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이 이끈, 다른 삶 속으로의 여행.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파스칼 메르시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주인공은 스위스 베른에서 고전 문학을 가르치며 평생을 단조롭게 살아온 교사 '그레고리'. 어느 비 오는 날, 그는 다리 위에서 투신하려던 여인을 구하게 되고, 그녀가 남기고 간 코트 주머니에서 아마데우 드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과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발견한다.
이 우연한 만남은 그의 견고했던 일상에 커다란 균열을 일으킨다. 책 속의 강렬한 문장들에 매료된 그는 난생처음 하던 수업을 제쳐두고 리스본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타인의 삶을 추적하며 자신의 내면을 확장해 나가는 그의 여정은, 우리에게 '진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필자는 이를 우연과 성찰 그리고 확장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살펴보았다.
1. 우연 - 인생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연은 운명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 그레고리는 다리에서 떨어지려던 여성을 구해주고, 그녀의 주머니에서 책 한 권과 리스본행 기차 티켓을 발견한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하던 수업도 끝내지 않은 채 무작정 리스본행 열차에 오른다. 언뜻 보면 그는 ‘충동적’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사람 같다. 체스를 혼자 두는 모습은 정적과 고독에 익숙한 이처럼 보이고, 전 애인에게 지루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을만큼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어떤 점이 그를 리스본행 열차에 오르게 만들었으며, 다소 무모하고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이 모험을 떠나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의 선택을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나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훌쩍 떠나고 싶은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느낌보다, 매일 앞에 놓인 일들을 처리하기만 하는 일상이 지속될 때 우리는 새로운 감각을 갈구하게 된다. 그레고리 역시 책의 작가인 ‘아마데우’의 흔적을 찾기 위해 리스본에 가서 정말 많은 인물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생애의 퍼즐 조각을 맞춰나간다. 그레고리는 어쩌면 단조로운 일상 대신, 새로운 몰입의 대상을 찾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와의 깊은 연결을 원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다.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어 무턱대고 집을 나섰던 날이다. 목적지도 없이 버스를 기다리다, 평소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버스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흘러가는 운명에 몸을 맡긴 그 생경한 감각은 영화 속 그레고리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당시 나는 우연히 '편지 문학관'이라는 곳에 닿았고, 타인의 삶이 담긴 편지들을 엿보며 뜻밖의 행복을 선물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흘러가는 운명에 나를 맡긴 영화 속 그레고리와 같았던 것 같다. 페소아의 말처럼 "우연은 인생의 배우"다. 가끔은 정해진 목적지 없이 흘러오는 우연에 몸을 맡길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살아있음을 느낀다.
2. 성찰 - 타인의 궤적 속에서 발견하는 나의 삶
그레고리는 리스본에서 작가 '아마데우'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리고, 여정의 끝에서 그는 묻는다.
"그들의 인생은 강렬하고 활력이 넘쳤어요. 자신의 인생을 살았잖아요. 내 인생은 어디 있죠?"
나는 이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그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아마데우라는 거울을 통해 본인의 인생을 성찰했음을 보여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단조로운 본인의 삶에 초라함을 느껴서, 왠지 본인보다 강렬하고 큰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아마데우’의 삶의 궤적을 따라갔을 것이다.
나는 ‘아마데우’의 흔적을 먼 타지에서 적극적으로 찾는 주인공을 보면서, 나는 타인의 인생을 저렇게 깊게 탐구해본 적이 있는가? 라는 물음이 들었다. 나 역시 예술 작품을 접할 때 작품 자체보다 그 뒤에 숨겨진 '인간'을 궁금해하곤 한다. ' 작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어떤 결핍이 그를 창작하게 했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나의 삶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궤적을 따라가고 싶었던 이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다. 그가 다루는 정체성과 불안에 대한 고민은 나의 것과 맞닿아 있었다.
타인의 삶을 깊게 탐구하는 행위는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노력인 셈이다. 그레고리 또한 아마데우의 문장 사이를 유영하며, 비로소 자신의 잃어버린 인생을 되찾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까.

3. 확장 - 새로운 장소에서 내면의 부피를 키우다
아마데우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문장은 우리의 정체성이나 성격이 하나로 한정되지 않고, 여전히 발굴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 무수히 많다는 기대감을 주는 듯 했다. 그리고 하나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들도 충분히 만끽하라는 뜻으로 나는 해석했다.
그레고리는 학교에서는 지루한 교사였지만, 리스본에서는 용감한 탐험가이자 매력적인 남자가 되었다. 사람의 정체성은 장소와 만나는 사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된다. 나 역시 한국에서는 사회적 지위나 스펙으로 나를 정의하곤 했지만, 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는 오롯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타지라는 새로운 렌즈를 끼고 나서야, 고정된 명함이 아닌 진짜 나다운 행동들을 실천하며 정체성을 확장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고정된 정체성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하지만 그레고리가 보여주었듯, 장소가 바뀌면 인간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정체성이 확장되는 것은 곧 내면의 부피를 키우는 소중한 경험이다.
마치며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익숙한 강의실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출발 신호가 울리는 열차에 올라탈 것인가. 만약 당신의 일상이 지나치게 단조롭다면, 잠시 우연이라는 배우에게 무대를 맡겨보는 건 어떨까? 꼭 리스본이 아니어도 좋다.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번호의 버스에 올라타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세계는 이미 확장되기 시작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