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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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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하다가 새에 관한 글을 하나 읽었다. 어떤 새는 10개월이나 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땅에 착지하지 않고 계속 난다는 내용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그 새는 ‘칼새’였다. 칼새는 현재까지 기록된 바에 따르면 최장 10개월간 잘 때도 날고, 먹을 때도 날고, 쉬지 않고 날았다고 한다. 새에 대한 관심으로 얻게 된 짧은 지식에 따르면 새들은 한 번의 날개짓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탐조할 때 억지로 새를 날리는 행위가 지탄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 날개짓을 무려 10개월 동안 쉬지 않고 이어간다니, 실로 대단한 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다른 새보다 칼새가 오래 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몸의 모양이라든지, 비행 기술이라든지, 이에 걸맞게 진화한 무엇이 있을 것이다. 칼새에 대한 게시물의 댓글은 온통 신기하고 멋있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새라면 난 무슨 새였을까?


새를 좋아하다 보면 유난히 인기가 많은 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이 인기가 일반적인 사람들이냐 혹은 새 애호가이냐에 따라서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흰머리오목눈이는 귀여운 외모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귀여워한다. 흰꼬리수리는 이와 반대로 멋지고 웅장한 모습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 외에도 쉽사리 보기 힘든 희귀종 새, 생태가 독특해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새 등등 관심을 받는 새들이 많다.


내가 어떤 새일까, 우선 이런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새들은 다 제외해야 했다. 어렸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글쎄,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난 분명 동네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 중 하나일 것이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보여서 내 눈앞의 새가 방금 본 새인지, 새롭게 날아온 새인지 헷갈릴 정도로 흔한 새 말이다. 동네에 흔히 보이는 새의 종류는 꽤 많다. 참새, 비둘기, 까치, 직박구리, 등등. 걸음을 몇 발자국만 떼어도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는 새들이다. 그럼 이 중엔 날 닮은 새가 있을까?


우선 작고 귀여운 참새. 참새는 날 닮았을까? 내 대답은 아니었다. 이곳저곳을 뾰로록 날아다니는 참새떼는 바쁘게 다니며 무언가를 먹고 있지만 홀로 떨어져나오는 법이 거의 없다. 늘 무리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까치는? 까치는 의외로 매섭고 까칠한 성격으로 다른 새들을 공격하고 놀리기도 한다. 그럼 직박구리는? 직박구리는 정말 엄청난 수다쟁이로 목청이 우렁차기가 따라갈 새가 많지 않다. 남은 새는 비둘기다. 비둘기는 그중 가장 나와 가까운 새처럼 보인다. 지나치게 시끄럽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그런데 나에게 비둘기는 왜인지 날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비둘기는 늘 사람들의 눈에 띄고, 그들 사이를 걸어다니며, 쫓겨나도 굴하지 않고 다시 날아와 땅바닥을 쪼아댄다. 비둘기는 자신의 존재감을 생각보다 강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한 새가 뇌리를 스쳤다. 비둘기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새, 멧비둘기였다. 멧비둘기가 무슨 새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긴 모습이나 특유의 구구우우 하는 울음소리를 들으면 아하 하고 깨달을 것이다. 멧비둘기는 어느 동네나 가장 흔하게 보이는 새다. 그러면서도 우르르 떼로 다니기보다 홀로 혹은 부부끼리 움직인다. 울음소리가 종종 들리지만 직박구리처럼 수다쟁이는 아니고, 늘 가만히 나뭇가지에 덩그러니 앉아 있어 때로는 새인지 나무의 일부인지 자세히 봐야 할 때도 많다. 무엇보다 비둘기와 다르게 거리에서 몰려다니며 사람들의 눈에 무자비하게 띄이지 않는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지나치게 숨지도 내보이지도 않고, 그럼에도 특별함 없이 흔한 새.


여기까지 상상하다 보니 문득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전해 듣기로는 조류 동아리에서는 모임 회원들에게 각자 어울리는 새 이름을 부여해 준다는데, 내가 그곳에 갔으면 무슨 새였을까도 궁금해졌다. 모임에서 나에게 멧비둘기라는 이름을 주었으면 솔직하게 조금 섭섭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나에게 부여하는 새 이름에 내가 나서서 특별한 새를 말할 수는 없었다. 사실 어쩌면 특별한 새라는 것 자체가 허상인 듯도 하다. 막상 탐조를 나서게 되면 처음 보는 새를 마주할 때의 희열도 물론 존재하지만, 평범하고 흔한 새들을 관찰하는 것이 결국 가장 오랫동안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재미있는 건 흔한 새, 일명 ‘흔새’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삶도 내가 경험해보고 지켜봐 왔던 흔한 형태의 인생일 것이다. 어쩌면 흔하기 때문에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삶, 그 와중에서도 비둘기는 아닌 멧비둘기로 나만 아는 조금의 특별함 지니고 또 부여하는 삶. 그런 삶을 나는 살고 싶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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