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유튜브 디글, 방송 유퀴즈온더블럭
양심의 가책은 나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틀림을 자각할 때 밀려온다. 초자아의 하위 체계인 양심, 즉 내면화된 도덕적 기준이 그른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타인에게 보이는 자기평가에서 발생한다. 군중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 본인이 세운 자아 이상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거부되고, 거절되고, 존중받지 못할까 불쾌감을 느낀다. 고통, 무가치함, 열등감, 패배감, 굴욕감 등의 기분을 수반한다. 이런 부류의 부끄러움 외에도 나만 아는 창피함이 있다.
한번은 일하던 곳의 상사가 나를 지독히도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면접 때와 달리 시종일관 무표정이던 얼굴, 무미건조한 말투, 사담과 장난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차가움과 언젠가 한 번 무시당했던 적 있는 인사는 내 두려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처음엔 내 자질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았다. 오직 나만 졸업도 하지 않은 대학생 신분이었고, 오직 나만 비정규직이었다. 이런 신입이 같은 일을 나눠 맡는다는 게 아무래도 그로선 탐탁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장장 6개월을 무서워하면서 하나라도 밉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실수라도 했을 땐 속으로 날 얼마나 욕할지 상상하며 떨었다.
왜 직장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려 하지 않는지 그때는 몰랐다. 퇴사하던 날 내게 ‘이렇게 잘하고 계시는데 왜 그만두냐’며 처음으로 따뜻하게 말씀을 건네셨다. 난 일을 그만두던 날이 되어서야 마침내 그분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날 싫어하던 것도 아니었다. 매일 쓰던 인상과 쉬던 한숨은 일이 고돼서였고, 그 무뚝뚝함은 그저 사무적인 태도에 불과했다. 악의가 없는 줄 모르고 대체 내가 왜 그렇게 맘에 안 들까 하며 그가 너무한다고 믿었다. 그제야 협업하며 보았던 일에 대한 그의 열정, 뒤에서 남몰래 칭찬해 주고 있던 것들, 혼자서 감내하고 있던 것들이 떠오르며 스스로에게 더없이 부끄러워졌다.
이후로 다시는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을 몰라보는 일은 없을 테라고 오만하게도 믿었다. 얼마 전에는 눈앞에서 매일 혼나는 직원을 보며 또 속으로 섣불리 재단했다. 내 앞에서 보이는 실수들, 나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그런 실수들에 더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항의 전화와 지적은 또다시 그는 잘못만 한다고, 일을 못 해서 팀원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믿게 했다. 그 사람은 아무리 화살이 본인에게 돌려져도 크게 변명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고객사에서는 그 직원을 두고 칭찬 일색이었다.
또다시 쉽게 편견을 가지고 오해했다. 팀원들은 잘못해도 서로 덮어주고, 받쳐주고, 도와주어야 하는 사이다. 반면 고객사는 최선의 컨디션으로 응대해야 하는 곳이다. 우선순위가 높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우리 쪽에겐 어설픈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또 올곧은 사람을 올곧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들에게 내 생각을 말로 꺼낸 건 아니었지만, 저 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봤다는 것 자체로 몹시 부끄럽다. 생각이 겉으로 티가 났을 수도 있겠단 상상을 할 때면 너무나도 미안해져 가슴 한구석이 불편하다. 마음이 참 안 좋다. 어떤 생각은 가졌단 것만으로도 죄 같을 때가 있다.
장미란 선수가 방송 <유퀴즈>에 출연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시합에서 상대가 못하길 바라며 (바벨을) 떨궜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나에게 너무 부끄러웠다. 나만 아는 부끄러움이 있지 않냐.’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죽도록 창피한 마음이 나만 아는 부끄러움 같다. 나 자신으로부터 숨고 싶을 때. 내가 얼마나 밉고 얕은 사람인지 나 자신에게 들켜버려서 도망갈 곳도 없을 때. 내 속 때문에 상대의 얼굴도 쉽게 마주하지 못하게 될 때.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오만과 편견이 두 눈과 귀를 가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싶은데 자꾸만 나쁜 인간이 된다. 오늘도 나는 나만 알게 매우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