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잠시 꿈꿨던 디자이너라는 직업, 그러고서 디자인과는 관련 없는 길을 간지 7년이 넘게 흘렀다. 이번 기회에 받아 들게 된 “일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저서는 그런 과거를 잠시 떠올릴 계기가 되었다. 다만, 첫인상과는 다르게 단순히 감상적인 과거 회상에 그칠 내용은 아니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는 디자인보다는 “일”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이다. 미래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취준생 신분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사람, 다른 “일”을 고민하는 사람. 심지어는 일상적인 활동조차도 일종의 “일”이라고 볼 수 있으니, “일”과 분리될 수 없는 모두를 위한 도서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작업보다 앞선 사고(Thinking)
목차는 모든 작업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생각과 일의 핵심 요소를 뽑아서 챕터별로 소개하고 있다. 구분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는 생각의 구조, 일의 구조, 생각의 도구, 일의 태도, 일의 본질로 나뉜다. 여기서 일과 생각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분야라 점검해볼 만한 계기가 없으면 자의적으로 빠지기도 쉽다. 예를 들어 토마토 파스타를 만드는 방법을 말하는 것은 쉽겠지만, 식사를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방법과 어떻게 해야 좋은 요리가 되는지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작업하는 방법을 알더라도 더 근본적으로 생각과 일을 설계하는 데에 오류가 생긴다면 결과물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책에서 소개하는 일과 생각의 구조와 본질, 나아가 설계하는 방법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디자인의 목적, 일의 목적
개인적으로 애호하는 디자인은 DHL과 펭귄북스이다. DHL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키치한 색 조합이라서, 그리고 펭귄북스는 펭귄이 귀엽고, 문학전집의 깔끔한 폼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유를 덧붙였지만, 좋은 디자인이라면 직관적으로 눈에 띄어야 하고, 브랜드명을 들으면 곧장 이미지가 떠올라야 한다는 보편적 원리에도 잘 부합한다. 분야는 약간 다르지만, 저자는 UX 디자이너로 활동했기에 사용자, 즉 대중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목적이 등장한다. 그 뿐만 아니라 일이라면 그 목적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어떻게 해야 충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하고, 받아들일 것은 빠르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을 위해서 버려야 할 것들
앞선 내용과 관련하여 세 번째 챕터 “생각의 도구를 설계하다”라는 대목은 ’런(Learn)’보다 ‘언런(Unlearn)’이 어렵다는 교육학의 관점을 언급한다. 개인적 경험을 떠올려보더라도 사실 채우고 습득하는 것은 쉽다. 그래서 나도 학창시절에 인강 듣는 시간을 좋아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재밌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그 과정에는 고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습관을 버리는 ‘언런’의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려놓을 것은 기꺼이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것을 ‘초기화’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이는 ‘비우고-배우고-전환하고-내재화’라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 '언런'을 습득한 이후에 새로운 챕터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AI가 제공하는 “넓이”와 따라잡을 수 없는 인간의 “깊이”
표지를 보면 제목 밑에 “일의 본질을 다시 설계하는 AI 시대의 생각 훈련”이라는 소개 글이 적혀 있다. AI가 일상이 된 와중에 인류에게 양가적인 가능성이 찾아왔다. 정말로 잘 활용해서 AI를 도구로 더 발전적인 사람이 되거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잊고 AI의 노예가 되거나. 저자 또한 이 염려를 소재로 한 챕터를 할애해서 다루고 있다. “AI가 채워주는 건 넓이일 뿐, 깊이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대목이 와닿는데, 일의 영역에 있어서 빼앗길 수 없는 건 인간이 갈고 닦아온 깊이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결국 프롬프트를 짜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이 요구하는 것을 바탕으로 대답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얕은 깊이의 요청과 그로부터 온 결과값을 수용하는 것으로 한 분야를 더 깊숙하게 알 수는 없다.
일을 대하는 태도
일과 생각을 설계하는 것을 넘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직업인으로서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지시해주고 있다. 여기서 필요한 태도는 언제나 내 방식을 수정할 수 있다는 수용성과 전환 능력이다. 이 이후에 비로소 ‘성장’이 가능하다. 마지막에는 워라밸을 따져보았을 때조차 배우지 않으면 쉬운 일도 고생스럽게 할 수 있기에 똑똑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말하며 마무리하고 있다. 즉, 비약적인 성장이든 워라밸이든 일을 영리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기서 제시하는 생각과 일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이뤄낼 수 있다.
이처럼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적용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원칙을 소개하며,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메타인지 또한 유도하는 책이다. 직업인이라면 누구든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