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중이다. 봄이 온다고 생각하면 괜히 간질간질한 음악이 듣고 싶어진다.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그런 노래 말이다. 딱 이맘때에 생각나는 음악이 있다. 바로 가수 차울의 음악이다.
차울의 음악에는 봄이 오는 소리처럼 들뜸이 있다. 옷차림이 얇아지고 걸음이 조금 빨라지고, 괜히 연락 한 통이 기다려지는. 완전히 행복하다고도 그렇다고 쓸쓸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마음. 막 무언가가 시작될 것 같은데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 그래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사랑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질 가능성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사랑이 시작되기 직전의 계절인 봄을 참 닮았다.

출처 :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그 시작을 떠올리면 역시 〈Sneakin’ Into Your Heart〉다. 이 곡은 제목부터 이미 사랑을 정면으로 고백하지 않는다. ‘침투한다’라는 표현은 우습고 귀엽지만 동시에 사랑이 실제로 나에게 오는 방식과 닮은 거 같다. 차울은 여기서 사랑을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어느새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상태로 그린다. (‘몰래몰래 네 맘속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면 돼’) 같은 가사는 좋아하는 마음의 비밀스러움과 서툰 자신감을 함께 보여준다. 사랑이란 대개 이렇게 우스꽝스럽고도 진심 어린 방식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차울은 아주 가볍게 말해버린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봄날의 사랑이 떠오른다. 결심보다 망설임이 많고 확신보다 상상이 앞서는 마음 말이다.
반면 〈어영부영〉은 차울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이 곡에서 사랑은 설렘이라기보다 설렘조차 쉽게 시작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먹어 줄 사람 하나 없어, 웃어줄 사람 하나 없어, 사랑 노래를 들어도 이별 노래를 들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구요.’) 이 가사들은 우리 누구나 느끼는 사랑 저 너머의 외로움을 담백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좋은 이유는 그 쓸쓸함을 비장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외롭지만 외롭다고 울지 않고 그저 어영부영 하루를 넘겨버리는 태도.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그 빈자리를 가볍게 만드는 힘. 봄이 모두에게 사랑의 계절은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차울은 알고 있는 것 같다.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은 〈Sarang〉이다. 이 노래는 제목부터 단순하다. 한국어 ‘사랑’을 영어 알파벳으로 옮긴 그 어색하고 귀여운 표기처럼 곡 자체도 사랑을 너무 무겁지 않게 말한다.
사랑. 그 뻔한 감정을 오히려 솔직하고 정직하게 표현한다. (‘사랑, 사탕처럼 달콤하지요. 사랑, 사탕처럼 녹아들지요.’)
그 사람을 보자마자 예감한 거처럼 운명적인 사랑을 믿게 만든다. (’Love, 이미 난 알았어요. 이렇게 우린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질 것을.‘)
내게 이 노래는 차울식 사랑 노래의 정수처럼 느껴진다. 달콤하지만 과하지 않고 확신에 차 있으면서도 부드럽다. 사랑을 크게 외치기보다 입안에서 한 번 굴려보는 사탕처럼 부르는 노래.
여기에 〈Waters of March〉를 함께 떠올리면 차울이 왜 봄과 잘 어울리는지 더 분명해진다. 이 곡은 소금과 함께한 작업으로,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빔의 클래식을 차울과 소금의 결에 스며들게 한 곡이다. ‘the promise of spring’과 ‘the joy in your heart'라는 가사는 이 노래가 왜 오래 사랑받는지 단번에 보여준다. 봄은 아직 완전히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미 약속되어 있고 기쁨 또한 아직 가득 차지 않았지만 분명 예고되어 있다. 차울과 소금은 그녀들의 유니크한 보이스로 봄이 오는 소리를 따뜻하게 들려준다.
몰래 시작되는 사랑, 그 사랑의 발치에 있는 기대와 설렘, 그 설렘이 부재한 날들, 마침내 마음이 자기 이름을 갖게 되는 순간, 사랑과 계절이 함께 오는 소리. 차울은 사랑을 한 가지 얼굴로 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게 차울의 음악은 사랑이 만연한 이 봄에 들어야만 하는 그런 음악이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마음까지도 가만히 흔들어 깨우는 노래들. 차울의 음악을 들으며 이 계절의 사랑을 천천히 맞이해보아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