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성의 어느 카페, 작가 지망생이었던 세훈은 낯익은 이름들을 듣는다. 천재 작가 김해진과 그의 비밀스러운 연인 히카루. 이제는 고인이 된 두 사람이 쓴 글을 엮은 유고집이 출간된다는 소문이다. 책의 출간과 동시에 히카루의 정체 또한 밝힌다는 말에 세훈은 ‘해진이 히카루에게 쓴 마지막 편지’를 가진 이윤을 찾아 그가 수감된 교도소로 향한다. 이윤은 세훈이 숨긴 것들을 다 말하기 전까지 편지를 보여 줄 수 없다 말한다. 세훈은 그 마지막 편지를 얻기 위해 히카루의 탄생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향 조선의 집에서도, 일본 유학 생활에서도 세훈은 안심하고 정 붙일 곳이 없는 소년이다. 모친의 이른 죽음에 기댈 곳은 아버지 뿐이지만 그는 아들의 섬세함과 외로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돈과 첩에게만 신경 쓴다. 문학에 재능을 타고난 세훈이지만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조선어로 읽고 쓰는 일은 갈수록 위험하고 불온하여 단속해야하는 행위로 여겨진다. 엄마가 읽어주던 책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쓸쓸한 집구석에서 히카루는 세훈의 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말벗이다. 그리고 주변에 자신이 드러나지 않은 채 안전하게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필명’이다. 그렇다, 히카루는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세훈이 만들어 낸 하나의 페르소나다. 세훈은 여성형인 히카루에게 매력과 적극성을 부여한다. 또한 자신이 아직 인지하지 못한 성향 또한 히카루를 통해 유보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해진은 히카루의 이름으로 해진에게 팬레터를 보낸다. 해진은 자신의 슬픔을 알아보는 히카루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세훈이 실제로 해진을 만나는 것은 자신이 급사로 들어간 문학 단체 ‘7인회’의 작업실에서다. 7인회는 이윤을 비롯해 조선어로 글을 쓰며 순수예술을 이어가고자 하는 모더니스트 작가와 평론가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다. 해진은 결원이 생긴 7인회에 뒤늦게 합류한다. 선배 문학가 해진의 옆에서 세훈이 부르는 넘버에는 단순히 존경이라 하기에는 꿈결 같고 설레는 감정이 함께 흘러나온다.
같은 시기에 해진은 편지의 발신인 히카루와 만나 맺어지기를 꿈꾼다. 일본어로 ‘빛나다’라는 뜻인 히카루는 중성적인 이름이지만 해진은 히카루를 여자로 여긴다. 오랫동안 외롭고 병약했던 해진은 마음이 통하는 반려를 바라왔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바람대로 믿은 것이다. 이런 오해 앞에서 세훈은 쉽사리 히카루가 사실 남자인 자신이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첫째로 행복해 보이는 해진을 실망시키기 싫었던 까닭이고, 둘째로 세훈에게도 변명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히카루고, 히카루가 곧 나잖아. 내가 히카루인 채로 쓰는 글은 히카루의 글이 아닌가? 애초에, 이 글에 담겨 있는 '해진을 이해하고 위하는 마음'은 더없이 진심이 아닌가?
고백의 기회는 몇 번 찾아오나 세훈과 히카루는 거울을 보듯 같은 동작을 하며 춤을 추고, 손을 맞댄 채 빙빙 돌면서 두 정체성의 선후와 비중을 섞으며 합리화의 과정을 거친다.
세훈이 히카루에게, ‘넌 거짓말 아냐.’
히카루가 세훈에게, ‘난 거짓말 아냐.’
빙빙 돌고 돌다 결국 히카루가 된 세훈이 말한다. ‘난 거짓말 아냐.’
