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메모리 (Post Memory) 세대 :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과거의 사건을 부모·이전 세대의 기억, 이야기, 기록 등을 통해 전해 받아 마치 자신의 기억처럼 강하게 느끼는 세대
우리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모두 각자의 '연극'을 한다. 직장에서는 기쁘지 않은 날에도 웃어야 하고, 기분이 상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간다. 어쩌면 하루의 대부분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1980년대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차지한 샤프의 〈연극이 끝나고 난 후〉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라디오와 방송을 통해 들려오는 이 곡은 '연극이 끝난 뒤'의 허전함을 담담하게 담는다. 힘을 뺀 여성 보컬의 목소리는 덤덤하지만, 그 안에는 묘한 쓸쓸함이 배어 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연극 속 관객은 마치 내 삶을 스쳐 간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인생 자체가 하나의 무대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많은 관객 앞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고요함만이 남는다.
나는 90년대생이지만, 80~90년대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으나 그 시절의 감정을 음악과 문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문학자 마리안 허시는 '포스트 메모리(Post Memory)'를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과거의 사건을 이전 세대의 기억과 기록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험으로 정의했다. 허시는 이 개념을 홀로코스트 2세대 연구에서 발전시켰지만, 나는 이것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넘어 문화적 감각의 전이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적 포스트메모리 세대다.
그 시절에는 한국 사회 특유의 '정'이 지금보다 더 깊게 흐르던 시기였다고 느껴진다. 특히 1988 서울 올림픽 같은 순간은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감각을 선사했다. 거리에서, 술집에서,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같은 화면을 보고 같은 감정을 나눴다.
하지만 지금은 그 풍경을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올해 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JTBC의 단독 중계로 진행되면서 익숙하게 접하던 지상파에서는 볼 수 없었다. 일부 사람들은 개막 사실조차 뒤늦게 알았고, 올림픽이 진행 중이라는 감각을 체감하지 못했다.
이제 사람들은 함께 모여 같은 화면을 바라보기보다 각자의 화면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혼밥'과 '혼술'은 낯설지 않고, 함께 무언가를 소비하는 경험은 점점 줄어든다.
이 변화는 단순히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팬데믹은 흐름을 가속했을 뿐, 이미 SNS와 AI의 발달로 우리는 언제든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연결은 깊어지기보다 얕아지고 멀어지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80~90년대 음악을 자주 듣는다. 직접 살아보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음악 속에는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고 감정을 나누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그 시절이 남긴 감각을 그리워한다. 어쩌면 이것이 문화적 포스트 메모리 세대의 고유한 결핍일지도 모른다. 직접 잃은 것도 아닌데,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관계의 온도.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나누는 대화에는 알맹이가 있는가, 아니면 겉돌고 있는가. 사회에서의 연극이 끝난 뒤 무대에 혼자 남았을 때, 그래도 곁에 있는 사람이 있는가.
어쩌면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감각을 그리워하는 세대로서, 그 질문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