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곳을 문득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러다 막상 떠나보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내가 그곳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그리고 그곳이 나를 얼마나 단단하게 붙잡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이 극은 역사적 사실에 과감한 상상력을 덧입힌 가상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여기 '별'에 닿고 싶었던 남자, 즉 장영실이 있다. 그는 비차(飛車)를 만들어 언젠가 그 별에 닿고자 하는 꿈을 실현하고픈 열망이 있다. 사실 역사 속 장영실이 비차를 설계했다는 실질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는 바로 이 지점, 즉 안여 사건 이후 역사의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진 천재 과학자의 행방이라는 '역사적 공백'을 과감한 예술적 상상력으로 파고든다.
동래현 노비 출신으로 태어났지만, 오직 영특함과 손재주만으로 궁궐의 문턱을 넘은 장영실이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자동 물시계'를 선보여 면천되기에 이르렀고, 세종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명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크기변환]524208_554547_14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4/20260430160731_anheitfw.jpg)
명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더 많은 것을 발명해내지만, 시대를 앞서간 그의 비범함은 도리어 그를 안주할 수 없는 유랑의 길로 내몬다. 명나라는 조선이 독자적인 역법을 가지는 것을 경계해오고 있었기에, 장영실의 발명 프로젝트는 사실 명나라와 그 권위에 기댄 대신들에게 감당하기 벅찬 위협이자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여기서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는 과감한 각색을 시도한다. 역사 속 '안여 사건'을 단순한 사고가 아닌, 세종이 장영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그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유약하지만 처절한 보호'였다고 재해석하며 서사의 밀도를 높인다.
장영실의 여정은 명나라 유학 때의 인연으로 정화 대장을 따라 유럽까지 이어진다. 르네상스 문화가 꽃이 피운 이탈리아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자신이 알아낸 것을 가르치지만, 그는 자신이 떠나야만 했던 고향 조선이 여전히 그립다. "그곳이 내 별이었구나" 울부짖으며 조선에서 가져온 낡은 물건을 끌어안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조용하지만 아린 슬픔을 자아낸다.
여기서 장영실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와 선명하게 겹쳐진다. 자신의 지략(트로이 목마) 때문에 오히려 고향 이타카를 등지고 20년의 방황을 시작한 오디세우스처럼, 장영실 또한 자신의 천재성 때문에 사랑하는 고향으로부터 밀려난 '비극적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칼립소의 섬이나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같은 화려한 유혹 속에서도 매일 고향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던, 노스토스(Nostos:귀환)를 꿈꾸는 방랑자라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크기변환]133056715.4.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4/20260430161302_dgpqtzrh.jpg)
하지만 정화 대장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장영실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선택을 내린다. 돌아가는 배에 오르는 대신, 이 낯선 땅에 홀로 남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장영실의 서사는 오디세우스의 서사시와는 갈라진다. 오디세우스는 모든 고난을 뚫고 끝내 이타카의 왕좌를 되찾으며 '물리적 귀환'에 매진했다면, 장영실은 그 간절한 귀환의 기회를 스스로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이 선택의 이면에는 그가 평생 쫓았던 '별'의 진짜 의미가 숨어 있다. 그에게 별은 단순히 하늘의 천체가 아니라, 태어난 신분이 인간의 존엄을 가두지 않는 '수평적 보편 세계'를 향한 갈망이었던 셈이다.
그는 왜 돌아가지 않기로 했을까? 자신을 살려 보내며 '살아내라' 당부했던 세종의 깊은 뜻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조선에서는 끝내 펼칠 수 없었던 자신의 꿈을 다빈치와 함께 설계하는 비차의 도면 속에 새겨 넣기로 결심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는 이미 위협받는 처지가 된 고향에 다시 되돌아가는 대신, 주어진 유랑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낯선 땅에서나마 자신의 꿈을 지키며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크기변환]news-p.v1.20260210.7848287b82804de1a703cbee25bb05e3_P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4/20260430163258_mpwyzfxr.jpg)
이때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넘버 [비차 reprise]는 장영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듯 울려 퍼지지만, 동시에 삶에 대한 그의 결단을 보여준다. "살아라, 살아내라, 살아봐야 별에 닿아"라는 가사는 그가 이제 국경이라는 경계를 넘어 '살아남아 꿈꾸는 행위' 자체가 별에 닿는 자신의 유일한 길임을 드러낸다. "어찌할 수 없다면 흘러가라"라는 가사는 체념이 아니라, 타국에서의 삶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새로운 터전으로 수용하는, 삶에 대한 긍정의 다짐이다.
비차는 극 마지막까지도 결국 완성되지 못했으나, 그 미완의 날개 끝에는 언제나 장영실이 사랑한 조선의 마음과, 지키고자 했던 수평적 세계에 대한 꿈들이 닿아 있었다. 때문에 그가 이탈리아에 남기로 한 것은 고향을 등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에서 다하지 못한 자신의 소명을 세상 끝까지 밀고 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알고 있다. 장영실의 흔적을 쫓는 다큐 PD 진석이 이탈리아로 향하는 비행기 앞에서 "여기에 장영실이 그토록 만들고 싶어 했던 비차가 참 많다."라고 읊조렸던 것처럼, 그의 꿈은 이제 더 이상 미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떠나온 뒤에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역설처럼, 그는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힘겹게 살아냈지만, 오히려 조선에서 꾸었던 꿈을 전 세계의 하늘로 확장해냈다.
그가 마지막에 불렀던 노래의 가사는 이제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기꺼이 살아내어 각자의 별에 닿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앞서갔던 한 천재가 (가상이지만) 우리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응답이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