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동물이라는 숙명
‘어딜 가나 사람이 제일 문제’라는 말에 많이들 공감할 것이다. 살다 보면 다양한 문제를 겪게 되지만, 대인 관계만큼 골치 아픈 일이 없는 것 같다. 이리저리 사람에 치여 살다 보면 ‘혼자가 최고’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1인 가구 수는 갈수록 늘고 ‘혼밥’, ‘혼술’ 같은 말들은 일상어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인간관계의 뇌과학>의 저자 에이미 뱅크스는 인간의 뇌는 더불어 살아가도록 설계되었으며 이러한 본능을 거스르는 삶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외로움과 고립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이라는 것이다. 타인과 연결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뇌의 기능이 약해지고 심리적·신체적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몇 달 전 비슷한 취지의 내용이 담긴 책에 대한 리뷰들이 아트인사이트에 올라오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평소 심리학에 관심을 가져온 터라 외로움이 담배 열 개비만큼이나 해롭다는 말은 내게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그 책에 별다른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여러 명의 지인을 한꺼번에 잃은 뒤 애써 마음을 추스르던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친구가 없는데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최고의 실용 서적
한동안 ‘인생은 독고다이’를 외치며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 역시 결국에는 이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저자의 말처럼, 실제로 여기저기가 고장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기획 기사를 작성해야만 하는 PRESS로서의 입장을 떠나, 관계라는 숙명을 짊어진 한 명의 인간으로서 겸허하게 책을 읽었다.
나는 심리학이야말로 최고의 실용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마음’과 함께 살아가니까. 이 책의 돋보이는 점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우리 뇌의 특성을 조명함과 동시에 체계화된 전략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과학에 근거한 구체적인 솔루션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성격이 강하다. 즉, ‘어쩌라고’라는 골치 아픈 질문에 ‘어찌할지’ 훌륭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진화해 왔음에도 고립을 택하게 되는 까닭은 어린 시절의 환경이나 반복된 관계의 상처로 인해 신경 경로가 위축되거나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내향적인 성격이나 사회성 탓이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은 단지 외향적인 사람보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선호할 뿐이다. 그러나 저자는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무너진 뇌의 균형을 얼마든지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모두를 위한 솔루션
오랫동안 이어져 온 통념과는 달리 인간의 뇌는 주어진 환경에 맞게 죽을 때까지 변화를 거듭하는데, 이를 신경 가소성이라 한다. 이때 특정한 신경 경로를 자주 활용할수록 견고해지고, 다른 경로는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바로 이 점을 활용해 강화하고자 하는 신경 경로를 반복해서 자극함으로써 오래된 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습관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네 가지 강점인 평온함(calm), 수용감(accepted), 공감(resonant), 활력(energetic)에 주목한다. 이들은 각각 특정한 신경 경로와 연결되어 있다. 스마트 미주신경은 평온함을 조절하는 데 영향을 미치며, 배측 전대상피질이 제대로 기능하면 수용감을 느끼게 되고, 거울 신경계는 공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해 주며, 도파민 보상 체계는 관계를 통해 활력을 만들어낸다.
이 네 가지 경로의 앞 글자를 딴 ‘CARE 솔루션’이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관계에 대한 설문을 통해 어떤 관계가 어떻게 뇌에 영향을 주는지 진단하고 단계별 솔루션을 실행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일상에서 할애하는 시간의 총합을 기준으로 관계의 안전도를 평가하기 때문에 나처럼 인간관계가 빈약한 사람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상담 사례를 통해 이해를 도움과 동시에 맞춤 전략을 구성하기 위한 레퍼런스를 제공한다.
본격적인 솔루션을 실천할 만한 여유는 없었지만 진단까지 직접 진행해 보고 느낀 점은, ‘시원하다’였다. 그동안 어렴풋이 느낀 문제점들을 명확하게, 그것도 과학적으로 짚어주니 가려운 등을 벅벅 긁어주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련된 것뿐 아니라 건강한 삶 전반을 위한 뇌과학적 팁을 마지막 장에서 다양하게 다루기 때문에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누구에게나, 그리고 뇌과학을 활용하여 건강한 삶을 일구고 싶은 사람에게까지 도움이 될 법한 책이다.
저주에서 벗어나 축복을 누리기 위해
다양한 솔루션을 뇌과학적 지식과 곁들여 흡수하다 보니 든든할 뿐 아니라 지적 호기심까지 충족되는 기분이었다. 나처럼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는 내 (몇 안 되는) 친구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보내는 시간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나조차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돌아보면 그 곁엔 ‘사람들’이 있었다.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운명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관계를 통해 강력한 힘을 얻는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으로서 맛볼 수 있는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기엔 짧은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물론 변화를 위해선 그만큼의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 이 책은 관계의 상처로 망설이는 우리의 등을 매우 상냥하게 떠밀며 친절하게 여정을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