이 검수 업체를 보낸다. 7만 원 정도의 꽤 비싼 서비스로 기억하지만, 그 덕에 나는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기름만 넣고 타면 된다던 판매자의 말과 달리, 오토바이 상태는 시궁창이었고. 수리 견적은 40만 원이 나왔다. 구매를 망설이려던 때, 역시나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판매자가 20만 원의 네고를 선제시한다. 나는 이를 승낙해 속전속결로 판매자는 이전서류를, 나는 화물트럭을 예약한다.
그날, 늦은 저녁 화물로 오토바이를 받았다. 두발자전거 첫발을 내딛듯, 자동차 악셀을 처음 밟듯. 긴장 가득 산뜻함으로 시동을 걸어본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온 인터넷 세상을 총동원해 보나, 내 방법이 틀리지 않았건만. 이리 끌고 저리 끌어보며 시동을 걸어보나, 걸릴 듯 말 듯 결국은 꿈쩍도 안 한다. 아무래도 나 사기를 당한 건가, 좌절감에 빠져있던 때. 야밤산책 중이던 모르쇠 아저씨가 오토바이 멋지다며 말을 건다. 어쩌다 보니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 덕에 옛날 오토바이는 연료밸브를 열어야 시동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오토바이 정비소에 수리를 맡기고. 1주일을 기다린다. 1주일 뒤, 쌩쌩해진 오토바이를 찾아 첫 주행에 나선다. 자동차로는 수동 운전에 자신이 있던 덕에, 자신 있게 출발하지만. RPM 없는 계기판에 당황하고 시속 15km/h가 이렇게나 빠른 속도였는지 허둥대며 그 좋은 날 식은땀을 팥죽같이 흘렸다.
며칠이 지나, 서서히 감각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파트 주차장만 돌던 것이, 아파트 상가까지, 길 건너까지, 옆 동네까지 자유로워졌다. 자동차 썬루프와는 차원이 다른 개방감이 여직 조금은 무서우면서도 온몸으로 맞는 바람이 <비트>의 정우성 같달까.., 라는 말이 이런 말일까, 공감해 본다.
차체가 가벼운 덕에 경쾌하지만, 그 탓에 내리막에서 차체가 휘청거리고. 엔진이 작은 덕에 적응이 수월하지만, 그 탓에 오르막길에서는 스로틀을 풀로 당겨도 당최 속도가 줄어든다. RPM 게이지는 물론 연료 게이지도 없는 덕에, 기름이 떨어져 인근 주유소까지 1시간 반을 내리 낑낑대던 날도 있었다.
클래식한 디자인 덕에 생긴 재미난 에피소드도 몇 있는데. 신호대기 중 SM5 아저씨가 창문을 내리더니. 멋지다며 따봉을 치켜세운 날도 있었고. 여든 넘은 할머니가 수리기사로 오인해 집안 창문 좀 고쳐 달라며 잡아세운 날도 있었다.
9월이 10월이 11월이 되며. 겨울이 오기 전, 오토바이를 자주 타야겠다는 다짐에 적산거리는 야금야금 늘어갔다. 이제 탈 만큼 탔다며 긴장감이 조금 내려가니, 오토바이를 타니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보인다. 우선, 도로 위 자동차 중 택시가 정말 한결같이 깨끗하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수년간 평지인 줄 지났던 도로가 사실은 미세한 오르막길이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헬멧을 쓴 탓에, 바람 맞는 기분은 기대보다 덜했고. 오토바이에 기대 담배 피는 모습은 생각만큼 섹시했지만, 생각보다 불편했다.
겨울이 지나 오토바이 시동을 다시 걸은 건, 5개월 만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잠시 짬을 내어 타고는 했는데. 일과가 바빠진 건지, 체력이 약해진 건지.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가 5개월이나 지날 줄 나라고 알았겠나. 그사이 키도 잃어버렸다. 새 키를 만드는 게 얼마였는지, 한 5만 원 줬나. 짜쯩 이빠이 키를 새로 만들고 뜸 잘 들인 밥솥을 열듯, 다시금 산뜻한 기분으로 시동을 걸어보나. 어머나. 그럼 그렇지 시동이 또 안 걸린다. 오래간만에 1시간을 낑낑대며, 작년 그때 그 정비소에 도착한다.
9개월 만의 시동을 걸어본 건, 사실 판매를 위해서였다. 돈 아까워 물도 집 가서 마시던 나로서는, 5개월간의 공백이 대단한 사치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수리를 마친 뒤, 정비소를 나와 집까지 가는 그 10분이, 하루만 더. 하루만 더. 6개월이 지나도록 하루를 연장했다. 그 기간 직거래 판매가, 순탄치 않았던 탓 또한 크다. 구비서류까지 준비했는데, 1시간 뒤 수십만 원을 네고해달라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고. 연락을 주겠다더니, 연락이 두절된 사람. 엄마한테 걸렸다는 사람. 등등.. 산다는 사람은 꽤 많았는데, 정작 산 사람이 6개월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쿨거래를 외친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하루만 더 와 양립되게 골머리를 싸고 있던 나로서는 아주 후련히 속전속결로 팔아버렸다. 지난번에 구비해둔 구비서류를 다시 꺼내고. 번호판을 떼고. 화물예약을 하고. 기사님과 연락하고, 만나. 속전속결로 오토바이를 실어 떠나는 화물트럭을 보니. 이것 참, 뭐랄까. 기분이 거시기하다. 띵동 하고 울리는 입금 알림이, 반갑지만은 않다.
가끔가다 휴대폰 사진첩에서 오토바이 사진을 돌려보며, 그 당시 기억을 회상해 본다. 바람에 눈이 건조해지듯, 헬멧에 머리가 떡지듯, 싸구려 가죽시트에 엉덩이 땀이 배기듯. 며칠 전, 몇 달 전 , 몇 년 전 일이 되도록 감상이 생생하다. 어딘가 하나 나사 빠진 스로틀감이 새로울 거 같고. 흐물거리던 클러치가 반가울 거 같다. 오토바이 사진을 돌려보는 가끔가다, 같은 기종의 중고 매물을 그렇게 찾아본다.
그러던 어느 날, 매물로 나온 나의 첫 오토바이를 봤다. 나의 첫 오토바이는 몇 차례 주인이 더 바뀌었는지. 구매자와는 또 다른 사람의 계정으로 매물이 올라와 있었다. 반가우면서도 서운하면서도 여러 감상이 교차한다, 이어붙일까 구태여 일까. 아마도 일생의 한 번 뿐일 기회에 망설이다, 구매하지 않았다. 시세보다 높은 가격도 한몫했지만, 구태여 이어붙이기보다 회상이 반가운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는 바램이 큰 몫 했다.
어김도 없이 날이 좋은 9월이다. 마침 여유로운 자금사정. 선선한 날씨. 절대 안 된다는 여자친구 잔소리가 삼위일체를 이루니, 그러니까 오토바이가 타고 싶다. 나의 첫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 4년이 지난, 지금은 또 누구의 눈이 건조해질지, 머리가 떡질지, 엉덩이 땀이 배길지, 그놈 참 부럽다.
내년 9월을 기약해 본다. 여자친구 잔소리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