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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아무런 날과 어떤 날들

달력이 소란스러워지는 마지막 달

by 장미 에디터
2026.01.01 07:12

 

 

아무런 날과 어떤 날들

달력이 소란스러워지는 마지막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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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몸도 마음도 바빠진다. 왠지 최근 만남이 뜸했던 지인과 만나야 할 것 같고 성탄절에는 맛있는 디저트를 챙겨야 할 것 같고 25일이 지나기 전에 연말 분위기를 만끽해야 할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1년 내내 대체로 한가하지만 이 시기에는 약속을 잡기 전에 되는 주말과 아닌 주말을 구분한다. 일정은 부지런히 채워지고 잔고는 끊임없이 줄어든다.


연말이 되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날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참에 주변에 안부 인사를 돌리고, 거래처 메일에 연말연시 인사를 덧붙인다. 이대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적당한 이미지를 찾고 연말 인사를 어떻게 써야 하나 고심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참에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고,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정신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흘려보냈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이 시기가 나쁘지 않다.


그와 별개로 몸은 다소 바쁘다. 월말에 연말이니 회사일도 괜히 더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 같다. 서유럽 거래처는 길게 휴가를 가지던데 왜 내 일은 줄어들지 않는 걸까. 하지만 휴가지에서 메일을 확인하는 담당자를 보니 직장인의 애환은 연말을 피해 가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최근 몇 년, 연말마다 크리스마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챙겨보고 있다. 큰 고민 없이 적당히 연말 느낌이 나고 소개글이 나쁘지 않으면 그대로 재생한다. 올해는 로완 앳킨슨의 '인간 vs 아기'를 봤는데 빨리빨리 문화의 한국인, 그것도 K-직장인 스위치가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소 복장이 터질 것 같은 전개가 몇 번 등장했지만 역시나 아기와 동물이 나오는 가벼운 전체 연령 가는 연말에 제격이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 겨울의 포근함을 간접 체험할 수도 있다.

 

동심은 부스러기를 긁어모아야 할 정도로 사라졌지만 분위기는 챙길 수 있으니까 이렇게라도 느낌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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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에 치이느라 진이 빠져서 피해 다니지만 때로는 남들 하는 것들 따라 해도 재밌다.

 

한국 놀러 온 외국인 관광객 마냥 명동 투어를 했는데 연말에 한가운데 있는 것만 같았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롤, 사람들의 발걸음을 늦추게 하는 미디어 파사드, 성당 앞 성탄 구유,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남기게 만드는 크리스마스 장식물들.  홀리데이 무드에 한걸음 다가가면 12월을 제대로 보낸 듯한 기분이 든다.


11월과 12월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어디든 상술을 부리기 위해서라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휴일을 묶는 홀리데이 시즌을 기념하는데 그 분위기가 뭐라고 설렜다가 늘어졌다가 재밌다가 평소보다 마음이 바빠진다.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아서, 소중한 사람들과 맛있는 걸 나눠 먹고 싶어서 닫혀있던 지갑을 쉽게 열게 된다. 상술이면 어떠한가 내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고 싶다는데. 노력하지 않고 빌미를 만들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올해도 잊지 않고 주변에 연말 인사를 돌렸다. 남은 건 내일 새해 인사로 대체할 예정이다. 때를 찾지 못해 미뤄놓고 숨겨둔 마음과 말을 전하게 되는 이 시기. 매번 신세를 지고 있다.

 

앞으로도 구실 삼아 하나라도 더 표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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