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안녕, 내가 애증하던 도시 런던 [여행]

영국 생활 그 마지막 이야기

by 윤재현 에디터
2026.02.16 22:57

 

 

20살. 나의 첫 혼자 타는 비행기, 첫 유럽 국가 방문, 첫 자취 생활은 영국 런던에서 시작되었다. 학교는 런던에서 약 2~3시간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미리 영국 생활에 적응하고 싶어 3주 정도 일찍 영국에 도착했다. 런던의 문화생활을 마음껏 즐길 생각에 셀렘과 떨림으로 가득했다. 특히 내가 좋아하던 영화 <해리포터>와 드라마 <셜록>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IMG_3840.JPG

 

 

그러나 그 설렘은 얼마 안 가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바뀌었다. 영국 도착 첫날, 나는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했다. 다다음 날에는 버스에서 영국인 남성 두명이 심하게 다투는 바람에 결국 경찰과 구급차까지 충동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얼마지나지 않아서는 길을 걷다가 "니하오! 칭, 챙, 총."이라는 인종차별적 말을 듣기도 했다.

 

 

IMG_3842.JPG

 

 

이러한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서 한동안은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관광을 이어갔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된 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고전적인 건축물은 나에게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었다. 사실 처음 며칠간은 네셔널 갤러리와 대영박물관에서 교과서로만 보던 소장품들을 직접 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이 밖에도 테이트 모던, 뮤지컬 <라이온 킹>, 빅벤, 버킹엄 궁전을 보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개강이 다가와 있었다.

 

 

IMG_3843.JPG

 

 

두 번째 런던 방문은 겨울방학 때였다. 처음 유학원에서 학교를 소개받았을 때는 런던에서 2시간 30분 거리라는 말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막상 학기가 시작되니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방학이 되어서야 다시 방물할 수 있었다. 겨울의 런던은 해가 쨍쨍하고 오후 9시가 넘도록 밝던 여름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크리스마스와 연휴 시즌을 맞아서 인지 여름보다 영국인과 전세계 관광객들로 더욱 붐볐다.

 

오후 4시면 어두워지고, 비가 자주 내리는 영국의 겨울 날씨 속에서 반짝이는 조명과 크리스마스 트리는 겨울 런던의 감성을 잘 느끼게 해주었다. 겨울에만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하이드 파크의 윈터 원더랜드는 내가 영국 겨울을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나게 해주었다.

 

 

c521bd65466aeec32c61da4e19a58a6941e6562c.JPG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나는 2년간 휴학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그렇게 자주 오가던 영국과 런던, 그리고 맛없다고 느낀 영국 음식까지도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만 24세 이하 학생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문화 할인 혜택과 무료 전시들은 더욱 그립게 느껴졌다.

 

 

IMG_3844.JPG

 

 

팬더믹이 끝난 뒤, 나는 다시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동안 누리지 못한 문화생활을 보상받고 싶었던 걸까, 시간이 날 때마다 런던을 찾았다. 방학 때는 2주씩 머무르는 것이 기본이었고, 닥치는 대로 공연과 전시를 보러 다녔다.

 

한 번은 왕복 6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친구와 당일치기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러 간 적도 있다.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발레 공연을 보기 위해 왕복 4시간 기차를 타고 또다시 런던을 찾았다.

 

 

IMG_3847.JPG

 

 

그 결과, 팬더믹 이후 지금까지 런던에서 본 공연만 10편이 넘고, 사설 전시는 3회 이상, 방문한 미술관은 15곳이 넘는다. 즉, 웨스트 엔드에서 공연한 유명 뮤지컬 대부분을 관람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작품은 뮤지컬 <백 투 더 퓨처>와 연극 <마우스트랩 (한국명: 쥐덫)>이다. 뮤지컬 <백 투 더 퓨처>는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 만큼의 작품성이나 인지도는 아니지만, 전용 극장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연출로 인해 영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었다. 연극 <마우스트랩>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공연된 연극으로, 공연장과 작품 자페가 약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공연을 다 본 후에는 역사의 한 장면을 체험한 듯한 매우 이색적인 경험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약 4년의 영국 생활 끝에 졸업 학년이 되었다. 졸업식을 앞두고 부모님과 가족들이 나를 위해 런던에 방문했다. 그때 깨달았다. 무료 명소는 대부분 가봤지만, 정작 유료 유명 명소인 더 샤드 전망대,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 폴 대성당, 런던 아이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IMG_3845.JPG

 

 

"4년이나 살았는데, 짧게 방문한 관광객보다 안 가본 곳이 많다니." 스스로도 웃음이 났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런던 패스를 구매해 가족들과 관광을 했다. 비싼 런던 패스 가격을 고려해 하루에 3~4곳씩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알고 있는 비밀 명소들이 더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예를 들어, 더 샤드 전망대나 타워브릿지 전망대보다 무료인 스카이 가든이나 Horizon 22에서 보는 런던의 풍경이 나에게 더 황홀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 명소들은 영국과 런던에서의 마지막을 실감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들이었다.

 

그렇게 26살, 힘들었던 나의 4년간의 영국 유학 생활이 막이 내렸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