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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의 다음 장 [드라마/예능]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말하는 끝 이후의 이야기

by 임채희 에디터
2026.02.2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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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취미가 있다. 봤던 드라마를 또 돌려보는 것. 마음에 든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봤던 드라마를 다시는 보지 않는 사람이 있고, 봤던 드라마를 계속 돌려보는 사람이 있다. 두 가지 유형 중 나는 후자에 속한다. 이미 결말까지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볼 때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과 감정이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에 드라마를 재시청하는 걸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한 해에 몇 번씩 꺼내보게 되는, 나에게는 '인생 드라마'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2020년 방영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다. 이 드라마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을 때마다 문득 떠오른다. 겉으로는 로맨스 드라마로 분류되지만, 그 안에는 사랑만큼이나 '꿈'에 대한 이야기가 깊게 담겨있다.

대부분의 '꿈'을 다룬 드라마는 비슷한 포맷을 따른다. 주인공은 목표를 세우고, 수많은 어려움과 실패에 부딪히고, 결국은 그 꿈을 이뤄낸다. 이러한 드라마는 대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주기에 늘 주목을 끈다. 하지만 브람스는 익숙한 포맷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꿈을 담았다.

송아는 바이올린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미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도 다시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음대 진학의 기쁨도 잠시. 날고 긴 동기들 사이에서 송아는 늘 뒤처지고, 노력할수록 자신의 한계를 더 마주하게 된다. 만약 이 드라마가 끝내 송아의 성공으로 이어졌다면, 이 드라마는 오래 기억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송아는 결국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마주한다.

 
 
재능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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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콘서트가 끝난 뒤, 준영과 송아는 이야기를 나눈다. 송아가 토크 콘서트에 참여한 중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간다는 게 멋있다고 말하자 준영은 이렇게 답한다.

 
"재능은 없는 게 축복이죠. 나한테도 재능이 없었더라면 모든 게 나아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이 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재능은 분명 축복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모두 시청하고, 준영의 상황을 알게 되면 이 말이 완전히 틀릴 말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기에 오히려 준영은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우리는 흔히 재능을 무언가를 '잘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개의 재능은 갖고 있다는 말이 있기에 그래서 한 번쯤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애써본 경험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찾은 재능조차 이 사회에서는 결국 비교되고, 순위가 매겨진다. 그럼 그때부터는 재능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얼마나 더 뛰어난 지가 더 중요해지게 된다.

그렇다면 '재능'의 정의는 단순히 잘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다시 재정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준영은 토크 콘서트에서 학생들에게 꿈꾼다는 것 자체가 재능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앞선 준영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이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정도로 동감하는 바이다. 재능을 찾아도 그것을 재능이라고 하지 않는 이 시대에 사실 진정한 재능의 정의는 용기있게 꿈을 꾼다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꿈을 내려놓을 용기

 

꿈을 꾸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꿈을 내려놓는 데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꿈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간절히 원했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을 견뎌온 자신을 보내주는 일이고, 같은 곳을 바라보던 사람들과 나란히 서는 일이 아닌 바라보는 것으로 물러나는 일이기도 하다.


송아는 바이올린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뒤 크게 앓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가족들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꿈을 내려놓는 그 과정을 현실적으로 담아냈으며, 그 선택이 얼마나 쉽지 않았는지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느껴진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드라마는 간절히 원하면 결국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누구보다 간절했던 꿈을 보내주는 순간을 담아낸다.

송아는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문화 재단에서 새로운 길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용기처럼 보인다.

 
 
Rejection is redirection. 

 

작년 전 세계를 매료시킨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에 참여한 이재는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I just want to say this award goes to people who've had their doors closed at them. 
I can confidently say "Rejection is redirection."

이 상을 수없이 문이 닫히는 경험을 겪어온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거절은 끝이 아니라 다른 길로 이끄는 방향 전환이라는 것을요.
 
 
이재는 아이돌을 꿈꾸며 10년간 연습생으로 생활했지만, 결국 데뷔에 실패했다. 그러나 또 다른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한 번 닫힌 문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다른 문이 이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 셈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송아가 떠올랐다. 물론 이재는 실존 인물이고 송아는 드라마 속 캐릭터이며, 두 사람이 지나온 절대적인 시간과 밀도도 다르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원했던 문에서 멈춰 섰다는 점, 그리고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는 점이 닮아 있다.

요즘은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라고들 말한다. 물론 피나는 노력 끝에 무언가를 이루는 경우도 존재하겠지만,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노력은 언제나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 순간에도, 누군가 나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노력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의 노력을 쉽게 의심하게 된다.

이런 시대에는 '노력하면 무조건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는 예전만큼 설득력을 갖지도 못할뿐더러 판타지에 가깝다. 오히려 그 끝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어릴 적 꿈을 그대로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어느 순간 멈춰 서고,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crescendo(크레셴도): 점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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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크게라는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여기가 제일 작다는 뜻이기도 해요. 여기가 제일 작아야 앞으로 점점 커질 수 있는 거니까. 15년 전에 내가 우리 재단 면접 봤을 때 그때 나는 피겨 그만두고 자존감이며 자신감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이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제일 작은 순간이 바꿔 말하면 크레셴도가 시작되는 순간이 아니겠냐고요.
 
 
바이올린을 그만둔 송아에게 차팀장은 재단에서 앞으로 더 일해보자는 제안을 하며 이 말을 건넨다. 굳이 송아처럼 새로운 길 앞에 서있는 입장이 아니더라도 이 대사는 많은 사람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며 좌절을 경험한다. 한두 번의 좌절은 그럴 수 있다며 넘길 수 있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고 반복되면 점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앞으로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이럴 때, 차팀장의 대사를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크레셴도. 점점 크게. 지금이 가장 순간이라면 앞으로는 더 커질 일만 남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자극적인 전개 대신 잔잔한 서사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조용하지만 깊은 위로를 건넨다.

2월의 마지막. 누군가는 새로운 학기를, 또 누군가는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을 지금, 자신의 꿈을 내려놓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선 송아의 이야기를 통해 작은 용기와 응원을 얻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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