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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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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의 모든 것


 

3년 전 처음으로 ADHD를 진단받은 뒤, 이 복잡하고도 파괴적인 장애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내게 ‘ADHD를 둘러싼 거의 모든 질문에 답하는 A to Z 안내서’란 책 소개는 무척 솔깃했다. 총 480p라는 만만치 않은 분량도 기대를 고조시켰다. 다만 마음에 걸렸던 점은 저자가 의학 전문가가 아닌 무려 ‘Gen-Z 기자’라는 점이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꼼꼼히 읽고, 235개에 이르는 참고 문헌 주석을 확인하며 책을 덮은 뒤에는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던 의심을 떨쳐낼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호주의 소셜 미디어 리포터 마틸다 보슬리로, 스물네 살에 ADHD를 진단받은 뒤 ADHD를 제대로 이해하기로 결심하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기자로서의 장점을 살려 1년 동안 수많은 자료를 취재하고 전문가와 주변인들을 인터뷰하며 얻은 지식과 생각을 한 권에 담아냈다. ADHD를 진단받은 사람, 아직 ADHD를 진단받지는 않았지만 의심하는 사람, ADHD 환자를 주변인으로 둔 사람 등 ADHD에 대해 알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유용할 책이다.


책은 총 16장에 걸쳐 말 그대로 ADHD의 모든 것을 다룬다. 1장에서 8장까지의 1부는 ADHD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ADHD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을 소개하고, 9장에서 16장까지의 2부는 ADHD를 가지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방법과 ADHD 약물에 대한 논의, ADHD를 치료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톺아본다.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러한 이야기들은 저자의 유쾌한 경험담과 다채로운 일러스트와 어우러져 머릿속으로 부드럽게 흡수된다. ADHD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사람과 너무 무겁지 않게 ADHD를 알아가고 싶은 사람의 니즈를 모두 만족시킬 듯하다.


마치 ADHD계의 백과사전 같은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사회가 ADHD를 받아들이는 바람직한 방식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이는 전문가나 당사자가 쓴 다른 ADHD 관련 도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다. ADHD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ADHD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중심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현대인의 질병?


 

최근 들어 ‘현대인의 질병’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ADHD. 인터넷에서 ADHD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고 ‘나 ADHD 아냐?’라는 의심에 빠진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저자 역시 틱톡 영상을 통해 자신의 증상을 알아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ADHD 유병률은 무척 높은 편이다.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아동과 청소년의 5.9~7.2%에게 ADHD가 있으며, 성인은 2.8%로 나타난다. 저자는 ADHD가 이토록 흔한 질병임에도 진단과 치료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ADHD란 병은 결코 간단하지 않으며, 진단 역시 까다롭다.


ADHD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충동성 증상 중에서 한 가지 이상이 지속해서 나타나 기능을 저해하고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상태를 뜻한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명과 DSM-5 진단 기준이 이 질병을 제대로 정의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실 ADHD는 주의력이 ‘결핍’된 상태라기보단 잘 ‘조절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또한 단순히 집중을 못 하고 산만한 것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ADHD를 진단받은 순간, 다음과 같이 심정을 털어놓는다.


 
그냥… 평생 나는 왜 남들처럼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지, 왜 나는 맨날 실패만 하는 건지, 그렇게 고민하며 살아왔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이제 알고 나니까 진짜 너무 안심돼서 그래요.
 

 

ADHD를 진단받고 ‘안심했다’는 후기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왜 ADHD 환자들에게는 희소식인 걸까? 그동안의 수많은 실패가 ‘자신의 탓’이 아닌 ‘병의 증상’이라는 발견, 더구나 그것이 ‘치료될 수 있다’는 선언은 축복과도 같다. 그만큼 ADHD는 환자의 삶에 다양한 문제를 초래하며, 어려서부터 늘 지적당한 경험은 환자의 자존감을 망쳐놓기 쉽다. 성인 ADHD는 아동기부터 이어지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ADHD는 뇌의 보상 시스템과 실행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양상은 유형마다 다르고 성별, 나이,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저자는 이러한 ADHD의 다양성을 언급하면서 그동안 과잉행동을 보이는 남자아이들에게만 관심을 쏟아온 의학계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ADHD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며 대화에 불쑥 끼어드는 ‘과잉행동 충동성 우세형(ADHD-H)’, 주의력이 떨어지고 사소한 실수를 쉽게 저지르는 ‘주의력결핍 우세형(ADHD-I)’, 이러한 증상이 모두 나타나는 ‘혼합형(ADHD-C)’이다. 주의력결핍 증상은 과잉행동과 충동성 증상보다 눈에 덜 띄기 때문에 진단이 어렵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과잉행동은 성인기로 접어들면서 내면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 그리고 남자아이는 ADHD 증상을 외부로 표출하는 편인 반면 여자아이는 내면화하는 경향이 크다는 점이다. 결국 성인 여성 ADHD는 오랫동안 치료 기회를 박탈당한 채 방치되기 쉽다.


