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빅 마더 포스터.jpg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크고 작은 음모론이 끊임없이 떠돈다. 국내 정치 이슈부터 국외 사건까지,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확산된다. 한 번쯤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중 일부를 진실이라고 믿어본 적도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선거 부정론이 온라인과 집회 현장에서 되풀이되고, 특정 정치인을 겨냥한 허위정보와 딥페이크 영상도 퍼졌다.


그렇다면 그 정보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연극 <빅 마더>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요즘 우리는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어 탐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 더 자극적이고 더 쉽게 믿어지는 거짓. 그 아름답고도 매혹적으로 설계된 거짓에 기꺼이 매달리며 끌려가고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은 그런 불편한 질문을 관객 앞에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세워 둔다.

 

*


연극 <빅 마더>는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훨씬 불편하고 현재적이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진실을 믿게 만들고 있는가. 제목부터 1984 속 ‘빅 브라더’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감시와 통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한층 더 정교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력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권력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정보의 흐름을 설계하고 믿음을 조직한다.


프랑스 극작가 멜로디 무레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빅 마더>는 정치, 미디어, 그리고 데이터가 결탁한 구조를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짜 긴장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다. 대선을 앞둔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영상이라는 자극적인 사건은 출발점일 뿐이다. 이야기는 곧 딥페이크와 여론 설계라는 훨씬 거대한 층위로 이동한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이 작품이 거짓말하는 인간이 아니라 거짓말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을 문제 삼는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진실은 밝혀지면 승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빅 마더> 속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진실은 밝혀지는 것만으로는 아무 힘도 갖지 못한다. 그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동시대 관객을 정면으로 겨눈다.

 

*


제한된 극장 공간 속에서도 무대는 결코 제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과 조명, 배우들의 유기적인 동선은 공간을 확장시키며 마치 카메라가 이동하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배우들은 무대를 가로지르며 시선을 분산시키고 관객은 하나의 장면에 머무르기보다 끊임없이 ‘다음 정보’를 따라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작품이 재현하고 있는 세계, 즉 과잉된 정보 속에서 방향을 잃는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연출을 맡은 이준우는 빠른 장면 전환과 리드미컬한 구성으로 정보가 교차하는 감각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이는 단순한 연출적 스타일을 넘어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정보 환경을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장면들은 끊임없이 전환되고 시선은 분산되며 관객은 따라가는 동시에 의심하게 된다. 이 몰입과 혼란의 동시성은 작품의 주제와 정확히 맞물린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알렉스 쿡이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고 보도했던 사실이 어쩌면 치밀하게 설계된 거짓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는 확신과 자부심으로 쌓아 올린 자신의 기사를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하고 그 균열은 곧 자책으로 이어진다. 기자를 꿈꾸는 나에게도 그 장면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가 쥐고 있다고 믿는 진실 앞에서, 그것이 특종이 되는 순간조차 끝내 한 번 더 의심할 수 있을까.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라서 더 오래 남았다.


<빅 마더>는 분명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중 하나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이 사실인가를 묻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대신 어떤 사실이 더 널리 퍼지도록 설계되고 있는가를 묻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작품은 결국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진실은 있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았다.


이 문장은 단순한 극 중 상황을 넘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디지털 여론, 댓글, 그리고 알고리즘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무엇이 사실인가보다 무엇이 더 많이 노출되고 더 쉽게 믿어지는가가 판단을 대신하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그런 점에서 <빅 마더>는 먼 나라의 정치 스릴러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이미 지나고 있는 현실의 또 다른 이름처럼 읽힌다.


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사고하고 있다고 믿지만, 어쩌면 이미 설계된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빅 마더>는 어떤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 각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공연장을 나선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컬쳐리스트 최은파.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