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비틀쥬스>는 대놓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극은 '리디아'의 엄마의 장례식으로부터 시작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묘지의 관 앞에서 리디아는 쓸쓸함과 그리움에 대해 노래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심오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출처 : 인스타그램 @cjenm.musical)
"야, 누가 극의 오프닝부터 이딴 발라드를 부르냐?"라는 말과 함께 등장한 비틀쥬스는 한순간에 극의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그의 첫 넘버인 "The Whole Being Dead Thing"에서 그는 "너네도 어차피 다 죽어!"라고 말하며, 어두운 소재인 죽음을 유쾌하게 공감 거리로 만든다.
또한 <비틀쥬스>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황당하고 괴랄한 전개로 흥미로운 웃음을 주는 동시에, 죽음의 반의어인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극이었다. 덧붙이자면 '삶'을 담는 가장 커다란 그릇인 '집'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떠올려 보게 하는 극이었다.
(출처 : 인스타그램 @cjenm.mus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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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뮤지컬 <비틀쥬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리디아는 그만 잊고 빨리 행복해지자고 하는 아빠 '찰스'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찰스는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감행해버렸고, 다른 여자에게 청혼까지 해버린다. 이를 알게 된 리디아는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지붕 위에서 뛰어내려고 한다.
그 순간, 비틀쥬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100억 년 동안 이승과 저승 사이에 껴서 홀로 지내온 유령이었다. 그가 사람들 눈에 보이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사람이 이름을 연속으로 세 번 불러줘야 했다. 리디아는 사실 유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드디어 자신을 볼 수 있는 인간인 리디아를 발견해 신이 난 비틀쥬스는, 찰스에게 겁을 주어 이 집에서 내쫓아 주겠다고 제안하며, 그러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불러달라고 한다.
그러나 리디아는 순순히 넘어가지 않고 그를 수상히 여기며 오히려 농락한다.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참했는데 좀 재밌네?"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록 제가 소녀지만 호구는 아니라서"
하지만 이후 찰스가 이 집을 나가게 하겠다는 자신만의 계획이 실패하자 결국 그의 이름을 세 번 부르게 된다. 그러자 나타난 비틀쥬스를 보고 놀란 사람들이 모두 집 밖으로 도망쳐 나가고, 계획은 성공에 이르게 된다.
비틀쥬스는 리디아에게 친구가 된 기념으로 '저승 안내서'를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리디아는 엄마를 찾기 위해 저승으로 향했고, 찰스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따라갔다. 하지만 결국 엄마를 찾는 것을 실패하고 만다. 찰스는 좌절한 리디아에게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집은 없다"라고 소리치며 엄마를 잊으라고 말하던 찰스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그리고 대화 끝에 두 사람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찰스는 앞으로 엄마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리디아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집에서 악당으로 변해버린 비틀쥬스를 처단한다. 그리고 리디아와 찰스, 그 집에 살던 착한 유령 부부와 약혼녀 델리아는 리디아의 엄마가 제일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며 어질러진 집 청소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가족 속에서 리디아는 엄마에게 "집에 왔어"라고 말하며 막이 내린다.
(출처 : 인스타그램 @cjenm.musical)
리디아에게 '집'이란 무엇이었을까.
"나의 엄마, 내가 있을 곳
느껴져 나의 안식처
내 손 잡고 날 지켜줬어
하루하루 난 투명해져"
- 뮤지컬 <비틀쥬스> 넘버 "Dead Mom" 中
바로 죽은 엄마였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찰스는 이사를 감행하고, 새로운 애인을 만드는 등 이별의 아픔을 애써 덮어버리려고 한다. 그는 그러한 슬픔을 외면했기 때문에 이를 직면하는 리디아 또한 외면해버렸다. 따라서 리디아는 홀로 '투명해져' 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찰스는 리디아와 엄마 얘기를 피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리디아는 극의 마지막 넘버에서 "집에 돌아왔다"라는 가사를 반복하며 노래하면서, 새로 이사한 집을 비로소 자신의 집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리디아에게 집이란 그립고 쓸쓸한 감정을 가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러한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어떤 웹툰이 떠올랐다. 그 웹툰의 주인공은 리디아처럼 엄마가 죽었고, 집을 떠나고자 했으며 귀신 또는 유령과 함께 지낸다.
(출처 : 인스타그램 @hqc_official)
그건 바로 최근 뮤지컬로도 제작된, <집이 없어>였다. 집을 뛰쳐나온 소년들이 귀신이 나오는 폐가를 기숙사 삼아 지내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해준'은 귀신을 보는 엄마에게 지쳐 집을 나온다. 그리고 그런 해준을 붙잡다가 엄마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갈 데가 없었던 해준은 결국 학교 근처 폐가에 들어가 살게 되고, 이후 의식을 잃었을 때 꾸었던 꿈에서 엄마와 다시 만나 작별한다.
너무나도 다른 스타일의 두 작품이 겹쳐 보였던 것은, 방황하던 두 주인공 모두 결국에 자신만의 진정한 집을 찾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해준이 꿈에서 '자신의 집'이었던 엄마와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해준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슬픔은 이겨낼 수 없는 거야. 그 일로 인해 너는 변할 거고, 네 세상도 변할 거야." 해준이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해? 엄마가 보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 그러자 엄마가 대답한다. "그냥 울어야지. 그리워하고 슬퍼해야지."
이렇게 <집이 없어> 또한 나의 집이었던 대상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참아내지 않고 그저 마주해야 함을 알려준다. 그리고 '진정한 집'이란 그러한 과정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혹은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누군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게 한다.
리디아에게 집이란 그저 '찰스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렇듯 <집이 없어>에서도 집이란 그저 '가족과 함께 사는 곳'이 아님을 제시한다. 진정한 의미의 집이란, 힘들 때 생각나고 정말로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언제부턴가 나... 하루가 다 끝날 때쯤엔 그 기숙사가 떠올라.
이제 조금만 힘들면 거기 돌아갈 생각 밖에 안 들어.
웃기지? 예전엔 그 집을.. 정말 마지못해 들어갔었는데. 그런 곳이었는데.."
- 웹툰 <집이 없어> 中
리디아, 그리고 해준은 모두 '엄마'라는 집을 떠나 새로운 집을 찾게 되었다. 그들 모두 가끔은 떠나온 집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건 쉬이 없어지지 않는 슬픔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새로운 집에서 잘 적응해나가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그 슬픔을 나눌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 더 이상 혼자 투명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살면서 한 번쯤은 이사를 한다. 그때마다 지나온 곳을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는 곳이 당신의 집이기를.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세 번 불러줄 누군가가 곁에 함께하길 진심으로 바래 본다.
투명한 존재들이 불투명해져가는 이야기, 뮤지컬 <비틀쥬스>였다.