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는다는 건 결국 자신의 오래된 감정을 다시 만나는 일”
"추상적이고 함축된 단어에서 짧게 묘사된 작가의 글이 나의 경험 혹은 감정을 맞닿는 일"
시
요즘 나는 시가 꼭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시기에 시를 읽는다. 유행어처럼 말하자면, 마치 “쿨타임이 찼다” 는 느낌으로. 그래서 미리 사두었던 시집을 어느 날 꺼내 펼친다. 그때는 작가의 의도나 해설이 궁금하지 않다. 그저 시를 읽으며 ‘내가 느끼는 감정’ 에만 온전히 집중한다. 그것이 내가 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고작 한 연 혹은 다섯 줄 남짓 한 시 한 편을 붙잡고 몇십분을 머무른 적이 있다. 그래서 시가 무겁게 느껴 질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그 무게가 필요한 시기였을 것이다.
한동안은 이런 생각을 했다. 시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시점에, 사람들에게 “시를 읽으시나요?”와 “시를 좋아하시나요?” 둘 중에 무엇을 먼저 물어야 할지 망설였던 때가 있었다.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지만, 누군가에게 “시를 좋아하냐"라고 물었을 때, 시간을 꽤 들여 곰곰이 생각한 후 답을 해준 사람이 있었다. 질문을 했을 때에는 “우선 잘 읽지 않는다”라고 답했지만, 며칠 뒤에 “안 그래도 나는 생각이 많은데 시를 읽으면 생각이 더 많아지고 무거워져서 시를 안 좋아한다"라고 답변을 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내심 아쉬웠다. 나에게 시는 오히려 ‘곰곰이 하던 생각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시를 썼다.
밤이 시작되면 시를 읽는다
밤이 끝나가면 시를 필사한다
네 연의 시를 읽으며
생각이 많아지는 듯 하다
그러나 그 생각들이 더 가벼워진 채
열어둔 창문 밖으로 나간다
그래서 시가 압축되고 짧아지는 이유가 아닌가
우연의 원리를 바람에 비유하듯

박준 [마중도 배웅도 없이]
네가 두고 간 말을 아직 가지고 있어 어디에 쓰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버릴 수 있었을까 그러니 마냥 넣어두고 다녔지 작은 열쇠처럼 가끔 잘 있나 꺼내보았다가도 이내 다시 깊숙이 넣어두고 혼자 있게 했지
박준 <다시공터>
몇 년 전에 누군가가 했던 말이 문뜩 떠오를 때가 있다. 몇 년 전, 나도 누군가에게 와닿지 않겠지만, 언젠가 내 말이 떠오를 때가 있을까 하여 전했던 말이 있다. 성인이 갖는 자유와 책인의 무게를 언젠가 알게 되지 않을까 해서. 대략 이렇게 편지를 남겼었다. “성인이 되었네. 법적으로 성인이 된 것과는 다른 어른이 되어갈 때, 성인이 되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다른 뜻이고, 모든 성인들이 어른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때 또 재밌는 대화를 나눠보자.” 편지에 이런 글을 남겼던 나는, 동생이 20살이었으니까 내가 26살 첫 사회생활을 할 때였다. 어른스럽지 못한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그에게 어른 대접을 했어야 했고, 내가 그와 함께 일해야 한다면 인간으로서 손톱만큼이라도 리스펙트 하는 마음을 간절히 갖고 싶었던 때였다. 하여튼, 나도 그도 어른이 아니고, 불완전한 그냥 인간이다.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게 해주는 시를, 나는 여전히 읽는다. 시를 읽을 때마다, 오래전의 감정이 천천히 되살아나고, 그 감정이 조금은 가벼워진 채 바람처럼 흘러가길 바라면서.
그리고, [마중도 배웅도 없이] 에서 함께 음미하고 싶은 시를 하나 더 공유한다. 한 줄에 마음이 조금 시큰해지는 시를 차가워진 날씨에 자신만의 감정으로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혼자 사는 사람과 같이 살던 사람과 사람이 그렇게 살면 못쓴다 하던 사람과 죽지 말고 살았어야 하는 사람과 사랑으로 만났어야 했던 사람과 삶을 속인 사람과 살며 마주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사람과 나를 보고 그냥 살라고 했던 사람과 삶에 속은 사람과 천천히 후회하며 살라던 사람과 미안하지만 이제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던 사람과 같이 살아도 끝내 모를 사람까지 모두 말없이 올려다볼 시월의 가을 하늘입니다.
박준 <높고높은하늘이라말들하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쓴 시도 살짝 남겨본다. 한 연이상을 쓴다면 모두가 시인이니까.
<이 별>
이 별에는
사람과 사람이 전부다
사람은 사람없이 살 수 없고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없다
존재만으로 사랑할 줄 아는
어머니
아버지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
다시 사랑하고 싶다
다시 사랑을 믿고싶다
사랑없이 살 수 없으니
죽기전에 죽을만큼 사랑해보고 싶다고
나에게 남몰래 고백해본다
<그런 때가 있지>
이십대는 다 그런거래
무슨 말을 해도 내가 겪은 걸
똑같이 겪어본 것 마냥
다 그런 때가 있지
하지만 뚫린 가슴은
얼마나 많은 양의 눈물로 매워질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이십대의 힘든 일은
다 세월이 약이래
내가 겪은 걸 똑같이 겪어본 것 마냥
하지만 처방된 약은
며칠 몇개월 몇년 혹은 평생일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죽기전에는
이렇게 말하겠지
다 그런때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