이런 합리화가 가능했던 데에는 숨은 세 번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세훈 자신도 깨닫지 못한 마음은 이 상황을 이용하려 한다. 해진의 오해 위에서 세훈은 히카루로서 해진과 예술 속에서 불후의 연인이 되기를 꿈꾼다. 히카루는 예술을 통해 후대 사람들의 마음 안에 영원한 연인이 된 두 실존 인물의 이름을 외친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우린 그들이 되는 거야!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이야기를 아는 관객이라면 이때부터 비극적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중세 유럽, 39살의 박식한 신부 아벨라르는 당대 가장 학식이 높은 여자로 알려진 17살의 엘로이즈에게 스승이 되겠다며 다가갔다. 둘은 결국 연인이 되었고 비밀리에 아들을 낳고 결혼도 했으나 엘로이즈의 삼촌 풀베르에게 이 사실이 발각되었다. 아벨라르는 삼촌에게 괴롭힘 당하는 엘로이즈를 수녀원으로 피신시켰다. 풀베르는 이를 두고 아벨라르가 엘로이즈를 농락하다 버린 것이라 오해했다. 아벨라르가 자기 가문을 욕보인 것이라 여긴 풀베르는 사람을 시켜 아벨라르를 거세했고, 이 사건 후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각각 수도승과 수녀의 길을 걸었다. 두 사람을 불후의 연인으로 만들어 준 서간집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별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것이다. 그러니까 극중 이 두 인물의 이름이 거론된 것은, 적어도 해진의 신변에 큰 위험이 생길 수 있음을 암시한다.
7인회 멤버를 비롯해 문인들이 천재 작가의 연인이자 베일에 싸인 히카루를 궁금해하기 시작하자 세훈은 압박감을 느낀다. 편지가 거듭될수록 세훈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이 강해진 히카루는 앞장서서 해진을 고립시킨다. 7인회가 불온 단체라는 투서를 넣고, 해진이 7인회에서 나오도록 유도한다. 고립된 해진에게 계속 편지로 둘만의 소설 집필에만 몰두하게 만든다. 히카루의 편지로 죽음의 공포를 걷어내고 글을 쓰던 해진은 이제 히카루를 잃을 수 없다는 일념 아래 병원에도 가지 않고 자기 생명을 불태워가며 글을 쓴다.
세훈은 히카루에게 그만하자 말하지만 히카루는 세훈이 회피하는 진실을 꼬집는다. '다 네가 바란 거잖아.' 사실이다. 히카루라는 페르소나가 세훈을 움직였다한들 여러 통의 편지를 쓰고, 부치고, 7인회 멤버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투서를 넣고, 해진과 단둘이 있을 작업실을 계약한 손은 해진의 손이 아니던가? 히카루와 세훈은 하나의 자아가 일정 시간 몸을 장악하여 다른 자아의 영향력을 차단해 둔 상태가 아니다. 글쓰기로 해진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세훈이 허락한 히카루의 존재감이 점점 커졌을 뿐이다. 더 냉정히 말하면 세훈이 목적한 바를 위해 히카루의 이름에 점점 더 의탁한 것이다. 그래도 세훈이 마지막까지 악독한 사람은 아니다. 결국에는 해진을 죽게 둘 수 없다는 마음이 이긴다. 그러나 고백의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어렴풋이 진실을 짐작하고 있던 해진이지만 그의 건강 악화와 히카루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돌이킬 수가 없는 상태다.
해진에게 거부 당한 세훈은 문인들의 세계를 떠나 아무런 글도 쓰지 않는다. 해진의 부고를 듣고도 차마 그의 장례식에 갈 수 없었을 테다. 그러다 이윤이 짐작한대로 이윤이 낸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온 것이다. 여전히 장난기를 잃지 않았지만 감옥 안에서 해진과 같은 지병으로 죽어가는 이윤은 가만히 세훈의 얘기를 듣는다. 이미 사실을 다 알고 있던 그이지만 해진의 진짜 마지막 편지를 세훈에게 줄 것인지 정하기 위해서는 세훈의 현재 모습을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모르지, 해진이 형이 너 때문에 며칠 더 빨리 죽었는지도, 너 때문에 며칠 더 살았는지도.’ 이윤은 세훈에게 7인회로 돌아가 계속 글을 쓰라며, 세훈이 돌아갈 곳을 준다. 그가 7인회에 대한 세훈의 죄과를 덮어주는 데에는 (목숨을 잃은 해진보다는 아니어도) 세훈 역시 괴로워했다는 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하게는 이윤이 해진의 마지막 편지 내용을 알기 때문이다. 그가 누구이건 자신은 편지를 쓴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진의 진심이자 결정이 거기 들어있다. 그간의 괴로움과 혼란, 행복을 다 끌어안고 간 해진의 마음을 이윤은 차마 저버릴 수 없는 게다.
