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과 나는 꽤 서먹한 사이였다. 연극과도 가깝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독 뮤지컬은 더 멀게 느껴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보지 않기 시작하니 점점 더 발걸음이 멀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뮤지컬을 찾게 된 건 이번이 몇 년 만의 일이었다. 이 작품을 문화초대로 선택한 이유 역시, 무엇보다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익숙한 이름 때문이었을 것이다.
![[크기변환][꾸미기]의사KakaoTalk_20260414_215103056.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4/20260414215559_pravnsqv.jpg)
나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원작 희곡을 처음 접했던 것은 어린 시절이었고, 이후 기억에 남은 것은 중학생 때 보았던 영화 속 장면이었다. 그때의 나는 이 비극을 ‘슬픔’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였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하면서도 끝내 어긋날 수 있을까, 왜 모든 이들이 그 사랑을 가로막았을까, 그리고 결국 스스로의 선택마저 어긋나버렸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시절 내가 집중했던 것은 분명 ‘사랑의 어긋남’이었다. 그러나 이번 뮤지컬을 보고 난 뒤, 시선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사랑은 증오를 이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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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뮤지컬은 그러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이후, 두 가문의 어른들은 충격을 받고 오랜 전쟁을 끝낸다. 이 결말에서, 죽음의 시발점은 사랑이며, 그렇기에 사랑은 증오로부터 시작된 전쟁을 끊었다ㅡ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작품은 사랑의 가치, 혹은 힘은 혐오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통찰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나는 그 메세지에서 이어지는 결론이 선뜻 납득되지만은 않았다.
극에는 절정이 필요하다. 절정은 대개 갈등과 고통 속에서 형성되고, 결말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부분이 된다. 동시에 관객의 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역할이기도 하다. 머큐시오와 티볼트의 죽음은 결말을 위한 자극적인 장치라고 생각했다. 로미오의 추방과 둘의 이별, 그리고 비극적인 오해로 이어지는 시발점이니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머큐시오와 티볼트의 죽음 역시 '증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극 중에서 발생하는 죽음은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진 것 처럼 보이지만, 근원을 따라가면 같은 뿌리로 귀결된다. 전쟁, 그리고 증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역시 머큐시오와 티볼트의 죽음과 완전히 단절됐다기보다는 그 연장선 위에 머무른다. 그렇다면 '사랑이 증오를 이겼다'는 말이 성립한다면, '사랑이 이들을 죽였다'는 말도 성립한다. 굳이 가르자면 머큐시오와 티볼트의 싸움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으로 인해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이 전쟁의 무의미를 깨닫게 해준 것은 맞겠지만, 그러나 그것을 곧바로 '사랑이 증오를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이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전쟁이 멈춘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끝없는 죽음에 지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 나아가, 두 가문의 아이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이한 상황에서, 가문의 존속과 명예를 위해서라도 멈춰야겠다는 판단이 섰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어른들은 이를 예쁘게 포장해 '사랑이 증오를 이겼다'는 이야기로 정리한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해주었다면, 사랑은 증오를 이겼다는 말에 명쾌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사랑이 증오를 이긴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희생에 지친 어른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마무리 한 것은 아닐까. 죽어서도 영원할 사랑이면, 살아있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숨쉬고 공기를 느끼고 땅을 밟아 이 세상에 서 있나. 그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은 것이다. '살아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고통 때문에. 이로 택한 죽음이 과연 사랑의 완성일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동반자살은 '영원한 사랑'이 아니라, 증오가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그리고 '사랑이 증오를 이겼다'는 말은 살아있는 이들, 즉 어른들이 덧붙인 해석일 뿐이다. 죽은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