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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흑과 백 사이의 새로움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영화]

인종주의와 캐릭터가 가진 구조적 의미

by 박정빈 에디터
2026.02.15 16:28

 

 

최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영화는 매그놀리아, 펀츠 드링크 러브, 리코리쉬 피자 등을 만든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중 최대 제작비가 투여된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스릴감과 긴장감을 손에 쥔 채 관객들의 마음을 쥐었다 편다.

      

<원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납치된 딸을 구하는 아버지’라는 잘 포장된 소재를 사용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우나 특히 ‘이민’, ‘백인우월주의’, 그리고 ‘반이민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은 영화가 그리고자 한 혁명의 양상을 잘 설명해준다. 관람객들은 주제와 개봉 시기 등을 따져보았을 때 미국의 현 정부와 사회를 고려한 것이 아니냐고 묻지만, 감독 토마스 앤더슨은 이미 그 전에 이미 제작을 마쳤다며 주장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팽팽한 양극화가 이어져 오던 주제였던 만큼, 모두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사실이다. 이민자를 대표해 혁명 단체에서 활동하는 ‘밥(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욕망으로만 사는 반 이민수용소장 ‘록조(숀 펜)’는 영화 속 명백한 대비로 이어진다. 또 밥과 같은 혁명 단원 ‘퍼피디아(테야나 테일러)’. 그녀는 ‘배신’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록조의 아이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잉태했고, 결국 또 다른 혁명을 위해 혁명단(밥과 윌라)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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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캐릭터들을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각자 가진 의미들이 상충해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가장 먼저 밥과 록조 모두 백인 남성이다. 밥은 급진 개혁파지만, 록조는 백인우월주의자, 반 개혁파다. 가장 먼저 밥은 학명 단체에서 폭탄 전문가로 활동하며 폭파 임무를 담당하는 인물로, 마약과 술에 찌든 모습으로 나온다. 이후 퍼피디아가 조직을 배신하자 위장 신분으로 윌라와 은둔 생활을 이어가고, 의붓아버지로서 본분을 다한다. 특히 윌라가 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칭찬을 받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가정에 충실해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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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윌라의 진짜 아버지인 록조는 정반대의 캐릭터다. 그는 ‘자신의 욕망과 세속적 갈망을 채우기 급급한 인물’로서 그려지는데, 초반부에서 퍼피디아를 보고 발기된 성기를 비추는 장면으로부터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딸 윌라는 한때 자신이 쟁취해야만 했던 욕망 중 일부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혁명 단체를 처치해야만 자신의 권력적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또 다른 욕망을 위해 제거해야만 하는 존재가 됐다.

 

록조라는 캐릭터 자체에도 내면적 모순이 있다. 친자 확인을 위해 성당에 윌라와 함께 있는 장면을 그 예시로 들어보자. 가장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성당의 의미다. 생명의 축복과 성스러움을 소망하는 장소인데, 이곳에서의 두 사람이 만나 미묘한 신경전을 이어간다. 숨 막히는 윌라의 친자 결과가 마침내 록조의 딸인 것으로 나타나자, 두 사람은 서로 몸싸움을 이어가고 추격전을 벌인다. 밥과 다른 아빠와 딸의 양상, 혹은 영화의 주제인 혼혈인과 백인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일러주는 듯도 싶다.

 

무엇보다도 록조의 무능함은, 반항하는 윌라를 잘 제압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아무리 윌라가 닌자 아카데미에서 수련받았다고 한들, 아버지 나이의 성인 남성 록조가 언어적·비언어적 그 어떤 방법으로도 딸을 제지하지 못한다니. 도망치는 윌라를 잡고 놓치고를 반복하는 장면이 이토록 유치해 보였던 적이 없었다. 이런 록조의 모습은 사실, 그의 위치가 허술하고 무능력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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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윌라는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양립성을 띠고 있다. 영화는 결국 윌라가 새로운 투쟁을 위해 오클랜드 시위장으로 떠나며 마무리된다. 양측의 모습을 고루 닮은 새로운 세대에게 세상을 헤쳐가라며 주어진 과제는 얼마나 무거운가. 그런 윌라의 뒷모습을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앵글로 묵묵히 담아내고 있다. 누구보다 불안하지만 뚜렷한 길을 나섰던 것을 기억하며, 특정되지 않은 답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전쟁은 영화의 제목처럼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긴장감을 쉽게 놓지 못했던 후반부의 구불거리는 도로 위 추격전처럼 말이다. 다만, 윌라가 흑과 백 가운데 하나가 아닌, 또 다른 색을 찾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까지 손에 땀을 쥐고 울렁이는 도로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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