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남긴 세기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시대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 더해져 왔다. ‘사랑’은 어느 시대나 존재하지만, 표현 방식은 늘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익숙한 서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고전적인 멜로디 위에 팝과 록의 리듬을 얹고, 아크로바틱과 현대무용을 결합한 역동적인 구성은 자유와 평화, 사랑의 이야기에 감각적인 스펙터클을 더한다.
20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작곡가 제라르 프레스귀르빅(Gérard Presgurvic)의 음악을 바탕으로 탄생한 프랑스 대표 뮤지컬이다. 초연 이후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며 인기를 얻었고, 특히 ‘사랑한다는 것(Aimer)’과 ‘세상의 왕들(Les Rois du Monde)’ 같은 넘버는 프랑스 음악 차트 정상에 오르며 작품의 상징적인 곡으로 인정 받았다.
한국에서는 2009년 내한 공연 당시 약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으며, 2026년 한전아트센터에서 17년 만에 다시 관객들과 만난다.
전쟁과 평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베로나라는 도시의 배경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의 의미를 품는다. 몬테규와 캐플릿 두 가문의 오랜 갈등은 개인의 감정을 집어삼키는 집단적 폭력의 상징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압박 속에서 개인의 삶과 사랑이 얼마나 쉽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인 것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전쟁을 떠올리면, 이를 어느 먼 옛날이야기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죽음 앞에서도 사랑을 택한다는 낭만의 서사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삶과 사랑 앞에 사랑을 택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의 독특한 장치 중 하나는 ‘죽음(Death)’이라는 인물이다. 죽음은 단순한 서사의 결과가 아니라 무대 위를 유영하는 하나의 존재로 등장해 인물들의 운명을 예고한다. 검은 그림자처럼 두 연인을 따라다니며 때로는 안무의 중심이 되고, 때로는 이야기의 균열을 만든다.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도 낯설지만 흥미롭게 느껴지는 연출이다.
다만 넘버가 비교적 ‘공평하게’ 배분됐다는 인상이 강해 서사의 구심점이 약하다. 원작 역시 서사가 빠르게 전개되는 작품이지만,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극본을 좀 더 다듬었다면 이러한 속도감을 보완하고 인물의 감정을 촘촘히 쌓아 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러 인물이 다채롭게 무대를 누비는 덕에 장면은 풍성해졌지만, 그만큼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집중되어야 할 감정의 밀도는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끝내 남기는 감상은 담백하다. 비극이라는 결말이 전하는 분명한 메시지 덕이다. 현실은 대부분 회색지대에 머물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사랑을 했다. 그리고 사랑, 죽음을 선택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다시금 묻는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럽더라도, 사랑이 끝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비극을 피할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어쩌면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여전히 이 이야기를 반복해 무대 위에 올리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