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리고 남겨진 것들, 넬 콘서트 : 'Singles' [공연]

글 입력 2022.04.2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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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넬이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번 콘서트는 4월 22일부터 5월 8일까지 3주에 걸쳐 총 10회 관객들과 잊지 못할 만남을 가진다. 'Singles'라는 타이틀을 건 본 공연에서는 싱글 앨범 위주로 세트리스트를 구성해 새로운 계절의 정취를 물씬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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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듣는 노래를 함께 듣고 싶어


 

지난주 넬 콘서트에 다녀왔다. 자세한 콘서트 후기를 적기 앞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취향이라는 게 명확하지 않은 사람이다. 물론 내게도 조금 더 즐겨듣는 음악 장르나 손이 자주 가는 의류는 있다. 하지만 이건 확고하고 일관적인 취향이라기보다 단순한 선호에 가깝다.

 

줏대가 없다는 건 곧 무엇이든 쉽게 흡수한다는 뜻이기도 해서(아주 좋게 해석하자면 말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늘 따라 좋아하곤 했다. 내 책장은 타인의 밑줄로 빼곡하고, 내 사진첩은 내가 가질 수 없는 시선을 통과한 풍경으로 채워져있으며, 내 옷장은 늘 누군가의 스타일이기만 했고, 내 MP3는 '아이유, 박효신, NCT127'처럼 알고리즘으로 도저히 모을 수 없을 것 같은 가수들의 집합이었다. 나는 늘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는 했다.


요즘은 손민수라는 신조어로 불리는 취향 흡수는 비단 현실에서 관계 맺는 사람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학생 시절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돌이었다. 신화적인 꼭두각시라는 어원처럼 그 당시 내게 아이돌은 우상 그 자체였다.

 

그때 나는 한창 인피니트라는 그룹에 열광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리더 겸 메인보컬이었던 김성규를 가장 좋아했다. 여기까지 쓰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짐작한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는 소위 성공한 덕후라 불리는 김성규 때문에, 혹은 덕분에 넬의 팬이 되었다.

 

내게 아이돌이 우상이었듯 아이돌에게도 가수라는 꿈을 꾸게 한 스타가 있을 테다. 연예계에 있는 수많은 덕후 중에서도 김성규는 거의 공인된 넬의 '성덕'이었다. 단순히 데뷔 후 가수와 팬으로 마주한 게 아니라, 넬 매니저를 만나 같은 소속사에서 데뷔하게 되고 김종완에게 앨범 프로듀싱을 받을 정도로 긴밀한 사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팬이라는 말을 결코 의심할 수 없게끔 김성규는 기회만 있으면 넬 노래를 불렀다. 데뷔 초 라디오에서, 솔로 앨범 발매 기념으로 나간 프로그램에서, 음악방송 비하인드에서, 심지어 술자리에서도!

 

 

 

 

어느 날 새벽, 평소와 같이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데 인스타 알림이 울렸다. 같은 그룹의 멤버가 올린 게시물 속에서 그는 숟가락 꽂은 초록병을 마이크 삼아 들고 STAY를 열창하고 있었다. 새벽 감성에 젖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좋아하는 팬의 마음으로 봐서일까, 가볍게 찍은 듯한 짧은 라이브가 무척 감미롭게 들렸다.

 

술에 취한 와중에도 발성은 깔끔했고, 숟가락 반주와 누군가의 코러스, '난 이미 버려져있고 한없이 더러워'라는 가사 뒤로 따라붙는 '더럽다 진짜'라는 장난기 있는 추임새마저 조화롭게 느껴졌다. 가사는 더없이 슬펐지만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영상을 보지 않고도 생생히 복기할 수 있을 만큼 내게는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어쩌다 보니 커버를 먼저 듣게 됐지만, 차디찬 밤공기 머금은 억센 갈대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원곡은 당연하게도 아름다웠다. 좋아하는 가수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이니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나는 이 노래를 통해 넬의 팬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대단치 않은 계기지만, 내게는 분명한 추억이다.

 

그렇지 않아도 뜻깊은 이 곡은 이번 콘서트를 통해 더 특별해졌다. 공교롭게도 김성규 콘서트와 넬 콘서트 일정이 겹쳐, 나는 두 가수의 공연을 연이어 다녀오게 됐다. 재밌는 것은 내가 넬 콘서트에서 STAY를 듣는 동안 김성규는 자신의 솔로 콘서트에서 같은 곡을 불렀다는 점이다. 사소한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가수와 관객의 접점에 사로잡혀 있던 내게는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네가 부르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싶어


 

이번 콘서트가 더욱 설렜던 이유는 공연 개최 딱 며칠 전 육성 응원 제한이 풀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대면 공연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간은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콘서트를 온몸으로 즐긴다는 감각을 얻기는 어려웠다. 이번 공연도 당연히 그러겠거니 하며 반쯤 체념하고 있을 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전면 해제한다는 기사가 떴다.


관객들만큼이나, 아니 관객보다 가수들이 더 간절했다는 듯 공연 시작부터 김종완은 이를 언급하고 넘어갔다. 같은 타이밍에 웃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정말로 콘서트장에 와있다는 실감이 났다. 잔잔한 곡이 앞에 몰려있었기에 공연 초반에는 응원보다 감상에 집중했고, 분위기가 반전된 후반부터는 록 페스티벌에 온 것처럼 신나게 즐겼다.


눈이 시릴 만큼 강렬한 붉은 조명 속에서 정신없이 점프하던 All The Fxxking Time, 한 팔을 들고 입을 모아 '오에오'를 부른 Ocean Of Light, 밴드 연주가 환상적이라 말 그대로 '이 순간을 잡고 놓지' 않고 싶었던 Dream catcher, 조금은 어색하게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니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대'를 읊조렸던 기억을 걷는 시간까지.


