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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구석에서 재발견된 것들 - 나의 사적인 예술가 [영화]

저마다 필요로 했던 이야기를 걷어내면 남는 것들

by 황지윤 에디터
2026.09.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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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적인 예술가'의 주인공, 에드 색스버거는 뉴욕의 한 우체국에서 편지를 분류하며 살아간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반복되고, 저녁이면 오래된 친구들과 당구장에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의 소소한 행복일 뿐이다.

       

      1979년, 그는 'Way Past Go'라는 시집을 낸 적이 있다. 그러나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절판되었고, 그는 이후 시를 놓았다. 색스버거는 그렇게 스스로도 잊고 지내던 과거의 한 조각을 품은 채,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어느 날 마이어스라는 젊은 시인이 나타난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Way Past Go'를 발견해서 읽게 되었다는 그는, 색스버거의 문 앞까지 찾아와 자신을 소개한다.

       

      반가워하면서도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맞이한 색스버거는, 마이어스의 손에 이끌려 다운타운의 한 모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예술에 관한 애정 하나만으로 모인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에서, 색스버거는 자신을 오랫동안 저평가된 천재로 떠받드는 환대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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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모임의 신비로운 중심인물인 배우 글로리아를 처음 만난다. 색스버거는 처음엔 이들의 언어를 낯설어한다. 시, 희곡, 수필 등 여러 예술을 두고 오가는 대화는 그에게 어딘가 과장되고 현학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는 이 고까운 세계에 결국 붙들리고 만다. 누군가 자신의 글을 진지하게 읽어준다는 감각, 수십 년간 잊고 지냈던 그 감각이 다시 스며들 듯 색스버거의 마음에 피어난다.

       

      그것이 설령 거품에 불과할지라도, 작품에 대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꿈을 접었던 그에게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것이었다. 모임에서 만난 글로리아를 향한 그의 끌림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녀에게 끌리는 마음은 이성적인 설렘이기 이전에, 자신이 다시 누군가의 시선 안에 예술가로서 놓이고 싶다는 갈증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색스버거가 진짜로 그리워했던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세계로부터 완전히 잊히지는 않았다는 확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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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영화 후반부 낭독회를 둘러싼 소동이 카페에서 벌어지던 순간, 카메라는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한 남자를 슬쩍 비춘다. T.S. 엘리엇상을 수상한 실제 시인 피터 기치다. 사실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이 남자에게 영화 전체를 헌정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보면서도 관객조차 알아보지 못한 사이 지나가는 이 짧은 순간은, 뒤늦게 재발견된 색스버거를 둘러싼 소동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색스버거가 낸 시집의 제목, 'Way Past Go'는 이미 출발점을 한참 지나쳤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시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묻혀 있던 이 제목은, 수십 년이 지나 뒤늦게 재발견되며 무게를 얻는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색스버거의 시 그 자체라기 보다도,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줄 상징이었던 것이다.

       

      낭독회가 다가올수록 이 사실은 점점 선명해진다. 아무도 그의 시집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것, 그들의 열광은 작품이 아니라 서사를 향해 있었다는 것. 색스버거를 감싸던 찬사들은 그래서 어딘가 현학적이고, 어딘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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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리아 역시 이 열기의 한가운데 있지만, 그녀의 신비로움 또한 결국 모임이 필요로 했던 또 하나의 상에 가깝다. 마냥 자유롭고 신비로워만 보이는 그녀 역시, 그 이미지 뒤에 경제적 불안과 갈증을 숨기고 있다. 신비로움은 그녀가 선택한 것이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걸쳐야 했던 또 하나의 배역은 아니었을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였다는 열의의 사회에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색스버거의 시도, 글로리아라는 사람도 아닌 그들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 뿐이었다. 낭독회가 끝나고 글로리아는 미니애폴리스의 연극 무대를 수락하며 이 도시를 떠나고, 색스버거는 다시 당구장으로 돌아간다. 뒤늦게 도착했던 명성은 그렇게 조용히 흩어지고, 두 사람은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영화의 원제인 'Late Fame'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늦게 도착한 명성. 그 말은 희망적으로도, 씁쓸하게도 읽힌다. 색스버거가 얻은 것은 과연 명성이었을까, 아니면 잠시 빌려 입은 이야기 속 배역이었을까.

       

      모임의 청년들이 그에게 원했던 것도, 글로리아가 스스로에게 씌운 신비로움도 결국 같은 종류의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걸 벗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각자가 원래부터 살아오던 삶의 온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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