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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그림 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다 - 그림 읽는 밤 [도서]

고요함 밤에 느끼는 그림의 풍미

by 이상아 에디터
2026.01.1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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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회를 갈 때마다 비는 소원이 있다. ’제발 오늘은 사람이 많지 않기를, 내가 가는 시간만 여유가 있기를’ 하고 말이다. 전시 문화의 유지를 위해선 절대 해서는 안 될 기도지만, 미술관에서만큼은 북적이지 않고 여유를 즐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그림이 보이면 사람이 텅 빈 미술관에서 밤 새워 그림을 보며 멍 때리는 상상을 한다. 고요함이 흐르는 밤, 오직 나와 그림만을 비추는 따뜻한 조명과 그 앞에 푹신한 소파에 앉아 그림과 눈 맞춤을 하며 사색에 잠기는 상상 말이다. 생각만 해도 사치스러운 밤처럼 느껴져 황홀한 감정이 든다. 이소영 작가의 <그림 읽는 밤>은 이처럼 황홀한 소원을 이뤄주게 한 다정한 도서이다.


총 48개의 그림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고된 하루가 끝나는 밤마다 한 개의 작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분되어 있다. 왜 낮이 아닌 밤일까? 그 이유는 그림마다 적혀져 있는 작가의 생각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마치 잠에 들기 전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다정한 부모같이 작가는 그림의 전체적인 부분부터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짚어준다. 그리고 이 그림의 작가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왜 이런 그림과 화풍으로 표현했는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다음 장을 넘기면, 마치 글을 보고 ‘그럼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라고 생각하는 독자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작가의 프로필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림과 관련된 명언을 적어 넣고 그 아래 줄 칸을 넣어 자연스럽게 그림에 대해 내 생각을 적고 싶게 끔 구상되어 있다. 미술관에 가서 오디오북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그림을 보는 눈과 오디오북을 듣는 귀가 따로 놀게 되어 결국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을 겪게 되는데, 이렇게 사각거리는 종이 위에 그림과 함께 활자로 적혀있으니 더욱 집중이 잘 되었다. 설명에서 말하는 부분을 그림에서 찾기도 하고, 나만의 느낌을 적어보기도 하면서 하루의 끝을 작품 생각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 좋은 꿈을 꿀 것만 같은 밤들이 이어졌다.


프롤로그 중 ‘문장과 그림, 이 둘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일까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연관되는 영화의 한 장면이나 사진들이 떠올랐다. 몇 가지를 예시로 들고 싶다.


Night8. ’요제프 리플 로나이’의 <밤의 공원>과 <해리 포터-마법사의 돌> - 푸른빛이 내려앉은 새벽, 나무들은 희미하게 청록 빛으로 묘사되어 있고, 노란 가로등만이 포인트처럼 빛나고 있다. 이토록 어둠을 묘사하는 작품 중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필자는 이 작품을 보며, <해리 포터 마법사의 돌>의 첫 장면이 떠올랐다. 깊은 밤 적막이 흐르는 프리뱃가에 가로등이 하나둘씩 어디론가 빨려 들어간다. 수상한 차림의 마법사 ’덤블도어’가 가로등 불빛을 하나 둘 앗아가고 있는 장면이었다. 어딘가 미스터리하면서도 호기심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그 장면의 깊은 밤과 가로등 불빛이 떠오르는 묘한 작품이었다.


Night14. ’클로드 모네’의 <아르장퇴유 근처 산책>과 <오만과 편견> - 광활한 들판과 싱그러운 꽃들, 짙은 초록물이 들여진 나무들과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다. 그 가운데 약간 하늘색과 흰색을 섞은 듯한 드레스를 우아하게 흩날리며 걷는 여인을 보고 있으면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오만과 편견> 속 첫째 언니인 ’제인 베넷’이 떠오른다.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베넷‘과는 다르게 장녀로서의 기품과 따스한 심성을 지니고 있어 등장만 하면 화면이 따스해지는 효과를 주곤 했는데, 제인이 리본을 사러 상점에 가는 길에 입은 하늘색 드레스와 챙 모자가 그림 속의 우아한 느낌과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림 속 여인이 제인이고 신사가 제인이 사랑한 미스터 빙리라면 두 사람이 낳은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 상상되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었다.


Night28.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바다 위의 수도사>와 <헤어질 결심> - 검은 바다와 구름 한 점 없이 흘러가는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마치 세상의 끝인 것처럼 보이는 회색 암벽 끝엔 바다와 같은 검은색의 옷을 입은 수도사가 서 있다. 이 작품 속에선 어쩐지 파도 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을 것만 같다. 경계 없는 모호한 세상의 끝을 바라보는 수도사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속 서래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파란색으로도 보이고 녹색으로도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바다를 향해 선 채 무언가 던지는 포즈로 사진이 찍힌 서래의 모습은 표정을 보이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보이지 않아서 더욱 수심에 가득 차 보인다. 영화 속에선 적막함과는 반대로 파도가 무척이나 세게 암벽을 치며 소리를 냈지만, 그림 속 수도사처럼 어딘가 깨고 싶지 않은 수심 가득한 서래의 마음이 무척이나 닮아 있는 듯하다.


<그림 읽는 밤>에는 처음 접하는 그림들이 대다수였는데, 그래서일까 그림을 보는 밤마다 ‘나만의 언어’로 작품과 연관된 또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고, 나만의 느낌과 해석대로 생각해 보는 날들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같은 그림을 봐도 다른 점을 보고 느끼듯이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점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선물하기 참 좋은 책이라고 느껴졌다. 짙은 밤 하루의 끝에 좋은 꿈을 꿀 수 있도록 안내하는 어른을 위한 ‘베드 타임 스토리‘ 같은 이 책의 다정함에 오늘도 좋은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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