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악으로 여행을 기억하다 [음악]

김동률의 ‘출발’
글 입력 2023.02.0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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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래에는 이야기가 담긴다.

 

가수가 노래를 하려면 가사가 있어야 하고, 가사가 있으면 당연히 그 안에 이야기가 있을 텐데 이게 웬 새삼스러운 말인가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 이야기는 가사 그대로의 내용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청자다.

 

한때 즐겨 들었던 노래를 우연히 플레이리스트에서 마주했을 때,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와 함께 들었는지에 따라 노래 위로 자기만의 추억을 덧씌운다. 마치 오래 입은 옷에 체향이 배듯이, 노랫말 위로 듣는 사람의 이야기가 배어든다.

 

얼마 전 나는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추억의 노래 한 곡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은 그 곡에 새롭게 스며든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 김동률의 '출발'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음악이 있다.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 어느 카페에서 들려온 김동률의 '출발'이 나에게는 그런 곡이다.

 

단어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 노래를 듣고 있으면, 배낭을 메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누군가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무엇을 만날지 모르기에 느껴지는 설렘,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다림이 피어오른다.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사실 이 곡은 내가 막 열일곱 살이 되었을 무렵에 알게 되었던 노래다. 그 당시의 나는 고등학교 입학 과제로 국어 온라인 강의를 하나 들었어야 했는데, 수업을 진행하시던 선생님께서는 매 차시를 시작하며 노래 한 곡을 소개해주시고는 했다.


그 선생님께서 1강에서 들려주셨던 노래가 바로 '출발'이었다. 부드럽고 편안한 멜로디가 마냥 좋아서, 그 강의를 본 뒤로 종종 찾아듣고는 했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는 끝도 없이 길어보일 수험 생활이 제자들에게 너무 무겁게 다가가지는 않길 바라는, 선생님의 마음이 담긴 선곡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제서야 생각해본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고등학교의 기억이 이 노래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라면, 이번 여행에서 담긴 두 번째 이야기는 이 대목과 관련이 깊다. 최근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매사에 온 열정을 다 쏟아부으며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쉴 때 마음이 좋지만도 않다는 말이 꼭 나오고는 한다.


여유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마치 사치처럼 느껴지고, 그 휴식의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느껴지기도 한다. 당장 나 역시도 제주도로 출발하기 전까지, 할 일을 제쳐두고 떠나는 것만 같아 찝찝한 마음이 들었으니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느낀 것은, '아무것지 하지 않기' 위한 시간도 분명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별거 아닌 것들에 대해 웃고 떠드는 시간, 아무런 말 없이 각자 하늘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아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여유를 즐기는 시간이 주는 행복감은 어떤 성취감이 주는 행복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이번 여행은 내게 쉼을 즐기는 법, 서두르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물론 지금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지난 여행에서 들었던, 여행과 닮아 있는 이 노래와 함께 나는 오래오래 지난 사흘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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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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