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아도 도구는 장인 탓을 한다. 진주 목걸이가 귀하다 한들 돼지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잘 정비 된 비행기가 베테랑 파일럿을 만나면 완벽한 비행으로 하늘을 날겠지만 나에게 찾아온다면 세금과 처분 문제로 범벅이 된 고철일 뿐이다. 얼마나 좋은 도구인지를 따지기 전에 용도와 목적, 활용 능력을 먼저 따져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 때문에 AI 만능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시대라 이 간단한 명제가 더 와닿는다.
["그렇게 나는 점점 '생각하는 방식'을 다듬는 일을 디자인의 본질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감정과 직관으로 시작했던 질문들이 어느새 사고의 구조와 논리의 언어로 옮겨가고 있었고, 사업적으로 나온 수치를 디자인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은 더 이상 감각 혹은 논리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 뒤에 숨어 있는 원리와 맥락,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까지 함께 설계하는 일로 확장된 것이죠. 그 과정에서 좋은 디자인은 결국 '다양한 각도와 관점에서의 사유의 결과'이며, 생각의 질감과 치열함이 곧 결과물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32쪽
무형의 디자인도 있다. 브랜딩과 스토리텔링이 그렇다. 두 가지 다 형태만 없을 뿐, 가치와 메시지의 전달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이렇듯 좁은 개념에 사로잡히면 큰 맥락을 놓친다. 일이라는 게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 해결 방안을 찾는 과정을 그려가는 일종의 디자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헛돌았던 내가 그랬다.
용도와 목적은 내던지고 어떤 게 좋은 도구인지만 온종일 찾아다니던 지난날이 그 결과였다.
나는 AI를 꽤 많이 쓴다. 상당히 능숙하게 쓰는 편이다. 그만큼 한계를 명확하게 마주한다.
전문가들은 AI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질문을 잘할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질문이란 문제의 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이다. 돌고 돌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AI는 질문의 답은 사람보다 잘 찾아내지만, 문제점을 찾지는 못한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 분야는 아직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AI가 퍼 올려주는 정보의 강물에서 빛나는 조각을 건져내려면 사고의 밀도를 지켜야 합니다.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잠시 멈춰 구조를 만들고, 본질을 추려내는 힘이 필요합니다. 도구는 계속 발전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사고 체계입니다. '관찰-구조화-메타인지-리뷰'라는 회로를 통해 우리는 판을 읽는 힘을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습니다. 도메인 지식은 빠르게 사라지고, 전문성은 천천히 쌓이며, 판은 끊임없이 바뀝니다. 결국 끝까지 남는 무기는 추상화와 구조화라는 사고 도구입니다. 그것이야말로 AI 시대를 견뎌내고, 여전히 '사람이 일의 본질을 설계하는 주체'로 남게 하는 무기입니다."] - 138쪽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어설픈 디자이너로는 안된다. 창의적인, 참신한 디자이너도 아니다. 본질을 꿰뚫고, 명확하고 구체적인 서술이 가능한, 문제를 파악하고 질문할 줄 아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브랜딩하는 디렉터이자 인생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다. 그저, 어떻게해야 할지를 잘 모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