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연과 사람이 만나 예술이 될 때 [영화]

글 입력 2023.05.1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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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항상 최고의 조력자였거든"


영화감독 바르다와 사진작가 JR이 만나 여행을 떠난다. 프랑스 마을을 방문하며 사람들의 얼굴을 찍는다. 이들은 아주 특별한 트럭을 몰고 다닌다. 즉석 사진 부스처럼 사람들이 들어가면 5초 뒤, 옆에 위치한 대형프린터에 사진이 출력된다.

 

대형 크기의 사진은 곳곳에 붙여진다. 건물과 집, 담벼락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에 부착된다. 사진의 힘은 대단하다. 낡은 건물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만든다. 바르다와 JR의 지닌 감각은 평범한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매일 지나다니던 길이 여행 중 잘못 들어선 낯선 길처럼 느껴진다.

 

55년, 둘의 나이 차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바르다는 살면서 88번의 봄을 맞이했고, JR은 33번의 봄을 맞이했다. 이들이 맞이한 계절의 차이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과연 둘은 이야기가 통할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지닌 특별한 점을 잘 어우러지게 만든다. 바르다는 노화로 인해 세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JR은 바르다에게 물었다. 온 세상이 흐리게 보여도 좋냐고. 바르다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매일 선글라스를 쓰는 JR에게 까만 세상을 보고 살지 않냐고 유머로 답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일까, 이 둘을 서로가 가진 시선으로 멋진 작품을 함께 만들어 낸다.

 


 

평범함이 예술작품으로 탄생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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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다는 '양산을 든 아가씨 사진'을 찍기로 계획한다. 동네 주민에게 원피스를 빌리며, 동네 골동품점에 찾아가 양산을 빌린다. 골동품점 주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70년도에 사용한 웨딩양산을 빌려준다. 그는 어머니 양산을 기꺼이 사용해도 좋다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작위적이지 않은 이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진 한 장에 담긴 여러 사람의 이야기들. 사진을 볼 때마다 소품을 제공해 준 이들의 얼굴이 떠오를 것 같았다.


양산을 든 아가씨 사진의 모델은 나탈리가 맡았다. 동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모델이 된 나탈리는 굉장히 낯설어한다. 바르다와 JR이 양산의 위치를 지적하며 그는 이리저리 양산을 움직인다. 모든 이들의 노력 끝에 사진은 성공적으로 찍혔다. 대형사진은 하나의 벽화같이 보인다.나탈리는 마을 벽화에 붙여진 자신의 사진을 본다. 엄청난 사진의 크기에 놀라기도 했으며 처음 본 자기 모습에 어색한 미소를 띤다. 수줍음이 가득한 나탈리는 사진을 보는 게 묘하다고 말한다. SNS에서 자기 모습이 돌아다니는 게 놀랍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아주 멋지다고 칭찬해 줘서 한껏 기분좋아진 모습이다.

 

이젠 보니외 마을의 사진스팟이 된 ‘우산을 쓴 여성’. 나탈리의 아이들은 벽에 붙여진 엄마의 대형사진을 보며 흐뭇해한다. 그리고 두 아이는 사진을 배경삼아 셀카를 찍는다. 마을의 명인이 된 엄마 나탈리의 모습. 그의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평범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 사진. 바르다와 JR이 원했던 바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한 결과물은 이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여행객들에게도 마을의 매력을 한껏 알릴 수 있었다.

 

 


예술은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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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다와 JR은 한 공장에 방문한다. 공장 곳곳에는 위험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화학 사고 위험성이 높은 공간이라는 걸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중간에 한 남성이 등장한다. 아모리는 공장 근로자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직원이다. 그는 사고를 방지하는 역할을 맡아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아모리가 자신이 맡은 업무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느껴진다.

 

바르다와 JR은 모든 직원을 모아 사진을 찍기로 한다. 차례대로 오전 조와 오후 조가 모여 촬영했다. 서로 손을 뻗어 왼쪽과 오른쪽으로 향하는 동작을 취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찍힌 대형사진이 출력되었다. 나는 벽면에 붙인 사진은 어떨지, 보는 내내 궁금했다. 마침내 결과물을 보니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반대 방향으로 팔을 뻗은 모습은 서로의 손이 닿을 듯, 마치 화합의 장 같이 느껴졌다. 이 사진은 모든 직원이 모여서 의미 있었다.


”예술은 사람을 놀라게 하죠?”


”맞아요.”


한 남성은 사진을 보더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예술이 지닌 힘을 언급한다. 예술은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며 말한다. 사진에 담긴 많은 얼굴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들이 어떤 행복과 슬픔을 안고 사는지. 사진상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다. 하지만 사진에 등장한 이들은 알고 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말이다. 이들은 자기 얼굴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다른 점이 많을지라도, 서로를 이해하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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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계세요?”


“잘 못 올라가는 거 알잖나?”

 

“빨리 와요. 정말 근사해요.” 

 

”나 대신 많이 보게”


바르다와 JR이 계단을 올라가며 나눈 대화다. 짧은 대화이지만 둘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대사다. JR은 멋진 광경이 보고 싶어 성큼성큼 올라간다. 이에 반해 바르다는 아주 천천히 한 발짝씩 내디딘다. 이 둘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속도부터 차이난다. 바르다는 JR이 계속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답답해한다. 너무 정이 없어 보이고, 둘 사이에 장막을 친 것 같다고 말한다. 바르다는 여행 내내 선글라스만 쓰고 있는 그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이처럼 둘은 서로 이해하기 힘든 순간을 종종 마주한다.  


바르다는 JR과 함께 고다르의 집으로 향한다. 고다르는 바르다가 60년도에 찍은 단편영화 주인공이었다. 고다르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모습은 꽤 JR과 닮기도 했다. 그래서 바르다가 JR과 동행하여 그의 집에 방문하는 게 흥미로웠다. 고다르는 바르다의 오랜 친구였지만 못 본 지 5년이나 됐다. 바르다는 꼭 그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집은 굳게 잠겨있었다. 창문에 암호만 남겨놓았다. 바르다와 고다르가 자주 가던 식당과 그가 만든 영화 제목을 언급하며 암호만 덩그러니 써놨다. 바르다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려고 준비했지만 결국 눈물만 흐른 채 뒤를 돌아섰다. 그리고 호수에 가서 마음을 진정시키기로 한다. 

 

JR은 실망한 바르다의 모습이 걱정되었는지 어깨를 토닥여 준다. 그리고 JR은 오랫동안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는다. 절대 벗지 않을 것 같았던 그 까만 선글라스 말이다. 바르다는 그의 맨얼굴을 마주한다. 바르다는 눈이 흐릿하여 얼굴이 잘 보이지 않지만, 자신을 위해 기꺼이 선글라스를 벗어준 마음에 고마움을 표현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사진에 등장한 몇몇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처음엔 자기 얼굴이 크게 출력되어 당황한 모습. 그리고 사진이 예술 작품으로 탄생했을 때, 새로움을 맛본 듯한 이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나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많은 사람의 얼굴 사진을 벽에 다닥다닥 붙이는 모습이 신선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예술의 벽이 높지는 않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 없으며, 온전한 나의 모습 하나만으로도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바르다와 JR,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경계 없는 예술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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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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