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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은 그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봐도 여전히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 THE LAST>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미 잘 알려진 원작 서사를 바탕으로 하는 이 작품은, 북한 5446부대의 엘리트 요원들이 남한의 한 동네에 잠입해 각자의 신분을 위장한 채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원류환은 동네 바보 ‘동구’로, 리해랑은 자유분방한 청년으로, 리해진은 평범한 학생으로 일상을 연기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허술하고 우스운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든 명령에 반응하도록 훈련된 ‘병기’들의 긴장과 공포가 숨어 있다. 이 작품의 출발점은 바로 그 간극에서 시작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그 모순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 작품을 보며 가장 먼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의외로 ‘비장함’이 아니라 ‘생활감’이다. 작품은 거대한 이념이나 첩보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동네의 소박한 일상과 그 안에 스며드는 인물들의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누군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모자란 척 웃고, 누군가는 장난스럽게 굴고, 누군가는 철없는 얼굴로 하루를 버틴다. 그런데 바로 그 일상성 때문에 이후의 비극은 더욱 선명해진다. 처음에는 임무를 위해 연기하던 삶이 시간이 갈수록 진짜 삶처럼 변해가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고, 걱정을 받고, 밥을 먹고, 웃음을 나누는 일이 더 이상 위장이 아니라 감정이 되어버리는 순간, 이들의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비극은 단순히 사건의 파국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아픈 지점은, 이들이 아주 평범한 행복을 조금씩 배워간다는 데 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기고, 익숙해진 골목이 생기고, 돌아가고 싶은 장소가 생기는 순간부터 이들은 이미 이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 같은 요원으로 살아왔던 인물들이 비로소 인간적인 온기를 경험하게 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상실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오래도록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아온 이유도 아마 이 지점에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결국 가장 깊은 곳에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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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기념 공연으로 돌아온 이번 시즌은 작품의 장점을 보다 선명하게 확대해 보여준다. 이번 공연은 2026년 1월 30일부터 4월 26일까지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에서 진행되는 대극장 버전으로, 기존보다 확장된 무대 구성과 액션의 입체감이 특징이다. 실제로 이번 시즌은 액션 장면의 속도감과 장면 전환의 스케일을 끌어올리며, 작품이 가진 장르적 쾌감을 더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힘은 화려한 액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인상 깊은 것은 결국 인물들의 감정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축적되느냐에 달려 있다. 원류환, 리해랑, 리해진, 세 인물은 서로 다른 결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모두가 ‘부여받은 삶’과 ‘살고 싶은 삶’ 사이에서 갈라진다. 이들의 관계가 쌓일수록 극은 단순한 삼인조 서사가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작동한다. 누군가는 끝까지 버티려 하고, 누군가는 더 노골적으로 흔들리고, 누군가는 가장 늦게 그러나 가장 크게 무너진다. 그 결이 다르기 때문에 세 사람의 비극은 오히려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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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작품이 유머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초반부에 비교적 경쾌한 톤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동구’라는 위장 신분에서 비롯되는 익살스러운 장면들, 동네 사람들과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생활 코미디, 세 인물 사이의 장난기 어린 호흡은 분명 객석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런데 이 웃음은 결코 가볍게 소비되지 않는다. 초반에 쌓인 웃음이 후반부로 갈수록 그대로 슬픔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관객은 자신이 웃었던 장면들을 나중에 다시 떠올리며, 그 안에 이미 비극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먼저 웃게 만들고 익숙해지게 만든 뒤, 그 익숙함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위장된 삶’, 그리고 ‘평범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연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연기 속에서 처음으로 진짜 자신에 가까워진다.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시작한 일상이 오히려 가장 진실한 시간이 되어버린다는 점은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답고도 잔인한 설정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의 상실은 단지 무대 위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고 관객의 감정 안으로 깊이 침투한다.

 

결국 〈은밀하게 위대하게: THE LAST〉는 ‘위대한 임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이 끝내 보여주는 것은 너무도 은밀해서 쉽게 말해지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위대한 어떤 마음이다. 누군가를 지키고 싶었던 마음,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었던 마음, 한 번쯤은 자기 의지로 내일을 선택하고 싶었던 마음. 작품은 그 소박한 소망들이 얼마나 귀하고 또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커튼콜 이후에도 오래 남는 것은 화려한 액션의 잔상보다는, 끝내 평범한 행복에 닿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THE LAST〉의 10주년은 이 작품이 왜 여전히 무대 위에서 유효한지를 다시 증명하는 시간처럼 보인다. 더 커진 무대, 더 선명해진 액션, 더 짙어진 감정선 속에서도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작품을 여전히 다시 보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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