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쉴 줄 아는 사람인가? 잘 모르겠다.
쉼은 무엇인가. 2025년, 인생에서 가장 쉼이 필요했던 한 해였지만, 마음이 많이 무너져있는 상태에서 늘 하고 있는 일에도 지장이 가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될까 봐, 그 두려움에 일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내 감정에 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에 힘든 날에도 함부로 연차를 쓰지도 않았다. 모든 게 안정이 되면 그때 쉬어야지 했던 것 같다. 물론,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널브러져 있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쉼인가. 그것이 온전한 쉼이라고 할 수 있나.
큰 대도시 서울에서, 인간의 피로감을 더 쌓아주는 대중교통 속 원치 않은 불편한 거리감 속에서 매일 살아가고 있다. 잘 맞지 않은 사람과 8시간을 함께 앉아있고, 불편한 사람들과 식사를 한다. 이런 불편한 것들 나열하려고 하면 많겠지만, 사실 일상이라 익숙해져 있을뿐더러 솔직하게 나는 크게 연연해하지 않고 개의치 않아 하는 사람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조금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각자의 성격과 그에 맞는 마인드컨트롤을 하면서 보통은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면서 잠 외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으로 생각된다. 퇴근길에는 인스타그램으로 예쁘고 건강한 몸을 가진 인플루언서들 혹은 똑똑하고 박식한 유튜브 채널들을 보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매일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많고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 건강한 몸과 마음까지 챙겨야 한다고 요청받는다. 이 일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주 에가톳을 만들어가고 계시는 ‘제주독거’, ‘호텔설’ 그리고 ‘김한균’ 대표님을 수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으로 잘 보고 있었고, 웰니스/쉼/명상/요가와 같은 단어들을 그분들 덕분에 가깝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면 인지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현존은 순식간에 멀어져 버리고 맑은 정신과 건강한 몸으로 사는 일은 어려워진다. 그래서, 온전한 쉼을 위해 2025년을 마무리하고 혼자 에가톳과 에가톳 라이브러리에 다녀왔다.
Egattoc
egattoc(에가톳)은 cottage(오두막)를 뒤집은 단어로, 일상과는 반대되는 삶, 누구나 가슴속에 하나쯤 품고 있는 숲 속의 작은 오두막을 상징한다. 웰니스 센터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조병수 교수와 한라산 해발 350m 땅에 4년의 시간에 걸쳐 완성한 자연 그대로의 숲의 공간이다. 숲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프라이빗 캐빈 컨셉의 리트릿 숙박 브랜드 egattoc(에가톳)을 통해 디지털로 지친 현대인에게 진정한 쉼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에가톳 캐빈에 놓여있는 핫텁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느슨하게 했고, 핫텁의 물을 데우기 위해 직접 불을 때웠다. 나무와 불과 물을 가까이하는 과정도 신선하게 느껴졌고, 숙소 내부 창으로 보이는 푸릇한 나무들이 마음을 너무나도 편안하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웰니스 센터에서 요가 수련을 통해, 애쓰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이완시키고 몸의 움직임과 호흡에 집중하며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잔뜩 가질 수 있었다. 호흡하며 시선에서 가장 멀리 닿아있는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gattoc Library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에가톳 라이브러리는 일반적인 도서관과는 다르다.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맘껏 사색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깨끗하게 정리된 신간 대신, 누군가 편하게 읽고 줄을 그어온 손때 묻은 책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자연을 그대로 담은 뷰와 안정감을 주는 음악, 그리고 공간이 주는 느슨함이 ‘머릿속에 아무것도 집어넣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다. ‘일’ 카테고리의 책을 집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도에 대해 간단하게 배우고 안내를 받은 뒤, 여섯 가지 찻잎 중 하나를 골라 스스로 다도를 해보았다. 내가 선택한 차는 ‘밤부잎’이었다. 여섯 개 중 가장 궁금했던 향이었고, 무엇보다 아래의 문구가 이 차를 고르게 했다. 매주 금요일 극도의 피로 속에서 퇴근하는 나 자신에게, 오늘은 따뜻한 차 한잔 하며 숨을 고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제주의 맑은 바람과 안개 속에서 자란 조릿대는 잡미 없이 청량하고 산듯한 기운을 담고 있습니다.
입 안을 맑게 정화시키는 허브의 뉘앙스와 함께, 깔끔하고 부드러운 단맛이 남습니다.
몸과 마음이 뿌듯하게 정돈되는, 가벼운 하루의 리셋에 어울리는 차입니다.
두통이나 짙은 피로가 느껴질 때, 숨을 고르는 듯한 한 잔이 되어줄 거에요.
다도를 시작하며 찻잔을 데우고, 데운 물을 버리는 과정은 그 순간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밤부잎의 향이 깊어질 즈음 그림책 한 권을 골라 읽고, 그 시점에 스쳐 가는 생각에 잠시 머물러 보았다. 이렇게 멍을 때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너무 깊은 사색을 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 공간이 나를 그렇게 두었다. 당연히, 자연 속에 하루를 머무르면 좋겠지, 제주는 그런 곳이기도 하니까 하는 흔한 마음으로 갔지만, 기대 이상으로 잘 쉬었고 근 1년간 이렇게 제대로 쉬어본 적이 있나 싶었다. 공간이 주는 힘을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다.
에가톳을 다녀온 이후, 매일 짧은 명상과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명상 중에도 잡념은 끊임없이 떠오르지만, 그 생각들에 ‘잡념’이라는 이름을 붙여 날려 보내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한다. 대자연의 제주와, 쉼의 감각을 알려준 에가톳을 잊지 않기 위해 ‘호텔설’의 웰니스 뉴스레터도 꾸준히 받아보고 있다. 천천히, 웰니스를 알아가고 잘 쉬는 것을 계속 인지하고 싶어서다.
에가톳은 쉼을 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쉼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게 한 공간이었다. 여전히 쉬는 법을 배우는 중이고, 잠시 멈출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조심스럽게 마음을 기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