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눈과 손이 바쁘다. 나의 취향을 찾고 수집하는 데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크기변환]KakaoTalk_20260329_192852607.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9201621_fdngsdnf.jpg)
과거의 소비가 의식주에만 머물렀다면 이제는 아니다. 바쁘고 복잡한 현대인들에게 문화적 소비는 또 하나의 소비로 추가되었다. 이 소비는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 뿐만아니라 위로까지 건넨다. 그리고 이 새로운 소비를 마음껏 할 공간이 동대문 DDP 한가운데 생겼다. 이름하여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
이곳은 백화점이라는 형식을 유지한 채 전시라는 개념을 슬쩍 뒤튼다. 다양한 취향을 한곳에 모은 백화점, 누가 이걸 사지 싶은 것까지 전부 모여 있는 백화점. 층마다 다른 세계관, 코너마다 다른 태도. 그리고 이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나'다.
첫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쇼핑백 같은 종이를 한 장 건네받는다. 각자 다른 스팟에서 나만의 이야기라고 느껴지는 것들을 담으라고 했다. 아무런 제약 없이. 종이백을 손에 든 순간부터 이미 나는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었다. 수집가였고,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이야기의 편집자였다.

이 전시의 테마는 '포스트 서브컬쳐'다. 하위문화가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물지 않고, 도시와 브랜드의 구조 안으로 이식되는 단계를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유행이라는 큰 틀 안에서만 소비가 이루어졌다. 그 흐름에 속하지 않는 것들엔 '오타쿠', '덕후' 같은 말이 따라붙었다. 취향이 좁고 깊을수록 어딘가 이상한 사람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양한 취향의 조합이 한 사람을 구성하는 시대가 됐다. 누군가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건, 그 사람을 이해하지 않는 것과 같아졌다.
이제 브랜드도, 어떤 분야도 모든 대중에게 인정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수의 몇 명만 강타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쌓아온 이야기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울트라백화점에 들어선 70여 개의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음악, 출판, 영화, 패션 저마다의 방식으로 획일화된 기준 밖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해온 이들. 이 전시가 묻는 건 '무엇을 만들었냐'가 아니었다. 왜 이 방식을 고수했는지, 어떤 태도와 시간 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물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 또한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무언가를 느끼고 경험하며, 더 깊이 공감하는 지점들을 쌓아왔다는 것을. 그것이 곧 나만의 세계관이었다.
각 취향이 담긴 공간에서 나는 자꾸 발걸음을 멈췄다. 모두 내 한 켠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조각들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스팟 앞에서는 '이거 나잖아' 싶어 한참을 서 있었고, 어떤 코너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취향이 불쑥 튀어나와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그러다 같은 지점에서 손을 뻗던 순간, 옆에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E.T.처럼 손가락이 맞닿는 기분이었다. 취향이 말보다 먼저 사람을 잇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나에게 여러번 발걸음을 멈췄다.
멈춘 어느 지점들
![[크기변환][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60329_195108301_0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9201735_idzmpmlu.jpg)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취향이 정립되지 않아졌다. 어느 날은 한 분야에 고지식한 덕후가 되어가는 나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면서 늘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런데 이 문장이 말해줬다. 그 혼돈 안에서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속박하려는 게 오히려 가장 큰 혼돈의 원인이라고. 그러지 말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유연한 취향으로 들떴으면 한다고.
그 말이 다음 세션으로 이어졌다. COLLECTOR 존. 국가스텐, 너드커넥션 등과 같은 인디 밴드들의 음악이 가득한 그 공간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이미 카오스였다.
그들을 알지 못해 그들이 소개하는 곡들 중 아는 곡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뭐라도 스티커를 붙여야겠다는 압박감이 몰려와 10분 넘게 아는 곡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마지막 한 칸이 남은 순간, 문득 멈췄다.
![[크기변환][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60329_195108301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9202533_lnfcbzwx.jpg)
"내가 이걸 왜 채워야 하지? 이들의 곡을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귀동냥으로 들은 밴드들이 유명하고 코어 팬층이 강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그 유행에 한 발 걸치려 했던 것이다.
전시의 취지와도, 방금 읽은 그 문장과도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모든 칸을 채우려던 욕심을 내려놓았다. 비어 있는 칸도 나의 취향이라고 받아들였다.
*
사실 이곳을 둘러보면서 내가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나의 취향을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이렇게 자세히 꺼내놓은 적이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일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너무 좁은 세계를 혼자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다양한 취향이 사실은 그냥 가벼운 것들에 불과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내 이 공간이 조용히 말해줬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취향을 넘어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독백처럼 느껴졌던 나의 취향이 사실은 이미 누군가와 닿아 있었다는 것을.
한 가득 담은 취향 보따리를 손에 들고 나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곳에서는 충동소비를 하는 듯, 그저 나의 취향을 찾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작은 종이백 안에 이렇게 많은 내가 담겨 있을 줄이야.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문장들과 그림, 물체들에 둘러싸인 채 위로를 받는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곳이 Vol.3로 이어지길 바라며, 나의 취향 보따리를 꼭 쥐고 DDP를 나왔다. 문득 나의 취향 한 부분을 돌이켜보고 싶으면 이 보따리를 다시 꺼낼 생각이다.
![[크기변환][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60329_195108301_0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3/20260329202650_rkyyohl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