뮤지컬 <팬레터>는 여러 성격의 관계성과 그 안의 영향력 문제를 다층적으로 다루는 작품이다. 대개 좋아하는 사람(팬)이 애정을 받는 사람보다 을이고, 능력의 주인(작가 본인)이 다른 페르소나를 거느린 절대적인 갑이라고 여겨지지만 <팬레터>에서는 그 통념들이 무너지고 관계 내에서의 영향력은 전도된다. 우선 <팬레터>에는 작가와 글쓰기 자아의 주도권 싸움이 보인다. 글쓰는 사람들은 경험한다. 글을 쓸 때의 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완전히 동일인은 아니라는 것을. 글 쓸 때의 나는 ‘나라는 사람’의 일부이지만 중요한 순간 ‘나’ 전체를 덮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해진다. 한 가지 감정이나 주제에 몰두해 그것의 최대한 많은 면을 탐색하는 ‘나’와 사람들에게 닿을 표현을 고르는 ‘나’가 글 안팎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펜을 밀고 당긴다. 때때로 그것은 주도권 싸움이고 상황이 아름다울 때 그것은 하나의 춤이다. 팽창한 모든 것을 쏟고 백지로 돌아가고픈 욕망이다. 과연 세훈과 히카루는 어떨까? ‘유일한 독자가 계속 오해하게 만들어 그를 내 뜻 아래 두는 것’에 목적을 둔 그들의 춤은 파국을 불렀다. 세훈은 결국 히카루를 죽여야 팬레터 쓰기를 멈출 수 있었다. 쓰기 자체가 목적이 아니게 됨에 따라 작가 세훈의 글쓰기 능력은 점차 글쓰기 자아인 히카루의 아래로 귀속되었다.
팬과 그 팬의 애정을 받는 대상의 관계성 또한 이 뮤지컬을 만들어나가는 주요 요소다. 이따금 어떤 팬들은 애정의 대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길 바란다. 그것이 심하면 선을 넘는 집착이 된다. 해진처럼 단 한 명의 특별한 팬과 장기적으로 일대일 소통을 한다면 그 팬의 영향력은 얼마나 지대하겠는가. 세훈이 첫 팬레터에서 해진이 문학 멘토로서 자신에게 내려주길 바라던 지시는 어느 순간부터 히카루의 팬레터로 자신이 해진에게 내리고 있었다.
나아가 해진에게 히카루는 한 명의 팬을 지나 뮤즈가 되었다. 우리는 가끔 예술가와 예술가가 깊게 교제할 때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예술 세계와 창작 능력을 빨아들이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한 명의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연인 같은 뮤즈일 때, 영감과 창작의 힘은 과연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가? 두 성향의 조합 차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팬레터>에서 해진은 뮤즈에 의해 글쓰는 손을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해진이 죽어가면서도 히카루가 글을 쓰게 만들어준다며 히카루의 영향력을 끊어내지 않는 데에서는 ‘이야기의 마력’이라는 소재가 떠올랐다. 한 번 열면 덮을 수 없는 책, 듣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는 이야기는 얼마나 매혹적인가? 바로 그런 이야기가 내 손끝에서 뻗어나올 때 작업을 멈출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그것이 작가의 생명을 갉아먹는다해도 말이다. 아마 뮤즈의 지시를 받으며 글을 받아적는 작가들은 이렇게 생각하며 꺼지는 불꽃을 외면할 테다. 언제는 내 글 한 편에 생명력을 들이붓지 않았던가?