저자는 여기에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함께 제시한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말이 많고 감정 표현이 과도한 여자아이를 곱게 보지 않는다. 이러한 성 역할이 ADHD를 가진 여자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증상을 억제하도록 유도하여 진단율을 낮춘다는 것이다. 또한 백인 아이들이 문제 행동을 하면 의학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흑인 아이들은 범죄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이 차이는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똑같이 ADHD 환자여도 백인은 치료를 받는 반면, 유색인종은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치료가 빠를수록 ADHD가 삶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줄어든다. 또한 학업적 성공과 경제적 안정,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삶을 누릴 가능성은 커진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으며 그 대가를 여성과 소수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치르고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ADHD가 새롭게 주목받는 시대에 접어든 지금,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회적 격차를 좁히는 데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 ‘새로운 시대’는 애초에 그 시스템이 설계될 때부터 혜택을 받아온 사람들만을 위한 시대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ADHD 약 = 마약? 


 

ADHD는 약물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유독 심한 질병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ADHD 치료제를 마약처럼 빗대며 경고하는 버스 광고를 발견할 수 있다. ADHD 치료제는 암페타민과 메틸페니데이트처럼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 수치를 늘리는 자극제와 아토목세틴과 같이 노르아드레날린에 작용하는 비자극제로 나뉜다. 이중 중독성이 강하고 정신병을 유발한다는 오명이 덧씌워진 것은 자극제다.


그래서 자극제는 효과가 뛰어나 많은 의료기관에서 1차 치료제로 권장함에도 환자와 보호자가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통념과는 달리 자극제는 정해진 용량을 올바른 방법을 복용하기만 하면 금단증상이 거의 없고, 중독성이 없으며, 남용 가능성이 극히 드물다. 자극제는 올바르게 복용할 경우 중독을 유발하기보다는 오히려 중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러나 저자는 ADHD 약물이 ADHD를 완치하지는 못한다고 강조한다. ‘약물이 능력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말처럼, 약물은 우리 스스로 더 나아지기 쉽게 도와주는 수단일 뿐, 하룻밤 사이에 뇌를 마법처럼 바꿔주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특히 자극제의 경우, 진통제처럼 체내에 흡수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전부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복용을 중단하면 원상복구된다. 결국 ADHD 약물을 복용하고 얼마나 달라지느냐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지만,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약물은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ADHD 약은 나에게 불을 켜는 ‘스위치’가 아니라 부담을 덜어주는 ‘할인’ 같은 거다. 약을 먹고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는, 더 이상 주의력과 집중력 ‘잔고’가 바닥난 채로 빠듯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머릿속 ‘은행’에 여유가 있어서,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는 게 아니라 실제로 즐기며 살 수 있다.
 



바다형 뇌



ADHD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단순한 증상을 넘어 한 사람의 생애를 좌우할 뿐 아니라,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충동성으로 인한 빠른 실행력, 확산적 사고로 인한 창의력이 그 예이다. 이러한 양면성은 ADHD를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닌 독특한 정체성으로 간주하는 시각에 일조한다. 여기서 ‘신경다양성’과 ‘신경전형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신경다양성이란 사회 안에서 뇌가 대다수와 다른 방식으로 발달하거나 기능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신경전형성이란 신경발달 또는 기능이 표준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ADHD를 ‘문제’가 아닌 일부 사람들이 타고나는 정신적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신경다양성 운동’은 ADHD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축소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저자 역시 ADHD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ADHD 덕분에 강점을 발휘하게 된 사람으로서 두 진영 모두에 무게를 실으며 균형점을 찾는다. 


나는 ADHD를 안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뇌의 소중한 측면을 이야기하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틀림없이, ADHD가 내 삶에 입힌 상처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놀라운 점을 안겨준 내 뇌를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바다형 뇌’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신경전형인에게 뭔가를 해내는 건 육지를 걷는 일과 비슷하다. 태어나면서부터 걷는 법을 배웠고, 대부분의 시간을 똑바로 갈 수 있으며, 장애물이 있긴 하지만 대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 그러나 ADHD와 같은 신경다양인에게 무언가를 해내는 건 작은 배를 타고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는 일에 가깝다. 항해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바람과 파도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어떤 날은 바람이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게 해주지만 어떤 날은 물살이 너무 사나운 탓에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항해법을 배우고 나면 배를 조금씩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이처럼 바다형 뇌를 가진 이들을 위한 항해 안내서인 셈이다.


 


한국, ADHD 치료의 불모지


 

저자는 ADHD가 세계에서 가장 흔한 신경발달장애임에도 ADHD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은 형편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 책의 목표는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라 말한다. 한국에서 ADHD로 치료받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0.04%에 불과하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ADHD의 유병률을 떠올리면 이는 터무니없는 수치다. 호주 사람인 저자가 한국을 콕 집어 언급할 정도니 말 다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나는 한국이야말로 ADHD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장시간 집중을 요구하는 교육 시스템, 치열한 경쟁과 획일화된 생애주기, 빠른 성과를 중시하는 사회 구조 등 한국의 환경은 많은 면에서 ADHD에게 불리하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ADHD를 가진 학생들을 배려하여 별도 고사실을 마련하고 시험 시간을 연장해 준다고 한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듣는 것조차 힘든 ADHD 환자들을 일반인과 같은 출발선에 두고 학벌을 따진다는 건 굶어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나는 ADHD를 진단받은 뒤에야 내가 영화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단지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약물을 복용하면서 예전보다 다양한 장면을 포착하게 되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트인사이트의 기자가 되었다. ADHD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둬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역시 저자와 비슷하다. ADHD는 점점 더 알려지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알려져야 할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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