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월 20일은 일 년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이었다. 이름값 제대로 하는 절기를 만난 탓에 전국 방방곡곡이 유례없는 큰 추위에 시달리는 중이다. 다음달 4일이 입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이지 살벌한 한파다. 부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지금의 엄동설한을 무탈히 나셨으면 좋겠다.
추위에 약한 나는 이 계절을 스킵해도 좋을 만큼 겨울을 미워한다. 조금 극단적이긴 하나 더위와 추위 중에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더위를 택하련다. 남들은 폭염 앞에서 맥을 못 춘다던데 나는 그 반대다. 강추위 앞에서 나무늘보처럼 늘어진다. 빠릿빠릿함이 현저하게 줄고 의욕보다 귀찮음이 앞선다. 여러모로 취약해지는 데가 있어 그저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겨울 헤이터이긴 하나 그래도 애는 써 본다. 무기력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나름 애정하는 일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 본다. 마음 깊숙한 곳까지 냉기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열심히 방패를 만든다. 도토리를 비축하는 것마냥 기를 모은다. 이 또한 다음 계절의 에너지가 될 거다.
일용한 땔감 나르기
주택에서의 겨울나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한겨울에 풀 난방은 늘 고민거리다. 따뜻한 실내온도를 조금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 가정용 화목난로를 때고 있다. 집에서 난로를 사용한다고 하면 뭔가 낭만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땔감도 공수해야 하고, 나무도 잘라야 하고, 그걸 또 옮겨서 다시 쌓아야 하고, 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나무를 계속 넣어야 하기 때문에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전부 다 일이다.
참 귀찮고 성가시다. 그래서 땔감 작업을 할 때에는 약간의 번거로움과 근미래의 따뜻함을 교환한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나무를 써는 동안 나머지 식구들은 땔감을 나르고 쌓는 일을 한다. 나무가 엄청 무겁기 때문에 이동통에 실컷 담지 못한다. 욕심을 냈다간 다음 날 허리 통증으로 고생할 수가 있다. 2인 1조가 되어 들 수 있는 만큼만 담아 마당 한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벽면에 맞춰 땔감을 차곡차곡 쌓는다. 쌓다보면 나무 단면의 아귀가 척척 들어 맞을 때가 있는데 테트리스하는 느낌이 나서 재밌기도 하다. 내 키만큼 빼곡하게 땔감을 쌓다보면 겨울이라는 게 실감난다.
사부작 체력 다지기
영하 10도 가까이 찍었을 때 평소에 가던 3km 산책 코스를 돌다가 귀가 사라진 듯한 경험을 한 뒤 더 짧은 코스를 찾게 됐다. 너무 춥거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빼고 최근에 발견한 1.3km 남짓의 정원 산책로에서 꾸준히 운동하기로 했다. 새롭게 발견한 산책 코스에 별점 네 개를 주고 싶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하천을 따라 걷다보면 기분이 상쾌하다. 무엇보다 산책로가 집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일주일에 세 번, 안 하면 그만인 걷기 운동이지만 스스로와 약속했기에 놓을 수 없는 일이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은 여전히 내게 힘이 세다.
수호책으로 마음 수호하기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는 나의 겨울 ‘수호책’이다. 추운 날에 펼쳐 보기 좋은 따스한 책이다. 이런 종류의 맑음과 온기와 사랑이 있다는 것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너무 좋아서 마음이 아프고 몇몇 페이지에서는 눈물이 터진다. 세상 가장 환한 무채색의 풍경으로 시린 속이 보호받고 덥혀진다.
이 책은 고명재 시인의 첫 산문집이자 저자가 한때 자신을 키워준 비구니에게 띄우는 편지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매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쓴 글에는 그가 일상에서 발견한 사랑의 조각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를테면 자신을 키우고 돌봐 주던 이들의 애정 어린 눈빛과 다정한 손길 같은 것. 흰쌀밥, 하얀 두부, 멸치에서 퍼져 나오는 반짝이는 빛, 뽀얀 밀가루 같은 것.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면 내 곁에 존재하는 것들이 새삼스러워진다. 다시 소중하고 귀해진다. 이 책은 그렇게 나의 사랑을 묻는다. 좋았던 페이지를 함께 남긴다.
p.59-60_「더위사냥」 中
나란히 앉아서 사각사각 베어 먹는 소리. 달콤한 빙과로 입술은 끈적거리고. 옥수수보다 이게 낫지? 할머니는 물었고 내가 대답 없이 마주보고 실쭉 웃으면 다음날은 어김없이 옥수수를 삶아주었다. 여름은 그렇게 언제든 반으로 무언가를 잘라서 사랑과 나누어 먹는 행복의 계절. 간혹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할머니 몰래 속으로 기도를 하고는 했다. 내 수명을 뚝 잘라서 당신께 주세요. 그렇게라도 좀더 지금일 수 있다면, 조금만 더 느리게 녹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가 지금 이대로의 우리일 수 있다면.
p.228_「조끼」 中
조끼는 그렇게 심장부를 감싼다.
왼팔 오른팔 거두절미하고서.
조끼는 뚫린 채로 사랑을 해낸다.
구멍난 채로 사랑을 통과시킨다.
구구절절한 형식과 장식은 모두 거두고 가장 소중한 것을 데우기 위해 만들어진 의복. 최소의 말. 최소의 눈빛. 감싼다는 말. 지켜야 할 것을 최선을 다해 지켜냈었던 비구니가 떠나고 나는 홀로 걷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닌 것 같다. 나의 등과 어깨를 감싸는 어떤 손길들. 그러니 더 많이 보고 걷고 화창하리라. 나는 그렇게 시간의 그물에 감싸인 채로 흰 눈이 올 땐 조끼를 꺼내 입는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흉부에 있다.
털북숭이와 체온 나누기
나만큼이나 추운 걸 싫어하는 애가 있다. 우리집 셋째 고양이다. 새벽에 자고 있으면 누가 뒤에서 내 등을 툭툭 치는데 비몽사몽한 상태로 깨서 돌아보면 도담이가 그러고 있다. 요망한 솜방망이를 휘두르며 지금 당장 이불을 들어올려 동굴을 만들라고 내게 명령한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나작한 높이의 아늑한 동굴을 즉석으로 대령한다. 그러면 도담이가 쏙 하고 들어온다. 가끔 내 팔을 베고 자기도 해서 팔과 어깨가 저릴 때도 많다.
맞다. 사실상 과시다. 잠을 깨워 귀찮기도 하지만 얘랑 붙어 있으면 그래도 이불 속이 두 배로 따뜻해진다. 안고 있을수록 더 따끈따끈해진다. 추위는 때로 털북숭이와 함께할 명분이 되어준다. 사람 1년이 얘네한테는 7년이라고 한다. 그러면 더 안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도담이가 이 겨울을 덜 미워하도록 돕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