이런 관계들이 형성된 배경에는 <팬레터> 주인공만의 특수한 심리 상태가 있었다. 처음으로 강렬하게 존경하는 문학가와 인지 못하고 있던 첫사랑 상대가 하필 해진이라는 단 한 명의 사람 위로 중첩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크게 바뀌지 않았을까. 멘토와 첫사랑이 각기 다른 사람이어서 그들 곁에서 여러 감정의 일대기를 겪고 시간을 소화했다면, 아직 어려서 자기 자신을 잘 몰랐던 세훈이 주변을 그토록 쑥대밭으로 만들진 않았을 텐데. 인생 경험이 부족해 자신이 얼마나 배고픈지도, 얼마나 끌어당기는 힘이 센지도 미처 몰랐던 사람과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외롭고 겁에 질렸지만 본성은 순하고 선한 사람이 만나버렸다. 이처럼 절묘한 인물 설정 때문에 <팬레터> 안의 많은 것들이 뒤섞이며 불안과 위험을 자아낸다. 관객은 진이 빠지면서도 그 불안에서 풍겨나오는 매력에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팬레터>에는 매혹하는 요소(글쓰기, 이야기, 생각지 못한 누군가가 보내는 커다란 애정, 내가 가지고 있는지 몰랐던 영향력의 행사)가 깔려 있으며, 그 요소에 미혹된 사람들이 나온다. 세훈의 행동에 이입이 안 되어 극에 깊은 몰입이 안 되다가 불안한 매력이 가득한 <글자 그대로> 넘버에서부터 관심을 빼앗긴 필자 같은 관객 또한 극의 분위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 그 미혹에 참여한다. <팬레터>는 여러 층위의 주제를 하나의 스토리라인에 잘 녹여낸 작품이며 위험에 매혹된 사람이 느끼는 ‘절망적일 정도의 혼란스러움’을 잘 구현해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하는 데서 오는 무거운 괴로움에 허덕이다 막이 내려가면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뮤지컬이 끝난 직후 “재밌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같이 관극한 지인과 인물들의 심리, 작품이 의도한 바에 대해 길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분명 흥미롭고 짜릿한 공연이었다. 다만 관극 다음날 기상하며 느낀 한 가지 개운하지 않은 마음이 있어 주인공 세훈에게 짧은 편지를 적는 것으로 이 후기를 마칠까 한다.
세훈 전.
안녕, 세훈아. 아마 이 개운하지 않은 마음은 네가 해진 선생님을 독점하기 위해 7인회가 불온 단체라고 투서를 넣었던 네 행동에서 오는 것 같다. 7인회 멤버들의 작품 속 단어 하나라도 그 당시 일본인들 눈에 ‘위협적인’ 단어로 보였다면 그들은 정말 입에 담기도 어려운 고초를 겪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이윤이 불령선인으로 잡혀간 데에, 투서가 들어온 '불온 단체'에 참여 중인 조선인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뒤늦게 들더라.
사실 네가 펜을 다시 잡은 건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해. 너는 해진이 몸담았던 글의 세상에서 멀어져 해진에게 한 일들을 영영 잊어서도 안 되고, 글쓰기의 고뇌로부터 멀어져도 안 되는 사람이야. 7인회에 돌아간 것도, 직접 일을 겪은 해진과 이윤이 널 감싸고 용서한 이상 누구의 허락이 더 필요하겠어.(물론 엄밀히 따지면 네가 투서를 넣은 줄 모르는 다른 멤버들의 허락이 필요하긴 하지.)
다만 세훈아, 그 두 사람이 네가 있을 곳을 만들어 준 이상 앞으로는 7인회를 지키기 위해 네 모든 것을 다하길 바라. 그것이 정말 어렵고 위험한 일이 되는 때가 오더라도 말이지. 해진의 유고집을 네가 감수해 출간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고, 해진의 마지막 숨결이 담긴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해. 돌아온 히카루와 함께 이번에는 결국 밝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춤을 추길 바랄게. 글 안팎에서 인생의 즐거움도 슬픔도 느끼고 방황도 하고 땅굴도 파다가 결국은 네 양심에 걸릴 것 없는 글을 빚어내는 그런 방향으로 말야. 삶을 누리면서 네가 모은 빛을 글에 적절히 안배하며 사람을 덥혀주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길 바라. 너는 아직 젊고 네 곁에는 좋은 이들이 많더라.
그럼 안녕,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