정말 한 곡도 빠짐없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꽤 특별하게 덧그려진 곡들이 있다. 위에서 한참 떠든 Stay가 그렇고, 명실상부한 넬의 명곡이지만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진 않는다고 여겼던 기억을 걷는 시간도 그중 하나다. 내가 직접 찾아 듣지 않아도 길거리에서 흘러나오고, 커버까지 포함하면 수도 없이 들었을 텐데 곡에 담긴 마음은 조금도 닳아있지 않았다.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라는 가사가 비로소 이해갔다. 한 사람의 목소리로만 채워진 기걷시가 한적한 길에 놓인 빈 의자 같았다면, 관객의 목소리가 더해진 기걷시는 거기에 누군가 앉고 지나가 온기를 남기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곡이 원래 가진 슬픔이나 그리움의 정서는 전혀 잃지 않은 채였다.


누군가의 사연을 통해 선곡된 희망고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직을 고민하고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힘들어하던 중 이 노래를 듣고 위로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지금 이대로 떠나버릴까?

잠시 다 내려놓고, 훌쩍 떠날까?

어디든 좋으니까 잠시 다 잊고

우리 지금 이대로 떠나버릴까?

그래 버릴까?

 


내게 이 노래는 언제나 '희망고문'이었기에, 가사와 제목의 간극을 크게 느껴본 적 없었다. 그런데 사연에서 넬 노래를 랜덤 재생해 놓다가 저 부분의 가사를 듣고 제목을 확인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으며 비로소 희망고문이라는 곡 제목이 이해갔다.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곡이 가진 의미를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희망고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에 진정한 함의를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나에겐 언제나 도망칠 구석이 있다고,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그런 생각들로 힘든 나날을 버텨왔으니까.

 



 

 

'치유' 또한 비슷하지만 다른 이유로 인상 깊은 곡이었다.


 

네가 필요한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 없이 울부짖는 마음

 

(...)

 

나를 갈라 내 안에

너를 들여놓고 싶은데


그래서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건지 보여주고 싶은데

 


충격적일 정도로 내 마음을 훑어본 게 아닐까 싶어지는 이 가사는 한때 나를 정말 많이 울렸던 구절이다. 넬 노래 대부분은 외롭고, 쓸쓸하며, 괴로운 감정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순간의 적나라한 감정을 꺼내 보이기보다 소설처럼 뒤로 조금 물러난 채 회자하는 가사가 많다. 결코 덤덤하지는 않지만, 어조는 담담하다고 할까.

 

 

 

 

반면, '치유'의 화자는 자신이 지금, 여기, 현재 아프다는 것을 처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 나가는 꿈'을 꿀만큼 '산산조각'이 나버려 흩어진 '상처의 파편'을 주워 담을 새도 없다. 그저 '부탁해 부디 부서진 내 맘을 치유해 주길 바래'라고 계속해서 노래하는 수밖에. 나는 넝마짝이 된 화자에 공감하기도, 혹은 나는 이 노래 속 너처럼 아프고 괴롭진 않다는 우스운 기만으로 위로를 받고는 했다.


그렇기에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날이 온다면 반드시 울고 마리라 여겼었다. 하지만 치유의 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울긴커녕, 마스크 아래로 웃고 있었다. 오랜만의 콘서트가 주는 설렘과 긴장에 도취되어 슬픔 따위 느낄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많고 많은 노래 중 좋아하는 곡을 불러준다는 기쁨이 더 컸을 수도 있다. 그보다 명료한 건 지금의 내게 '치유'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언젠가 나를 무릎 꿇리고, 엎드려 베개에 고개를 묻은 채 펑펑 울게 만들었던 가사 앞에서 나는 이제 단지 노래로만 감상하고 있었다. 예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거나, 슬픔을 전혀 느끼지 않게 된 건 아니다. 넬의 수많은 곡은 여전히 내 눈물샘을 터트리거나 혹은 방수해 준다.

 

그저 '네가 필요한 내가 여기 있다고 / 소리 없이 울부짖는 나의 마음' 보다 '시간은 날 어른이 되게 했지만 / 강해지게 하지는 않은 것 같아'에 더 공감하는 사람이 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때의 상처가 아물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아픔들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봉합된다는 김종완의 말처럼 '치유'가 정말로 나를 치유한 듯했다.


넬의 이번 공연은 내가 언젠가 남기고 온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오래전 열광했던 가수를, 어느 시절에 고여버린 슬픔을, 코로나19 이전 공연장의 열기를, 2년 반 동안 간직해왔던 서러움을... 물론 위로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를 살아갈 힘도 톡톡히 받았다. '당신의 이야기와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넬의 계절을 맞이합니다.'라는 소개 글처럼 Singles는 지나간 계절을 보낼 수 있게 하고, 다가오는 계절을 맞이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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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덧붙이자면, 1층에 좌석이 없어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2층도 적극 추천한다. 액자 모양의 테두리와 다방 콘셉트로 꾸민 무대 디자인, 곡이 고조되는 포인트에 따라 켜지고 꺼지는 조명, 화려하고 섬세한 샹들리에 등 2층 높이에서 봤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직 2주간의 공연이 더 남아있으니,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등을 떠밀어주고 싶다. 편곡한 '어차피 그런거' 밴드 연주로 귀가 황홀해지던 감각을, '3인칭의 필요성'을 들으며 눈물 날 것 같았던 감각을, 'Ocean Of Light'를 떼창하며 심장이 터져나올 것 같았던 감각을 함께 느끼고 싶다. 당신과 같이 듣고, 같이 부르고 싶다. 내가 느껴본 최고의 두근거림이 그곳에 있었다.

 

 

[임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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