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애정하는 무심한 도시들 [공간]

글 입력 2023.01.1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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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는 언제 내려가세요?”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바퀴 네 개 달린 것으로는 닿을 수 없는 내 고향은, 명절에는 유난히 가기 힘든 곳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의 집이자 많은 사람들의 휴양지이므로. 연휴를 고향이 아닌 잘 알지 못하는 타지에서 보내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국내의 이국. 제주도.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갖춰지지 않은 것이 없고 온갖 군상을 찾아볼 수 있는 이곳. 매정하고 가끔은 무섭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놓이는 이 도시. 무심한 시선으로 배려하는 산발적인 질서. 압도적인 인프라에 익숙해진 만큼 나는 영영 서울을 떠나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태어나서 자라온 제주를 생각하면 떠나지 못할 것도 없겠다고 생각한다.

 

나와 닮은 말투를 지닌 가족과 친구들이 살고 있는 섬. 무심한 사람들이 많은 그곳. 나는 무심과 무정이 결코 같은 것이 아님을 제주에서 자라며 배웠다. 무뚝뚝한 배려가 넘치는 나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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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주를 두어 번 여행 다녀온 사람이 나보다 제주의 맛집과 카페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는 고깃집의 평균가나 바닷가 주변의 횟집은 피해야 한다는 점 혹은 차는 렌트하는 것이 좋다, 따위의 것들만 소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학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은 더 이상 제주 여행 계획에 대해 내게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제주 사람이라고만 하면 물밀듯이 쏟아지던 질문이 사라지니 편하긴 한데, 뭔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 대해 아는 것이 갈수록 줄어드는 기분은 영 편하지 못하다.


2주 정도 본가에 내려가게 되면 가보고 싶던 곳들을 하나하나 도장 깰 수 있지만, 연휴에 딱 맞추어 머무르게 된다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런 경우에는 보통 친구들이 가고 싶었지만 갈 일이 없어 가지 않았던 곳들을 주로 가곤 한다. 평소에는 굳이 차를 몰고 그만치 멀리까지는 가지 않지만, 서울에서 친구가 오는 날이면 한 번쯤은 가볼 법한 그런 곳들. 얼떨결에 서울에서 온 관광객 취급을 받아버리는 나. 아직도 서울엔 모르는 게 많은데.


아무리 바뀐 것이 많다고 해도 사실 돌아다녀 보면 금방 눈에 익고 쉽게 경험할 수 있지만, 장롱면허인 내게 그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사정상 띄엄띄엄 연습하다 보니 홀로 운전할 수 있는 수준은 아직 아닌지라 지금은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동에만 1시간씩 쓰자니 소상히 아까워 멀리 나가지 않게 되고, 이게 반복이 되니 빠른 주기로 변하는 제주에 익숙해질 수가 없는 게다.

 

하물며 집에서 가까운 단골 꼼장어집의 맛이 바뀐 것을 깨달은 날에는 이질감마저 들었다. 내가 알던 동네가 맞나. 그러다가도 익숙한 바다 내음이 섞인 바람을 맞으며 집을 향해 걷다 보면 더없는 익숙함에 물에 녹는 소금마냥 녹아드는 것이다.


다행히 길에 시간을 버리는 데에 크게 비효율성을 느끼지 못하는 친구들과 기가 막히게 운전을 잘하는 친구가 있어 버스를 타고 50분 떨어져 있는 독립서점에도 다녀왔고, 대낮부터 회를 포장해 포구 어드메에서 두런두런 즐긴 적도 있으며, 서울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유명한 프랜차이즈 햄버거를 먹어본 적도 있다. 친구들과 그렇게 놀다 보면 비교적 웃음기가 적은 서울의 내가 조금은 거리감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가 내 집이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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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는 잘 쓰세요?”


바다 한가운데에 살던 내가 수평선이 없는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어언 5년도 훨씬 넘었건만 아직도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특히 최근에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인해 재미난 억양에 꽤 익숙해진 사람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보곤 한다.

 

게다가 시시콜콜 이어지는 대화는 매번 비슷한 레퍼토리를 지녔다. 작년에 거하게 유행했던 밈이나 유명한 크리에이터의 콘텐츠 등을 중심으로 대화가 전개되고, 내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들에겐 외국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어감의 말들이 내 귀를 넘실거린다.


사실 연고지를 막론하고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면 사투리 억양이 비교적 강한 편이다. 그럴 때면 옛날의 나를 되찾은 느낌이 들곤 하는데 그 기분이 참 이상할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이랄까. 부러 숨기는 모습도 전혀 아니고 고치려고 애쓰는 습관도 아닌데 괜스레 아련할 때가 있다.

 

지금이 싫은 것은 더더욱 아니라서, 그 심정에 상실감이나 아쉬움과 같은 류의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그저 잠시 감각하고 만다. 네, 편하면 많이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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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본가에서 택배를 하나씩 보내오는데, 꼭 귤이나 한라봉이 들어있다. 그러면 내가 먹을 치의 양만 빼놓고 전부 대학 친구들에게 나눠준다. 귤을 굳이 찾아먹지 않는 나에 비해 걔들은 사 먹는다고 하니, 무언가 괜히 아까워 마음이 쓰이는 탓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꼭 제주 사람 취급을 받는다. 별것 없고 별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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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서울이 익숙하고 편하다지만 여태 나고 자란 섬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비록 지금의 제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을지라도, 일상에서 가끔 바닷바람을 맞으며 등교하던 시절 몸으로 익히고 배운 것들을 자각할 때면 문득 그리워지기도 한다.

 

옛날 말이 많이 살아있는 사투리부터 산에 구름이 걸려 넘어오지 못하는 날에는 유독 하늘이 맑고 뭉게구름이 두껍다던가, 물은 무섭기도 하지만 따뜻하기도 하다던가 그런 것들. 물이 없는 투박한 땅에서도 싹은 피고 모난 돌이라도 쌓아 올리면 무어든 막을 수 있다는 강인한 마음 혹은 아무리 말썽이어도 품고 사는 성정과 그를 가능케 하는 무모한 믿음, 으레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묘사로 가끔은 구시대의 것으로 취급받는 그런 것들. 누군가에겐 더없이 다정하고 듬직할 성질들.


나를 형성하는 데에 6할은 족히 차지한 나의 섬은 내 삶 전반에 둥실거리며 적잖은 면적을 자랑한다. 덕분에 어디서든 이방인 취급을 받는 듯하면서도 내가 딛고 있는 이 작은 땅에 얇게라도 뿌리내릴 수 있는 단단함을 지녔다고 믿는다.

 

돌아오는 설에도 바람처럼 머무르다 오겠지만, 사흘 치의 바다 내음이면 족하다. 이따금 파도치는 것이 그리울 때면 돌에 부딪치며 흐르는 것을 보면 된다. 한강의 물 내음도 가만히 서서 맡아보면 참 좋은데, 얼핏 둘러보니 아는 사람이 적어 놀랐던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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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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