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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안락이 머무는 방식 - 페퍼톤스 어쿠스틱 라이브 : 안락 [공연]

어쿠스틱으로 만난 페퍼톤스의 노래들

by 박지영 에디터
2026.04.29 18:36

 

 

이화여자대학교 ECC 지하에 자리한 영산극장은 평소에도 아늑하기로 유명한 공간이다. 이날, 그 아늑함은 입구를 가득 채운 포스트잇 메모들 사이에서 한층 선명해졌고, 사람들은 각자의 ‘안락함’을 손에 쥐고 있었다.

   

'페퍼톤스 어쿠스틱 라이브 : 안락'(이하 '안락')은 페퍼톤스(신재평, 이장원)가 2주에 걸쳐 선보인 소규모 어쿠스틱 공연이다. 4월 17일부터 19일, 24일부터 26일까지 총 6회 진행된 이 공연의 마지막 날, 그 마지막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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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만난 페퍼톤스


 

페퍼톤스는 꾸준한 밴드다. 여름이면 클럽 투어로 전국을 돌고, 겨울이면 연말 콘서트로 한 해를 닫는다. 팬들 입장에서 그 리듬은 어느새 계절의 일부가 됐다. 그런 밴드가 올봄, 처음으로 다른 계절의 자리에 앉았다. 공연의 이름처럼 어쿠스틱으로 편곡된 페퍼톤스의 노래들은 계절과 아주 잘 맞았다. 클럽 투어의 전자 악기들과 달리, 이번 무대는 악기 본연의 소리와 목소리를 중심으로 훨씬 단순하게 구성됐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랫동안 들어온 노래들을 더욱 세심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어쿠스틱 공연이 가진 가장 큰 힘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Set List — 익숙함과 반가움 사이


 

이날 Set list는 〈라이더스〉로 시작해 〈ABC〉, 〈새〉, 〈도시락〉, 〈스커트가 불어온다〉, 〈New Hippie Generation〉, 〈furniture〉, 〈우산〉, 〈근데 왜〉, 〈c a m e r a〉, 〈검은 산〉, 〈불면증의 버스〉로 이어졌고, 〈NEW CHANCE!〉와 〈행운을 빌어요〉로 마무리된 뒤 앙코르로 〈태풍의 눈〉, 〈Shine〉, 〈21세기의 어떤 날〉이 더해졌다.

 

공연을 즐기는 동안 페퍼톤스가 셋리스트를 짜는 데 많이 고민했다는 게 느껴졌다. 공연마다 빠지지 않는 '필수 노래'와, 평소라면 좀처럼 듣기 어려운 '서랍 속 노래들'이 나란히 배치된 구성은 어쿠스틱이라는 포맷과 만나 더욱 풍성해졌다. 그렇게 놓인 노래들은 익숙함과 반가움 사이를 오가며 공연 전체의 호흡을 고르게 만들었다.

 

특히 평소 라이브로 만나기 힘든 곡들,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 안에서만 존재하던 노래가 두 사람의 목소리와 오랜 시간 맞춰온 세션들의 연주가 만나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그것만으로도 이 공연에 올 이유는 충분했다.

 

 

 

포스트잇 신청곡, 뜻밖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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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에는 특별한 코너가 있었다. 공연 시작 전, 관객들은 포스트잇에 두 가지를 적어 붙일 수 있었다. 하나는 '나만의 안락함을 보내는 꿀팁', 그리고 신청곡이었다. 색색의 포스트잇들이 층층이 쌓이는 광경은 그 자체로 작은 전시 같았다. 안락함의 정의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그것들이 한곳에 모이자 묘하게 공통된 온도가 느껴졌다.

 

그리고 공연 중반, 페퍼톤스는 포스트잇에서 신청곡을 꺼내 즉석에서 불렀다. 이날의 신청곡은 〈Winterstalgia〉, 〈Knock〉, 〈Fake Traveler〉, 〈행복을 주는 사람〉, 〈Ready, Get Set, Go!〉였다. 그중 단연 눈에 띈 건 〈Winterstalgia〉였다.

 

2004년 데뷔 EP 《A Preview》에 수록된 이 곡은 현재 음원 플랫폼에서 리믹스 버전인 〈Winterstalgia (Comet Mix)〉로만 들을 수 있고, 오리지널 버전을 공연장에서 듣는 일은 흔치 않다. 그걸 신청곡으로 받아 무대 위에서 꺼내 드는 순간, 오랫동안 간직해온 편지 하나를 다시 꺼내보는 기분이었다.

 

〈Fake Traveler〉 역시 마찬가지였다. 1집에 수록된 이 곡은 "쓸쓸한 이들을 위로하는 노래"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데, 어쿠스틱으로 다시 듣자, 그 위로가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신청곡 코너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페퍼톤스의 긴 디스코그래피 어딘가에서 각자가 노래와 함께 보낸 일상의 순간을 꺼내 함께 듣는 시간이었다.

 

 

 

우리, 클럽투어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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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마지막 멘트는 작별 인사이자 다음 만남의 예고였다. 페퍼톤스는 이날 클럽 투어 소식을 직접 알렸다. '안락'의 친밀하고 따뜻한 분위기와는 또 다른 결의 무대가 예정되어 있다는 말에, 공연이 끝나가는 극장 안의 공기가 조금 달아올랐다. 어쿠스틱의 온기로 봄을 채운 자리에서 뜨거운 여름의 클럽 투어를 예고하는 것.

 

이 밴드는 언제나 그렇게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대가 계절마다 이어지는 한, 페퍼톤스의 음악은 계속 흐를 것이다.

 

 

 

안락함이란 무엇인가


 

공연이 끝나고 ECC 계단을 올라오면서 그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포스트잇에 적힌 수십 개의 대답들, 그리고 15곡이 넘는 셋리스트를 통해 페퍼톤스가 말하려 했던 안락함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과 사람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안락'은 공연의 제목이자 페퍼톤스가 관객에게 건네는 마음이었다.

 

2주라는 시간 동안 총 6번의 밤을 그렇게 채운 페퍼톤스의 무대는 마지막 날 밤에도, 첫날처럼 정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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